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말렌 공주>는 벨기에 출신의 상징주의 극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테를링크가 1889년에 발표한 그의 첫 번째 희곡으로서, 그가 27살이 되던 무렵에 쓴 작품이다. 브뤼셀의 폴 라콩블레즈(Paul Lacomblez) 서점에서 판매하게 되었는데 초판 30부 중 한 부가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이 작품을 읽고 깜짝 놀란 말라르메는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평론가였던 옥타브 미르보에게 건네주게 된다. 1890년 8월 24일 미르보는 <피가로>지에 이 작품에 대해 강렬한 필치로 평을 써서 무명의 젊은 작가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다.
당시 유럽은 삶의 한 단편을 보여 주고자 하는 사실주의, 나아가 자연주의가 유행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사실주의에 관심을 보였던 일부 작가들도 물질적이고 외적인 환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정신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상징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적이고 신비스러우며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마테를링크의 작품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연극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가하게 된다.
마테를링크는 14세기 플랑드르 신비주의자인 뤼스브루크뿐만 아니라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초절주의(超絶主義)를 대표하는 에머슨 등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들은 모두 경험론적이며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보다 직관과 신비의 세계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테를링크가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연극을 모색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비스러운 힘과 초자연적인 것 그리고 무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도 이들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고한 젊은 남녀의 비극적 운명을 다루고 있는 마테를링크의 이 첫 희곡은 그의 후속 작품들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부친들의 불화로 인해 젊은 남녀가 겪게 되는 비극적 운명은 <장님들>, <침입자>, <내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같은 그의 초기 극작품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암시로 이어진다. 이 극에는 또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요소들이 도입되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가 있는데, 예를 들면 극의 첫 장면에서 바녹스, 스테파노와 같은 병사들이 보초를 서며 전날에 나타났던 혜성이 다시 나타나고 별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얄마르 왕자와 말렌 공주의 약혼식이 좋지 않게 끝날 것을 예감하고 또 전쟁이나 왕들의 죽음을 예견하는 것은 버나도와 프랜시스코, 마셀러스와 같은 보초들 앞에 유령이 나타나는 <햄릿>의 첫 장면을 상기시킨다. 게다가 마셀러스(Marcellus)라는 이름은 이 극의 마르셀뤼스(Marcellus) 왕의 이름과 동일하다. 또한 안 왕비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인물들인 얄마르 왕과 말렌 공주를 서서히 독살하는 것 역시 <햄릿>에서 클로디어스가 선왕을 독살하는 것을 상기시킨다. 한편 얄마르 왕자와 말렌 공주의 결혼이 두 아버지들의 불화로 무산되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집안끼리의 싸움으로 비극에 이르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닮아 있다. 이외에도 안 왕비가 얄마르 왕자를 사랑하는 것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페드라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
마테를링크는 이 외에도 동화나 전설, 신화 등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있다. 마테를링크 연구자인 폴 고르세(Paul Gorceix)에 의하면 <말렌 공주>는 그림 형제가 수집한 동화인 <말렌 공주(Prinzessin Maleen)>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200자평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벨기에의 상징주의 극작가 마테를링크의 첫 희곡 작품이다. 부친들의 불화로 인해 젊은 남녀가 겪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다루는 데 불행이 다가올 것을 예고하는 암시와 상징의 기법이 두드러진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모호한 힘과 초자연적인 것 그리고 무한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작품 안에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힘, 그리고 그 앞에 무기력한 인물들의 모습들을 우리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지은이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겐트 출신으로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침묵과 죽음 및 불안의 극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겐트의 자연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어가 모국어였고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8살 때 셰익스피어를 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7년 동안의 생트 바르브(Sainte-Barbe) 기숙학교 생활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며 그곳에서 발견한 신은 사랑의 신이 아니라 공포로 군림하는 독재자였다. 