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박세영은 일제 강점하의 프로 문예 시단을 대표하는 카프의 핵심 세력으로 평가된다. 1924년 귀국 후 박세영은 송영, 이기영, 윤기정, 박영희, 이적효, 임화 등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카프에 가담한다. 이후 그는 카프의 아동문학 기관지 ≪별나라≫의 책임 편집을 맡는 등 프로문예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이 무렵 그의 시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는데, 특히 1927년 카프의 제1차 방향 전환 후 그의 시는 뚜렷하게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초기의 막연한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서 계급적 인식에 입각한 작품들이 다수 발견된다. 1925년 카프 결성 당시부터 이 조직의 맹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왔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해 사회주의 문학 운동의 강경파로 활약했다. 1946년 월북 이후에도 그는 조국평화통일위원, 북한최고인민회의대의원, 문예총중앙위원 등 북한 문예 조직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북한 시단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원과 유만이 공저한 북한 문학사 ≪조선 문학개관≫의 시기 구분을 따르면,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북한 문학은 평화적 민주 건설 시기(1945. 8∼1950. 6), 위대한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시기(1950. 6∼1953. 7), 전후 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1953. 7∼1960)의 세 단계로 나뉜다. 각 단계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창작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다시 주제별로 분류되는데, 박세영의 시들은 이러한 북한 시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1960년대 박세영의 작품 활동은 현재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정치·사상성이 우위에 놓여 있는 북한 문학의 특수한 상황에서 그가 1980년대 말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960년대 박세영의 시는 당의 문예 정책과 밀착되어 전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프로문예운동 시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박세영의 시는 각 시기별로 일정하게 변모했다. 초기 박세영의 시 세계는 감상적 수준의 소박한 경향파 문학에서 점차 목적의식성을 강조한 프로 시의 성격을 띠고 나타난다. 해방 후 그의 시는 평화적 민주 건설 시기,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시기, 전후 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 등 각 단계에 공포된 당의 문예 정책과 일정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1960년대 박세영의 시에서 당면 과제인 김일성 수령의 형상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박세영의 문학적 행적은 현재 추론적 차원에서 진행될 뿐, 구체적인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박세영 시의 보다 명확한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에 발간된 그의 나머지 시집에 대한 확보와 그에 대한 구체적 연구 작업이 시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200자평
북한 <애국가>의 작사가로 잘 알려진 백하(白河) 박세영. 박세영의 시들은 계급의식을 강화시키며 방향 전환에 따른 카프의 창작 방법론에 일정하게 대응했다. 1960년대 당의 문예 정책에 따라 변모해 가며 북한 문예이론의 창작 지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개되었던 박세영의 시에서, 각 시대별 북한 시의 특성을 분명하게 찾을 수 있다.
지은이
박세영은 1902년 7월 7일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7년 배재고보에 입학한 박세영은 1학년 때부터 문우 송영과 함께 ≪새누리≫라는 문집을 발간하며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1922년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나 곧 중퇴한다. 같은 해 4월 중국 상해의 혜령 영문 전문학교에서 수학하며 남경, 천진, 만주 지역을 주유한다.
중국 유학 시절 박세영은 고보 동창생 송영이 간행하던 사회주의 문화 운동 단체 “염군사”의 기관지 ≪염군≫ 1호에 원고를 보내는 등 사회주의 문학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 그가 머물던 곳들이 중국 사회주의 운동의 근거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 이 시기는 시인 박세영의 본격적인 사회주의 문학 운동을 위한 예비적 기간으로 추정된다. 특히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이 무렵에 생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박세영의 시는 계급적 당파성을 띤 프로문학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시기 그의 시들은, 식민지 조국을 떠나 이국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 경치에 대한 서글픔을 동반한 막연한 현실 인식이 주조를 이룬다. <양자강(揚子江)>, <강남(江南)의 봄>, <해빈(海濱)의 처녀(處女)>, <포구 소묘(浦口素描)> 등 중국 체험을 배경으로 쓰인 시편들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1924년에 귀국한 박세영은 송영, 이기영, 윤기정, 박영희, 이적효, 임화 등과 교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문학 운동 단체인 조선프로예맹에 가담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그는 임화, 박아지 등과 함께 카프의 아동문학 기관지 ≪별나라≫의 책임 편집을 맡는 등 프로문예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1931년에는 김창술, 권환, 임화, 안막과 함께 합동 시집인 ≪카프 시인집≫을 간행하고, 이후 모교인 배재고보에 근무하기도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박세영은 카프의 비해소파로서 같은 해 12월에 조직된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주도적으로 활약한다. 또한 이듬해에는 권환, 김용호, 박아지, 박석정, 안완순, 윤곤강, 이주홍, 이찬, 이합, 조벽암, 조영출과 함께 우리문화사에서 해방 기념 시집 ≪횃불≫(‘저자 대표’는 박세영으로 되어 있다)을 간행한다. 그러나 12인 공동 시집 ≪횃불≫ 간행을 전후한 이 무렵 그는 이른바 제1차 월북파로 월북한다. 월북 직후 그는 1946년 3월 25일에 결성된 북한 사회주의 문학 단체인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에 가담한다. 아울러 1947년에는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해 김일성의 극찬을 받기도 한다. 박세영이 작사한 <애국가>는 현재까지도 북한의 국가(國歌)로 불리고 있다.
