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문학사조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우선 떠오르는 한 가지는 문학사조의 흐름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문학사조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건 이성과 감성이 서로 교차 또는 중복되면서 흘러간다. 18세기 계몽주의가 철저히 이성에 의존하는 시대였다면, 19세기에 이르면 감정이 지배하는 낭만주의가 문학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이내 다시 이성에 자리를 내주면서 사실주의가 나타난다. 문학사조들은 이름과 양상을 달리할 뿐 이렇게 이성과 감성의 교차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성이나 감성이 지배할 때도 다른 한쪽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다만 잠복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또 한 가지는 여러 가지 문학사조가 우리 문학사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다른 이름, 다른 양상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변의 요소들이 문학의 핵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사실주의적 특성이 그 하나다. 인간의 삶을 그리는 것이 문학일 텐데, 그런 원초적인 이유 때문에 문학에서의 사실주의는 19세기에 그 이름을 얻어서 가장 도도하게 흘러갔지만 그것은 19세기만의 것은 아니었다. 강들이 흘러 바다를 이룬다. 강 하류는 상류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발원지가 있다. 금강, 섬진강, 한강도 거슬러 올라가면 발원지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실주의도 발원지가 있고, 문학이라는 역사를 흘러가면서 이런저런 동네를 지나왔지만 좁아지고 넓어졌을 뿐 흐름이 끊긴 때는 없었다.
사실주의는 문학의 기원부터 있어 왔고, 문학이 존재하는 한 살아남을 것이다. 다만 어떤 형태로 살아남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다음 세대가 보면 어떤 일관된 형태의 사실주의를 실험하고 있지 않을까?
200자평
비판적 사실주의, 아이러니적 사실주의,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객관적 사실주의, 비관적 사실주의, 심리적 사실주의, 낭만적 사실주의, 풍자적 사실주의…. ‘사실주의’는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은 단어다. 그러나 막상 사실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막막하다. 너무 친근하고 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주의란 단어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 및 작품까지 구체적으로 다룬다. 또한 사실주의가 어디서 시작되어서 각 나라별로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현대의 누보로망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학의 흐름을 알려 준다.
사실주의를 가장 쉽고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안내서다.
지은이
조한경은 서울대에서 문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암재단의 지원으로 프랑스 리옹3대학교에서, 학술재단의 지원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교환교수 연구 기간을 가졌다. 한국어 서적의 프랑스어 번역으로는 ≪열두 띠 이야기≫, ≪쥐돌이는 화가≫가 있고 프랑스어 서적의 한국어 번역으로는 ≪미덕이란 무엇인가≫(앙드레 콩트 스퐁빌), ≪에로티즘≫(조르주 바타유), ≪저주의 몫≫(조르주 바타유),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의 역사≫(조르주 바타유),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질 들뢰즈), ≪초현실주의≫(이본 뒤플레시스) 등이 있다. 저서로는 ≪사실주의≫, ≪변혁의 시대와 문학≫(공저), ≪서양 문예사조≫(공저), ≪한국어 한자-불어 사전≫(공저), ≪라모의 조카≫, ≪프랑스 현대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절대인간 사드: 부정의 극단, 극단의 부정>, <미술 비평가 디드로와 비평적 태도>, <바타이유와 에로티즘>, <리베르탱 소설 연구: 에로티즘 또는 허무주의 철학>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서문
제1장 피카레스크소설
1. 피카레스크, 용어와 소설의 탄생
2. 과도기 소설 ≪돈키호테≫
3. 반주인공의 소설
4. 프랑스로 이주한 피카로
5. 피카레스크소설과 17세기 프랑스 풍속소설의 비교·54
6. ≪질 블라스≫
제2장 문학사조로서의 사실주의
1. 사실주의, 용어와 소설의 탄생
2. 사실주의 발생 배경
낭만주의의 반동으로서의 사실주의
시대 상황과 사실주의
과학 또는 실증철학의 발전과 사실주의
3. 사실주의의 발전 및 전개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공쿠르 형제
제3장 자연주의
1. 자연주의, 용어와 소설의 탄생
2. 자연주의의 발생 배경
방법론으로서의 자연주의
시기적 구분의 모호성
산업혁명과 자연주의
3. 졸라와 자연주의
졸라와 과학적 방법
기질의 반응과 ≪테레즈 라캥≫
환경 실험으로서의 ≪루공 마카르≫
시대의 풍속도로서의 ≪루공 마카르≫
≪제르미날≫과 창작 방식
4. 자연주의의 실패
5. 유럽과 미국의 자연주의
수용과 변형
독일의 자연주의
이탈리아의 자연주의
영국의 자연주의
미국의 자연주의
제4장 누보로망
1. 누보로망, 용어와 소설의 탄생
2. 인식론의 변화와 누보로망의 특성
3. 인물의 실종
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사물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레스(res)가 어원인 사실주의(réalisme)라는 용어는 원래 문학보다 철학적 또는 신학적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초기의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문학에서의 사실주의의 개념과는 달리 철학적·신학적 개념으로서의 관념론 또는 유심론과 비슷한 개념으로, 유명론 또는 개념론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면 문학, 예술 사조로서의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했을까? 우리는 적절한 신중을 기하면서 우선 오늘날과 같은 문학, 예술 사조로서의 사실주의의 개념이 19세기의 프랑스에 대두된 과정과, 의미의 부침을 겪으면서 광범한 문학 세계에 수용된 경위를 고찰하려고 한다.
