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스페인 작가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an)≫를 발췌한 책이다. 1499년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은 사실주의의 전통이 강한 스페인 문학사에서 그 시원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세속적 욕망의 화신인 셀레스티나와 주변 인물들은 인문주의가 태동할 무렵 스페인 사회의 풍속도와 당대인들이 내면세계를 잘 보여준다.
책의 역자인 윤용욱은 17세기 스페인 희곡을 전공한 학자로, 21장 전체가 대화로 이뤄진 원래 소설을 발췌 번역하는 과정에서 희곡의 형태로 각색했다. 그러나 각색은 원문의 대화를 오롯이 살리면서 반복되는 부분을 덜어내고, 여러 부분으로 나눠진 말을 하나로 합치는 수준에서 이뤄졌다. 인물의 행동까지 말로 설명되었던 원문을 동작을 지시하는 지문으로 바꾸는 일, 내용과 내용을 이어지는 줄거리에 덧붙여 독자들에게 작품을 ‘읽어 주는’ 일에 공을 기울였다.
잘 생긴 귀족 청년인 칼리스토는 사냥을 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명문가의 아가씨 멜리베아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도도한 멜리베아의 태도로 인해 칼리스토는 혼자서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고, 그 모습을 본 하인 셈프로니오가 유명한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소개해 주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셈프로니오와 셀레스티나는 칼리스토와 멜리베아를 연결시켜 줌으로써 한몫 챙기려는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르메노, 엘레시아, 아우레사 등이 금전이나 애정 문제 등의 이해관계로 얽혀든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죽거나 불행해지는 결말은 다소 교훈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종교나 신분제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눌려 있던 인간들의 욕망이 터져 나오려 하는 징후가 느껴진다. 인문주의의 발흥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원래 처음 출판할 당시 이 작품의 제목은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희비극(Tragicomedia de Calisto y Melibea)≫이었지만, 이후 작품 해석에서 셀레스티나라는 인물의 역할이 더 커지면서 현재는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an)≫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200자평
스페인 사실주의 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이다. 귀족 가문의 젊은이, 뚜쟁이, 창녀, 하인 등 다양한 계급의 인물들을 망라하며 스페인 사회의 풍속도와 당대인들의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들이 나누는 장황하고 과식적인 대화는 마치 억눌려 있던 욕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속적인 욕망의 화신과 같은 인물인 셀레스티나는 인문주의의 발흥과 회의주의의 시대를 예고한다.
지은이
페르난도 데 로하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시기의 스페인 작가다. 1470년 톨레도주의 라 푸에블라 데 몬탈반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스페인 당국은 이단 심문소까지 설치해 가며 가톨릭을 강요했는데, 이 때문에 증조부 때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집안은 비밀리에 유대교 의식을 계속 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1496년 살라망카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25세 되던 무렵에 그의 유일한 작품인 ≪라 셀레스티나≫를 집필한 것으로 추측된다. 1507년에 역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계 집안의 딸인 레오노르 알바레스 데 몬탈반과 결혼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다. 1541년 세상을 뜰 때까지 변호사 일을 했다.
그가 죽을 무렵 32쇄를 거듭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라 셀레스티나≫는 스페인 문학사에서 ≪돈키호테≫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귀족 명문가의 자식인 칼리스토와 여자 주인공인 멜리베아의 죽음을 불사한 사랑과, 이들의 두 하인, 그리고 간교한 늙은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중심축으로 전개되는데, 정신과 물질, 개인 가치와 사회 제도, 주인과 하인, 인간 존재와 그 본질 사이의 투쟁과 갈등이 당시 스페인 하층 문화를 배경으로 생생하고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는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의 정신적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옮긴이
윤용욱은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동 대학 스페인어학과 대학원 졸업 후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로 유학해서 2002년 17세기 스페인 연극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대, 덕성여대, 전북대 등에 출강했고, 현재는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및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강사로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로페 데 베가의 <복수 없는 처벌>의 비교 연구>, <‘국민연극’ 이전의 로페 연극에 대한 고찰>, <티르소 데 몰리나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들과 문화적 개념으로서의 성 역할에 대한 부조리>, <‘환상적 진실’: 17세기 초 스페인 희극에 나타난 바로크적 변증법>, <로르카 비극의 비극성 연구>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로페 데 베가의 삶과 문학≫(한국외대 출판부)이 있다.
차례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당신의 미천한 종 셀레스티나가 이 박쥐의 붉은 피로 쓴 문서의 주문을 빌어 간구하오니, 암늑대의 눈알과 숫염소의 피와 수염, 그리고 독사의 기름을 제물로 기꺼이 받으시고 제 청을 부디 들어주소서! 여기 제가 지금 꼬고 있는 끈에 마법을 걸어 주시어 멜리베아가 이 끈을 보는 동안 칼리스토를 사랑하려는 욕구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게 해 주소서. 그리고 일을 성사시켜 준 내 수고에 크게 보상할 마음까지도 그녀에게 들게 하소서. 저의 이 간청을 들어주시면 앞으로 열심히 당신의 일을 돕겠나이다. 그러나 만약 제 간청을 거절하신다면 그날부터 저는 당신의 가장 골치 아픈 적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이 끈에 당신의 마력이 옮겨진 것으로 믿고 이것을 가지고 멜리베아에게 가겠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 똑같은데, 무슨 얼어 죽을 가문을 운운하는 거예요? 훌륭한 미덕을 가진 사람은 모두 다 훌륭한 가문의 사람이어야 한답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