반면 그곳에서 르 루아(G. Le Roy), 반 레르베르크(Ch. Van Lerberghe), 로덴바흐(G. Rodenbach) 등의 친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외에도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베르아랑(E. Verhaeren)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생트 바르브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였으나 글쓰기를 계속하였고, 당시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실었던 <젊은 벨기에(La Jeune Belgique)>에 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변호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든 것은 몇 달 동안의 파리 체류(1885년 가을~1886년 봄)와 그곳에서 만난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빌리에와의 만남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고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고백한다. 빌리에를 통해 마테를링크는 신비(le mystérieux)와 운명(le fatal)과 저세상(l’au-delá)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말렌 공주, 멜리장드, 아스톨렌 같은 인물들은 빌리에와의 만남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시기에 14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신비주의자 뤼스브루크(Ruysbroeck)를 발견하였고 또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상징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발리스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후에 이들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 1886년 3월 마테를링크는 파리에서 만난 젊은 시인들과 잡지 <라 플레이아드(La Pléiade)>를 창간하였고 여기에 자신의 첫 산문 작품인 <무고한 자들의 학살(Le Massacre des Innocents)>(1886년 5월)을 발표한다. 이것은 플랑드르 출신 화가인 브뢰겔(Breughel)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또 파리에 체류하며 쓴 일련의 시를 모아 <온실(Serres chaudes)>(1889)을 발표하는데 마테를링크는 이 시집이 베를렌, 랭보, 라포르그, 휘트먼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그의 첫 희곡 <말렌 공주(La Princesse Maleine)>(1889)를 발표하였으며 셰익스피어, 포, 반 레르베르크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옥타브 미르보의 <피가로> 기사를 통해 유명해진다. 1896년에는 수필집 <빈자의 보물(Le Trésor des humbles)>을 발표하였고, 1908년 스타니슬랍스키가 연출한 <파랑새(L’Oiseau bleu)> 공연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어 1911년 노벨상을 수상하여 작품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상징주의가 꿈꾸었던 일종의 영혼의 연극을 창조한다. 이 새로운 형태 속에는 세 가지 개념이 들어 있다. 첫째는 움직이지 않고 수동적이며 미지의 것에 예민한 인물들이 있는 정적인 극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숭고한 인물(종종 죽음과 동일시되는 이 숭고한 인물은 운명 혹은 숙명이며 죽음보다 더 잔인한 어떤 것이다.)의 존재를 들 수 있고, 셋째는 일상의 비극, 즉 산다는 일 자체가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극 사건은 배우들의 양식화된 연기를 통해 운명과 마주한 영혼의 태도 및 숙명에 천천히 눈떠가는 것을 암시해야만 한다. 인형극(théâtre pour marionnettes)이라고 부른 초기작들은 사실주의극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뤼네 포(Lugné-Poe)와 같은 상징주의자들에 의해 무대화되었다. 신비,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 그리고 현실 너머의 세계를 느끼게 하는 그의 극은 뒤에 오는 초현실주의자들 및 아르토와 베케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침묵이 많고 대사와 대사가 때로는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베케트의 부조리극은 마테를링크를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옮긴이
이용복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강사로 있다. 옮긴 책으로는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파랑새≫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로제 비트락의 극작품에 나타나는 비구술 언어에 대한 연구>, <주네의 ‘발코니’에 나타나는 이미지에 대한 연구>, <샤를 페기의 ‘잔 다르크’에 나타나는 잔 다르크 이미지>, <자크 오디베르티의 ‘동정녀’ 연구-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현실과 허구> 등 다수가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등장인물
1막
1장 성의 정원
2장 성의 한 방
3장 숲
4장 탑 속에 있는 아치 형태의 방
2막
1장 숲
2장 성의 한 방
3장 마을의 어느 길
4장 성의 한 방
5장 성의 복도
6장 공원에 있는 숲
3막
1장 성의 한 방
2장 성의 한 화려한 방
3장 성 앞
4장 의사의 집에 있는 한 방
5장 성의 마당
4막
1장 정원의 일부
2장 성의 부엌
3장 말렌 공주의 방
4장 성의 복도
5장 말렌 공주의 방
5막
1장 성 앞 묘지의 일부
2장 성의 예배당 앞의 방
3장 성의 복도
4장 말렌 공주의 방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난 그녀를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오… 그런데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손을 교차하는 버릇이 있었소, 이렇게, 또 이상한 흰 속눈썹을 지녔었지!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갑자기 상쾌한 넓은 수로 속에 있는 듯했어…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난 그 이상한 시선을 다시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