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신어≫는 역사적으로 ≪육자(陸子)≫·≪육자신어(陸子新語)≫·≪운양자(云陽子)≫ 등으로도 불리며, 유가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법가사상, 도가사상, 음양가사상을 보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책이다. 당나라 때 상당히 유행했으나 송대에 이르러 잡가로 편입되어 일부 인용되었을 뿐이고, 남송 이래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현존하는 판본은 명나라 때의 것이다.
≪신어≫의 주제는 한 마디로 지식에 기반을 둔 통합의 정치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육가는 천지자연의 이치가 인간사와 떨어질 수 없다는 ≪주역≫ 중심의 천도관을 가졌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도가 존재하고 상황에 따라 규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변통의 역사관을 지녔다. 인의도덕을 핵심 개념으로 유가이념과 현실정치를 결합시키고 있으며, 폭력과 형벌에 반대했다. 도가사상을 융합해 교화를 중시하면서도 무위의 통치 방법을 권장하고, 때로는 제국의 질서를 위한 법률의 응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 밖에 군주의 용인술, 간신 변별론, 현인 자질론 등 융통성 넘치는 통치술을 얘기하고 있는 곳도 많다. 이 책을 통해, 천인합일 사상을 현실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승화시키고 유가사상을 군주전제국가 이념과 연결하는 육가의 시도뿐만 아니라 지식의 어용화 등 그것이 갖는 한계 또한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다.
≪신어≫는 도덕의 이상 국가를 꿈꾼 선진 유가의 정치이념이 제국의 정치안정이라는 통치이데올로기로 전환해 가는 기초를 다져 준 매우 중요한 책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중시되지 않았던 것은 내용상 여러 사상이 융합되어 있거나 통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 맹자(孟子)를 추종한 송나라 이후 성리학자들이 도덕지상이란 유가의 순수성만을 강조해 순자 등 유가 내의 현실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순자≫·≪신어≫ 등은 주류 유학에서 완전히 배척되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순자-육가로 이어지는 유학 현실주의야말로 공자로부터 비롯된 유가사상의 또 다른 한 축이었음을 상기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200자평
권력은 말 위에서 얻을 수 있으나 정치는 말 위에서 할 수 없다면서 한고조 유방을 말에서 끌어내려 통치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준 사람이 육가다. 그의 저작 ≪신어≫는 한나라 통치 이념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후대 중국의 학자들로부터 한결같은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지은이
전국시대 말기인 서기전 240년경에 태어나 중국의 통일 과정을 목도하고 유방(劉邦)의 한나라 건설 과정에 동참한 사람이다. 평민 출신으로 남부 초나라에서 성장하였으며, 순자(荀子)의 제자인 부구백(浮邱伯)의 영향으로 유가의 경학 지식을 깊이 공부했다. 특히 정치사상의 보고인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밝았다.
서초패왕 항우(項羽)와의 전쟁 중에 유방을 따랐지만 전공을 세우거나 외교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의 탁월한 언변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한 왕조 성립 후 변방 제후국에 사신으로 나가면서부터였다. 오늘날 중국의 광동(廣東), 광서(廣西) 일대인 남월(南越)에 출사해 남월왕 조타(趙佗)를 말로 설득해 한나라에 복속시킨 공로로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육가는 정치적 영향력보다 깊은 학식과 외교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지식의 중요성으로 유방을 설득해 ≪신어≫를 헌상함으로써 전통 중국의 정치 이념을 유가사상으로 기울게 만든 단초를 마련했다. 여태후 집안의 정권 찬탈 음모를 저지하고 유씨의 한나라를 탄탄히 만드는 데 일조했으며, 권력욕심 없는 유유자적한 후년을 보내다 서기전 170년 천수를 누리고 임종했다.
옮긴이
대만의 중국문화대학교에서 ≪상군서(商君書)≫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荀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사상의 현대화, 동양 경전의 해석과 재해석,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사상적 대안 모색에 몰두하고 있다. 계간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용인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다.
저서로는 ≪중국사상의 뿌리≫, ≪상군서: 난세의 부국강병론≫ 등이 있고, 역서로는 ≪중국정치사상사≫,≪순자≫ 등이 있다. <사회철학으로서 현대유학의 행로>, <도덕군주론: 고대 유가의 성왕론> 등 40여 편의 한국어 논문과 <상앙(商鞅)의 군국주의 교육관>, <순자 사상 중 ‘해폐(解蔽)’·‘정명(正名)’의 정치적 의의> 등 6편의 중국어 논문이 있다.
차례
1. <도기(道基)>편 – 도의 기초
2. <술사(術事)>편 – 사례의 기술
3. <보정(輔政)>편 – 정치의 보좌
4. <무위(無爲)>편 – 무위의 정치
5. <변혹(辨惑)>편 – 미혹의 변별
6. <신미(愼微)>편 – 작은 일도 신중하게
7. <자질(資質)>편 – 현량의 자질
8. <지덕(至德)>편 – 지극한 덕
9. <회려(懷慮)>편 – 한 가지 생각
10. <본행(本行)>편 – 근본의 실행
11. <명계(明誡)>편 – 명백한 교훈
12. <사무(思務)>편 – 생각해야 할 임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은 한 가지 원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으며,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위신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세계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내면부터 조절하고, 먼 곳을 평정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가까운 일부터 바르게 정돈합니다.
-79쪽
세상이 쇠락하고 도덕이 상실된 상황은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군주 자신이 그런 행위를 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입니다. 사악한 정치는 사악한 기운을 낳으며, 사악한 기운은 재앙과 이변을 낳습니다.
-95~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