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베르펠 후기 작품 중 걸작으로 ‘독일어로 쓴 가장 훌륭한 희극’이라는 평가가 따르는 작품이다. 뉴욕 초연 흥행 이후 영화, 방송극 등으로 각색, 방영되어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유대인 야코보프스키와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스테르빈스키 대령이 전쟁이라는 위기를 맞아 어쩔 수 없이 동행한다. 야코보프스키는 차를 가졌지만 운전을 할 줄 모르고, 대령은 운전을 할 줄 알지만 이동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피난길에는 당번병, 대령의 연인 마리안도 함께한다.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데다 독일군 추적까지 따돌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야코보프스키는 매번 기지를 발휘해 위기의 순간에 기적을 만들어 낸다. 반목을 끝내고 극적으로 화해한 두 사람은 함께 프랑스를 탈출하는 배에 오르고, 조국에 남기로 한 마리안이 이들을 전송한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대조적인 두 인물, 야코보프스키와 대령의 화해를 통해 종교 화합이라는 주제를 전한다.
200자평
베르펠이 미국 망명 시기에 집필한 마지막 희곡이다. 작가는 망명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비유와 상징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경험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194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연극, 영화, 오페라, TV영화, 방송극 등으로 소개되며 대중적 인기를 끈 이 드라마는 문학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서 독일 망명 문학의 일면, 베르펠의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종교적 갈등도 들여다볼 수 있다.
지은이
프란츠 베르펠은 20대에 발행한 첫 시집으로 당시의 독자들을 열광케 했으며, 같은 표현주의 세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휘트먼의 영향을 받은 찬미가풍의 격정적인 표현주의 시집 ≪세계의 친구≫(1911) 발표 이후 낭송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드라마 분야에서는 먼저 <거울인간>(1921) 등 상징적이고 다소 과장된 수사학적 표현의 이념 극 내지 구원 극을 썼는데, 점차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룬 희곡들로 극작 영역을 넓혀 간다. 미국에서 저술한 후기 작품에는 근본적으로 세계관이 다른 두 이민자의 운명을 다룬 희극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1945), 현대판 신곡으로 구상되었으나 오히려 미래과학 공상 소설에 가까운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1946)이 있다. 특히 앞의 작품은 독일어로 쓰인 가장 뛰어난 희극 중 하나로 꼽힌다. 십여 편의 드라마, 수많은 시와 단편, 아홉 편의 완성된 장편소설 및 두 편의 미완성 장편소설 외에 방대한 에세이들을 남겼다.
옮긴이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 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있고,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실러의 ‘빌헬름 텔’ 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2014년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독일 명작 산책’과 ‘독일 작가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34-135쪽,
영원한 유대인: 비스바덴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어요. 독일인들이 프랑스 대부분과 해안 전체를 점령할 거예요. 우린 지금 시간이 없어요. 벌써 선발 부대가 시청에 도착 중이에요. 포로 교환 명부와 함께!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야코보프스키: (이마를 닦으며) 두 가지 가능성이라….
영원한 유대인: 하나는 프랑스 시내로 들어가는 거죠. 그건 좋지 않아요! 아니면 이룬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바욘에서 필요한 비자를 얻는 거죠….
대령: 그리고 생장드뤼즈…. 위급한 경우에는….
영원한 유대인: 누가 알겠어요? 바다는 언제나 수수께끼 같아요….
마리안: (눈물을 머금은 채 성 프란체스코 앞으로 간다.) 신부님! 전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요. 전 프랑스 여자예요. 죄 많은 인생을 살고 있어요. 이미 오랫동안 미사를 보지 않았고 고해도 하지 않았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게 축복을 내려 주시겠어요?
성 프란체스코: 내 딸, 프랑스의 여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겁니다. 그 죄는 악의가 아니라 신심이 약한 데서 비롯된 거니까요. 얼굴을 보니, 당신은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겁니다, 프랑스 여인이여!
(강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영원한 유대인: 돌풍이오! 자 내 말을 믿겠지요. 신부, 바욘으로 갑시다! 우리가 떠날 시간이오….
(두 사람이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퇴장한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져서 음식을 쌌던 종이들이 무대 위에서 소용돌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