사실주의라는 용어가 18세기 말엽 독일의 낭만주의 심미학자들에 의해 문학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당시의 그 용어는 특정한 어떤 작가들이나 특정한 어떤 시대 혹은 학파를 가리키지는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개념론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주의라는 용어가 보다 구체적인 문학의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곳은 프랑스이며, 시기는 1820년대다.
2.
낭만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한 사실주의는 물론 그 자체로서 존재 가치가 없지 않지만, 사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론적으로 답변할 수 없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선 무엇이 묘사의 진실성인가 하는 문제다. 묘사의 진실성은 단지 사진기로 찍는 것과 같은 진실성을 의미하는가?
니체가 근대문학사에 있어서의 나폴레옹이라고 격찬한 바 있는 스탕달은 ≪적과 흑≫(1830)에서 “소설이란 길을 따라 들고 걸어가는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유명한 표현은 사실주의 문학의 창작 방법과 그 특징을 지시하는 방향타였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사실주의는 모든 주제를 다루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는 어떤 주제가 속되다느니, 또는 너무 시시하다느니 하는 이유로 제외된 경우가 있었는데, 사실주의 문학은 이러한 태도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화학자에게는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더럽지 않다. 작가는 이러한 화학자처럼 객관적이어야 한다. 작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작품에서는 배척해야 한다. 어떤 곳에 대변 무더기가 없어야 한다는 법은 없고, 또 대변 무더기는 그것대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삶에는 훌륭한 의도가 있는 반면, 나쁜 정욕도 있게 마련이다”라는 말로 작가를 화학자에 비교한 체호프에 의하면, 사실주의 문학에서의 진실성이란 더럽고, 천하고, 구역질 나고, 악한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사실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개입하지 않고 또 사실을 왜곡함이 없이 주제를 다루어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가 표방한 위와 같은 주장은 주제의 영역을 넓히는 데 있어 대단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어떤 작가도 완전한 객관성을 충족할 수는 없다.
3.
발자크가 농촌을 그릴 때는 대지주에 대항하는 시골의 소지주의 투쟁을 염두에 두었다. 그 방면에 있어서 발자크의 관심은 인간보다는 문제성 쪽에 쏠려 있었다. 조르주 상드는 전원의 목가를 그린 글 속에서 거의 부르주아적인 모습을 띤 농민들을 소개했다. 졸라 역시 ≪대지≫에서 프랑스의 한 농민의 모습을 그려 보이는데, 이때의 졸라는 다른 어떤 작가들보다 농민들의 묘사에 더 큰 진실과 힘을 부여했다.
노동자의 세계가 소설 문학 속에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졸라부터였다. ≪제르미니 라세르퇴≫나 ≪레미제라블≫에 서민들의 실루엣이 다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하나의 ‘사회 계급(classe sociale)’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비록 주어진 조건의 희생자인 저주받은 계급으로서이긴 하지만, 졸라에 이르러서다. ≪목로주점≫에서 졸라는 어떻게 해서 ‘환경’이 피폐와 타락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는 ≪제르미날≫에서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무산대중을 피비린내 나는 방향으로 몰고 가게 되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부르주아 사회의 대대적인 붕괴를 예고하게 되는가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루공 마카르≫에서 다양한 계급의 일상생활, 즉 급료, 생활필수품의 가격, 집세, 금전 대출의 체제 등에 관해 대체로 정확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졸라는 그 나름대로의 색채와 눈요깃거리들을 갖춘 한 시대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 보이는 동시에 사회학적인 진단을 내려 보인다. 그는 비록 간략하나마 자본과 노동, 작은 상인들과 대상인들 사이의 갈등을 분석해 보였다. 그 어느 경우에도 그는 환경이 개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증명해 보기를 잊지 않았다.
4.
고전적인 사실주의의 개념이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이 되면서 소설은 이제 새로운 형식을 찾아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주의였다. 따라서 소설에서 새로운 형식의 창안은 근시안적인 비평가가 비난하듯이 사실주의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한 걸음 앞선 사실주의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소설이 결별을 선언한 것은 전통적인 사실주의이지 사실주의 자체는 아니었다. 특히 로브그리예는 그러한 소설적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한 작가였다. 현실을 표방하지 않는 문학작품 또는 학파는 없다. 낭만주의자들이 고전주의자들을 비난한 것도 사실주의의 이름으로였다. 자연주의자들이 낭만주의자들을 몰아낸 것도 사실주의의 이름으로였다. 모두 나름대로 옳았다. 소설은 끊임없는 변화를, 또는 혁명을 겪어 왔지만, 어떤 문학적 혁명도 사실주의의 이름을 내걸지 않은 것이 없었다.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조이스, 카프카, 포크너(William Faulkner), 베케트 등도 그 반열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누보로망도 거기에 한 걸음을 보탠 것 이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