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태국 최초로 패러디 기법을 사용한 풍자문학이다. 작가는 당시 방콕인들이 즐기는 왕가 이야기인 <이나오>를 천민의 이야기로, 사내답고 정의로운 <이나오>의 남자 주인공을 바람둥이 란다이로, 현숙한 미인인 <이나오>의 여자 주인공을 다른 남성과 정분이 나는 유부녀 쁘라대로 패러디했다.
≪라덴 란다이≫는 제목이나 형식만 보면 공연 콘(라컨이라고도 하는 태국의 전통 무용극)을 위한 봇라컨(라컨을 위한 대본)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으나, 내용을 보면 공연보다는 읽고 즐기는 것에 더 중점을 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창작 배경에 대한 몇 가지 사건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라마 3세 당시 떠돌이 거지 한 사람이 인도에서 태국으로 와서 인도인들이 몰려 사는 방콕 힌두 신전 앞, 그네 거리(싸오 칭차)에 살고 있었는데, 그 이름은 ‘란다이’였으며 해금을 들고 다니는 악사 거지였다고 한다. 그는 전후가 없는 태국 노래 한두 마디를 팔며 종일 저잣거리를 다녀 그 근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 거리에는 그 외에 쁘라두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인 한 사람이 살았다. 그는 클렁럿 운하 근처에 있는 성문 가까이에 외양간을 짓고 젖소를 쳤는데, 빳따니에서 온 전쟁 포로 쁘라대를 노예시장에서 아내로 사왔다. 어느 날 쁘라두가 소를 몰고 성 밖으로 나간 사이에 란다이는 쁘라대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이 사실을 안 쁘라두가 란다이와 크게 다투는 일이 있었다. 프라마하몬뜨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실명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전해진다.
≪라덴 란다이≫의 ‘라덴’은 자바어로 ‘왕자’를 뜻하나 실제로 그는 왕자가 아니라 거지 악사다. 그러나 말이 악사이지, 란다이는 인도에서 온 떠돌이 걸인으로, 태국어도 어눌하고 태국의 서사문학인 ≪쑤완나홍≫의 구걸 대목 한두 구절을 외워 해금을 켜면서 구걸하는 인물이다. 작품 제목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비정상, 비상식의 과장된 인물들이 작품 세계에서 활동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프라마하몬뜨리는 이러한 풍자를 통해서 당시 사회의 모습과 가치관을 비판하고 지배 계층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나무라고 있다.
≪라덴 란다이≫가 패러디한 작품 <이나오>도, 가난한 힌두교도가 저잣거리에서 싸운 이야기도, 그리고 또 다른 창작 배경인 짜오쩜임의 사건도 모두 두 명의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치정에 얽힌 이야기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야기들은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약속한 남성이 있는 한 여성을 중간에 두고 그 여성의 남편 또는 약혼자와 그 여성을 사랑하는 한 남성 간의 다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라덴 란다이≫의 등장인물 란다이, 쁘라두, 쁘라대는 각각 <이나오>의 라덴 이나오, 라뚜 쩌라까, 라덴 부싸바에 비유되고 있으며, 란다이는 <이나오>에서 아싼대와 가문의 후손인 이나오와 부싸바가 결혼했듯이 쁘라대가 자신과 결혼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란다이의 거동에 대해 왕실 용어를 사용하면서 거지를 억지로 왕자의 신분으로 상승시키는 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언어와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으며, 그 속에서 독자는 해학과 풍자, 아이러니를 만끽한다. 이 작품은 “의지할 곳이 하나 없는 가난한 천애의 란다이 왕자는”으로 시작한다. 왕자의 신분은 주변에 늘 사람이 많고 호의호식을 하는 인물인데 란다이에 대한 형용이 ‘가난’, ‘천애’, ‘의지할 곳이 없는’ 등으로 되어 있다. 첫 줄뿐 아니라 그 다음 줄 역시 “일인 왕국의 왕자님은 떠돌이라네”로 란다이는 왕국의 왕이되 혼자 백성도 되고 왕도 되는 왕국의 왕이며, 왕이어서 신하나 아랫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구걸 행각을 한다. 왕실용어로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과 ‘구걸한다’는 말을 한 문장에 사용하고 구걸하러 다니는 저잣거리가 인도에서 이주한 가난한 캑(노예)이 몰려 사는 거리임을 말함으로써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비꼬고 있다. 작가는 작품의 전편에서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200자평
큰글씨책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시리즈. 태국 최초의 패러디 문학 <라덴 란다이>. 이 작품은 제목이나 형식만 보면 공연 콘을 위한 봇라컨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으나 내용을 보면 공연보다는 읽고 즐기는 데 더 중점을 둔 작품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순수 창작문학이라는 관점 외에 당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록문학으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은이
태국에 성씨(姓氏) 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라마 6세(1910∼1925) 때로, 그전에는 한두 음절로 된 이름만 있었다.
‘쌉’은 그의 이름이고, ‘프라마하몬뜨리옹카락’은 관직명이다. 당시 태국 관등은 맨 위로부터 쏨뎃짜오프라야, 짜오프라야, 프라야, 프라, 루엉, 쿤, 믄, 판, 타나이의 9등급이었는데, 쿤 이상의 관료는 사회적으로 고급 관료로 간주되고, 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그의 관등은 ‘프라’ 급이고 관직이 ‘옹카락’인 것으로 보아 왕이나 왕실의 호위를 맡고 있는 궁정 경찰이나 근위대로 보인다. ‘옹카락’이 왕으로부터 사령장을 수여받은 관등이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는 왕궁을 지키는 경찰대나 근위대에 소속된 고위 관료였던 것 같다. ‘마하몬뜨리’는 그 직의 우두머리임을 말해준다.
그는 태국의 대문호라 일컫는 쑨턴푸-프라쑨트라워한(푸)-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 평가될 뿐 더 자세한 이력이나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작품으로는 라마 2세의 작품인 <이나오>를 패러디한 작품이라 평가되는 ≪라덴 란다이≫ 외에 경찰의 권력 남용 사실을 고발한 ≪플렝야우-밧쏜테≫가 있다. 나중 작품은 그가 왕궁 경찰의 검을 보관해 두는 무기고에 숨겨두었으나, 그의 생존 시 다른 동료에 의해 발견되어 공개되었다고 하는데, 이 고발 작품으로 인해 그의 문학적 명성이 알려졌고 동료들은 앞을 다투어 그 작품을 베껴 필사본을 만들어 돌려가며 읽었다고 전한다. 그의 두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 그가 시대성에 민감하였음을, 특히 비윤리적이거나 부도덕한 사건에는 그 대상이 누구건 간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정의감이 강한 성격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옮긴이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태국어를 전공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지역학 석사(태국 외교)를 취득했다. 그 후 태국의 쭐라롱껀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국제관계학과에서 공부하면서 이때부터 태국 역사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귀국한 후 고민 끝에 전공을 바꾸어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공저 포함)로 ≪태국사≫,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의 이해≫, ≪일제하의 동남아≫, 역서로 ≪짬렁, 내 삶의 이야기≫, ≪라덴 란다이≫ 등과 기타 다수의 논문이 있다. 태국 정부로부터 태국 문화를 진흥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차례
라덴 란다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찌 그대가 라뚜와 짝이 될 수 있나요?
비록 아싼대와 가문의 후예가 아니지만
그대는 부싸바처럼 아름답소.
쩌라까는 그대와 맞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