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의 특징은 철저하게 문헌 자료에 바탕을 둔 실증성에 있다. 오직 문헌에 나타난 자료만을 대상으로 할 뿐, 연구자의 직관이나 추정에 근거한 가상적 자료는 받아들이지 않는, 즉 문헌에 나타난 자료만을 근거로 하여 이로부터 문법 형태소의 형태, 분포, 기능을 귀납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옛말본≫의 기본적인 방법이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추상적 실체인 언어능력과는 달리 ≪우리 옛말본≫은 실제로 실현되는 언어 수행의 결과인 문헌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문헌에만 의지하는 실증주의 방법이 드러내는 한계에 대한 인식 또한 분명히 했다. 문헌이 오직 긍정적 자료만을 보여 준다는 표현이 이를 말해 준다. 옛말은 현대말과 달라 연구자 자신이 언어 직관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무엇이 가능한 문장이고 무엇이 불가능한 문장인지를 직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어떤 문법 형태소의 분포나 기능을 밝히기 위해서는 가능한 환경을 다양하게 확인해 보아야 할 터인데, 옛말은 이 점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우리 옛말본≫은 문헌에 나타난 것을 대상으로 하여 이로부터 일정한 문법 규칙을 이끌어내는 귀납적 방법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우리 옛말본≫은 철저히 기술언어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술언어학의 형태론 기술은 문법 형태소를 발견하고, 각 형태소가 출현하는 분포를 상세하게 기술하며, 이들 각 형태소가 수행하는 문법 기능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 옛말본≫은 우리말의 토씨와 씨끝을 중심으로 각 문법 형태를 분석해 내고, 이들 문법 형태들이 나타나는 분포를 구체적인 용례를 통해 제시하며, 이들의 구체적인 문법 기능을 밝혀 제시했다.
200자평
허웅이 독창적인 이론으로 체계를 세운, 15세기 국어 문법 연구서. 이론 면에서나 자료 면에서나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오직 문헌에 나타난 실증적 자료를 기초로 15세기 국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체계를 세운다. 현대 국어의 문법, 국어 문법사에서 오랫동안 주요한 지침서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국어 문법의 공시적 연구, 통시적 연구를 수행하는 데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지은이
허웅 선생은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언어학자이자 국어학자였으며, 한편으로는 국어 운동가였다. 생전에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와 한글학회 회장을 오랫동안 지냈다. 1918년에 태어나 2004년 86세에 돌아가셨다.
허웅 선생의 국어 연구는 민족 문화를 잇고 가꾸는 데서 시작했다. 청년 시절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처음 대하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앞길을 결정한다. 그래서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정신이며, 그 겨레의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다’라는 생각을 일찍이 마음에 간직했다. 이러한 생각은 허웅 선생 학문의 바탕이 되었으며, 평생을 일관되게 지닌 학문적 태도였다.
그래서 허웅 선생 학문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연구’와 ‘실천’, 둘의 조화라고 하겠다. 선생의 학문은 국어 연구를 언어과학으로 승화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어를 지키고 가꾸는 실천 운동을 전개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15세기 국어 형태론은 앞에 든 ≪우리 옛말본≫에 집대성되어 있다. 15세기 국어 문법에 대한 공시적 연구에 이어, 선생은 국어 문법사 연구에 착수했다. 우선 범주별 연구에 들어가, 때매김법의 변화를 추적했다. 각 시기별 때매김법을 공시적으로 기술함과 동시에 시기별로 변화해 움직이는 모습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15세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때매김법사 연구인 ≪국어 때매김법의 변천사≫(1987)에 정리되어 있다. 그 이후 선생은 국어 문법사 연구의 방법을 수정하여, 세기별로 공시적으로 기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변화의 모습을 추적했는데, 그 첫 결실은 16세기 국어 문법의 공시적 기술과 그 15세기로부터의 변화를 다룬 ≪16세기 우리 옛말본≫(1989)과 ≪15·16세기 우리 옛말본의 역사≫(1991)로 나타났다.
옮긴이
1953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및 동 대학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일반언어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어 문법과 문법 변천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알타이 언어 현지 조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남북언어 표준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국립국어연구원 어문규범연구부장,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장 등을 겸임한 바 있으며, 지금은 문화부 국어심의위원,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 한글학회 연구이사, 우리말글학회 회장,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어통사론≫, ≪한국어 문법의 연구≫, ≪한국어 문법사≫, ≪언어학과 인문학≫(공저), ≪국어지식탐구≫(공저), ≪구어 한국어의 의향법 실현방법≫, ≪20세기 초기 국어의 문법≫, ≪인문학의 학제적 연구와 교육≫(공저), ≪남북 언어의 문법 표준화≫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옛 문헌 목록
Ⅰ. 앞머리
1. 말본의 두 큰 부문: 통어론과 형태론
2. 말본의 몇 가지 기본 개념
3. 그 당시의 음운학 대강
Ⅱ. 조어론: 낱말 만들기
1. 조어론과 인접 부문
2. 파생법
3. 합성법
Ⅲ. 준굴곡론: 임자씨와 토씨
1. 임자씨와 토씨
2. 자리토씨
3. 연결토씨
4. 물음토씨
5. 도움토씨
6. 토씨 겹침
Ⅳ. 굴곡론: 풀이씨와 그 활용
1. 풀이씨와 씨끝
2. 마침법
3. 이음법
4. 이름법과 매김법
5. 높임법
6. 인칭법
7. 주체-대상법
8. 때매김법
9. 강조-영탄법
Ⅴ. 그 밖의 품사들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와 같이 낱말은 하나 또는 둘 더 되는 형태소로 만들어져 있는 것인데, 그 형태소의 꼴과 종류와 그것이 결합되는 방법은 각 언어에 따라 다르다. 형태소의 됨됨이, 그 종류,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낱말을 만드는 방법, 또는 낱말을 형태소로 분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문법학의 한 부문을 ‘형태론(形態論)’이라 한다.
-25쪽
낱말은, 월 안에서 차지하는 그 구실, 즉 월의 어떠한 성분이 될 수 있는 자격과, 굴곡의 방식에 의해서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렇게 나뉜 낱말의 부류를 ‘씨(품사)’라 한다.
낱말을 분류하는 데는, 그 낱말이 가지고 있는 뜻을 고려하는 수도 있기는 하나, 뜻에 의해 분류해 나가보면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어서, 이로써는 몇 가지 국한된 부류의 갈래를 세울 수 없게 된다. 낱말의 뜻은 복잡하여 낱말 사이의 뜻의 공통성에 따라 몇 가지 국한된 수의 갈래를 세우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