기술철학의 과거와 현재

인간의 삶을 기술과 분리해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기술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철학’이라는 명칭의 학문이 처음으로 제안된 것은 불과 19세기의 일입니다. 기술철학은 어떻게 탄생했고 또 무엇을 논하려 할까요? 기술철학을 처음 제창한 에른스트 카프부터 오늘날 널리 알려진 기술철학자 자크 엘륄, 돈 아이디, 랭던 위너까지 그들의 문제의식을 살핍니다.

기술철학의 시작을 알리다 ≪에른스트 카프≫
독일의 기술철학자 에른스트 카프(1808~1896)는 1877년 ≪기술철학 개요: 새로운 관점에서 본 문화 생성사≫를 출간하며 처음으로 “기술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카프는 인간의 문화사를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모델 삼아 자기 바깥에 복제물을 제작해 온 과정으로 파악했습니다. 카프는 자연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신체의 비밀조차 인간의 기술에 반영된다고 보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기술 일반에 대한 이론을 세우고 19세기의 최첨단 기술들을 망라해 자신의 이론을 경험적으로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조창오 지음

기술과 신앙으로 문명을 논하다 ≪자크 엘륄≫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자크 엘륄(1912~1994)은 사회적 모순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과 사회적 이상에 대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20세기 사회와 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궁극의 원리는 ‘기술’이라고 주장합니다. 엘륄은 기술의 존재 양식과 운동 양식을 사회학적으로 관찰, 분석하고 그 결과를 기독교적 지평에서 규범적으로 평가하고자 했습니다. 엘륄은 현대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내적 네트워크의 동력으로 성장한다고 주장한 선구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상복 지음

기술철학으로 실천을 논하다 ≪돈 아이디≫
미국의 기술철학자 돈 아이디(1934~ )는 ≪기술과 실천: 하나의 기술철학≫을 통해 자신의 기술철학이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공표합니다. 아이디는 이론 중심의 철학에서 벗어나 실천적이고 신체적인 하이데거 기술철학의 명맥을 잇습니다. 그러나 아이디는 하이데거와 달리 기술과 환경의 관계가 단순히 적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기술의 발전을 거슬러 복고적 낭만주의를 택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아이디의 ‘실천’은 기술과 환경의 공존을 상상하기 위해 더 나은 기술, 즉 ‘고급 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김성동 지음

기술철학으로 정치를 논하다 ≪랭던 위너≫
미국의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1944~ )는 인간의 기술 중 ‘정치’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자연물을 다듬어 ‘인공물’을 만드는 보통의 기술과는 달리 정치는 인간 사이 협상과 합의를 통해 ‘상황’을 만듭니다. 인간이 기술적 존재라면 인간 사이 발생하는 정치는 곧 ‘기술을 다루는 기술’이며, 인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술입니다.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춘 위너의 기술철학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포스트휴머니즘’과 미묘한 관계를 설정합니다. 위너에 따르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사회적 평등과 연대가 인간성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숙고할 때에만 유의미합니다.
손화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