1950년대 북한에서의 박세영은 시기별로 전개되는 북한의 문예 창작 방법론의 지침을 일정하게 따르면서, 한편으로는 당의 정책에 부응하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작한다. 가령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발표한 <쏘련 군대는 오는가>, <숲 속의 사수 임명식>, <나도 쓰딸린 거리를 건설한다> 등의 작품들과 김일성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항일 무장 투쟁사를 형상화한 서사시 <밀림의 역사>는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60년대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국평화통일위원, 북한최고인민회의대의원, 문예총중앙위원 등 북한 문예 조직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 시단의 구심으로 활약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까지 간행된 박세영의 시집은 1938년 별나라사에서 간행된 첫 시집 ≪산제비≫를 비롯해 ≪진리≫, ≪나팔수≫, ≪밀림의 역사≫, ≪승리의 나팔≫, ≪룡성시초≫, 여기에 ≪박세영 시선집≫을 더해 도합 7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엮은이
이성천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 문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浮圖)≫, ≪한국 현대 소설의 숨결≫, ≪작품으로 읽는 북한 문학의 변화와 전망≫, ≪한국 소설의 얼굴≫(전 18권) 등의 저서 및 공·편저 도서를 출간했으며, 계간 ≪시와 시학≫, ≪시에≫, ≪시와 사람≫ 등의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주관하는 제10회 젊은평론가상을 받았다.
차례
≪山제비≫
隱瀑洞
山제비(岩燕)
午後의 摩天嶺
自然과 人生
花紋褓로 가린 二層
甘菊譜
젊은 雄辯家
나에게 對答하라
覺書
하랄의 勇士
時代 病患者
歎息하는 女人
最後에 온 消息
이름 둘 가진 아기는 가 버리다
다시 또 가는가
小曲 二題
잃어진 봄
바다의 마음
悲歌
그이가 섰는 딸기나무로
後園
漂泊者
山村의 어머니
處女洞
江南의 봄
揚子江
月夜의 鷄鳴寺
花園이 보이는 二層집
五月의 櫻桃園
北海와 煤山
浦口 素描
明孝陵
鄕愁
沈香江
海濱의 處女
田園의 가을
自畵像
畵家
≪횃불≫
순아
委員會에 가는 길
날러라 붉은 旗
山川에 묻노라
民族 叛逆者
≪수령께 드리는 송가≫
인민의 태양
≪해방 후 서정시 전집≫
나팔수
숲 속의 사수 임명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묏돼지가 붉은 흙을 파헤칠 제
너이는 별에 날러 볼 생각을 할 것이요,
갈범이 배를 채우려 약한 짐승을 노리며 어슬렁거릴 제,
너이는 人間의 서글픈 소식을 傳하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알려 주는
千里鳥일 것이다.
山제비야 날러라,
화살같이 날러라,
구름을 휘정거리고 안개를 헤쳐라.
땅이 거북 등같이 갈러졌다,
날러라 너이들은 날러라,
그리하여 가난한 農民을 위하여
구름을 모아는 못 올까,
날러라 빙빙 가로세로 솟치고 내닫고,
구름을 꼬리에 달고 오라.
山제비야 날러라,
화살같이 날러라,
구름을 헷치고 안개를 헤쳐라.
-<山제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