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빅토르 위고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총 스무 권의 크고 작은 시집 중 옮긴이는 이 책의 분량을 감안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동방시집≫(1829)으로부터 생전에 마지막으로 간행된 시집인 ≪정신의 네 바람≫(1881)에 이르기까지 열 권의 시집과 사후 유고집으로 나온 ≪모든 리라≫와 ≪마지막 꽃다발≫의 두 권을 택해 총 50편의 작품을 선별, 수록했다.
위고는 ≪가을 나뭇잎≫(1831), ≪황혼의 노래≫(1835), ≪내면의 목소리≫(1837), ≪빛과 그림자≫(1840)와 같은 일련의 우수에 찬 서정시집들을 발표한다. ≪가을 나뭇잎≫을 쓰면서, 20대 청춘의 쇠락에서 생겨난 우울, 부인과의 불화로 인해 깊어진 불안, 문학 투쟁의 격렬함에서 빚어진 피로를 한탄하면서도, 아이들이 선사하는 가정생활의 소박한 행복 등을 노래하며 기분 전환을 하고자 애썼다. ≪황혼의 노래≫는, 혁명의 암운이 채 가시지 않은 입헌군주 체제하의 불안한 정정의 내일에 대한 위고의 고민과 함께,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 가까워지면서 피어난 새로운 사랑과 그로 인한 위고의 번민을 토로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서, 위고는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쥘리에트 드루에에 대한 사랑을 몽상에 잠긴 듯 읊조리면서, 한편으로는 좀 더 차분하고 진지하게 내면을 응시하는 시인이 되는데, 중상모략당하고 오해받는 고상한 스스로의 모습을 ‘올랭피오’라는 상징적인 인물에 투영한다. ≪빛과 그림자≫는 앞서 집필한 내밀한 서정시 연작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인류의 빛이 되어야 할 시인의 직분에 대한 한층 깊어진 철학적 명상과 함께, 가엾은 사람들의 삶을 향한 연민을 통해 개인의 불행을 딛고 일어선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준다.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전복시키고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 3세를, 위고는 ≪징벌시집≫을 통해 거침없는 웅변과 독설로 단죄한다. 이 시집은 제2제정 권력의 철저한 감시와 출판 금지 등 숱한 어려움을 뚫고 은밀하게 반입되어 파리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프랑스인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내일’에 대한 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정관시집≫은 1839년에서 1855년까지 17년에 걸쳐 쓴 시들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위고의 표현대로 “한 영혼의 회상록”이다. 이 시집은, 맏딸 레오폴딘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1843년 9월 4일을 경계로 ‘옛날’과 ‘오늘날’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그가 걸어온 영혼의 역정을 투사하고 있다. 작품의 산실이 된, 망명지 노르망디의 광막한 바다에 둘러싸여, 갈수록 인생과 우주의 불가사의에 크게 동요하던 위고는, 1853년 우연히 체험하게 된 강신술을 통해 죽음 저 너머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철학적 성찰의 해답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정관시집≫을 완성할 무렵, 위고는 영혼의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 우주 만물은 선행과 사랑의 미덕을 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설파하는 신의 메신저가 되기에 이른다. ≪제 세기의 전설≫은 특히 중세에서 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위대한 시기들을 배경으로 영웅담과 함께 시대별 영혼들을 거대 상상력으로 그려 낸 서사시집으로, 위고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류 진보의 행적과 영속성을 확인하고 있다.
200자평
≪레미제라블≫이라는 걸작을 남긴 빅토르 위고는 사실 수많은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스무 권의 시집 중에서 50편의 작품을 엄선한 것이다. 위고는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우수에 찬 서정시들을 발표했지만, 그 밖에도 화려한 색깔과 강렬한 빛으로 지중해나 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의 경치 등을 뚜렷한 개성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위대한 대문호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은이
빅토르 위고(Victor M. Hugo)는 1802년 2월 26일 브장송(Besançon)에서 육군 대위인 아버지와 어머니 소피 트레뷔셰(Sophie Trébuchet) 사이의 삼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 때 독서와 시 창작에 매료되었던 위고는 이듬해 그의 일기에 “나는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기록해 두면서, 불과 열한 살의 나이에 프랑스의 문호(文豪)가 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시인으로서 위고의 재능은 일취월장해, 열다섯 살 때 툴루즈(Toulouse)에서 개최된 문학 경연대회에서 입상했으며, 2년 뒤 드디어 같은 대회에서 금백합상을 수상했다. 이에 크게 고무된 위고는 바로 그해에 형들과 함께 ≪문학 수호자(Conservateur littéraire)≫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822년, 그의 첫 시집인 ≪송가(Odes)≫를 발간했다. 그의 시를 읽은 국왕 루이 17세는 거드름 섞인 호평과 함께 은급을 하사했는데, 이로써 위고는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얻었다.
스물세 살의 위고는 프랑스 왕실로부터 작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기사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이 무렵부터 위고는 여러 잡지에 문학평론을 싣기도 하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간의 문학 논쟁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낭만주의 문학 이념의 초석을 다졌다. 2년 뒤 위고는 마침내 희곡 <크롬웰(Cromwell)>의 서문 발표를 통해 고전주의 문학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서면서 낭만주의 작가들의 수령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즉 그를 중심으로 제2의 세나클(Cénacle)이 형성되면서, 젊은 작가들과 지지자들이 전투적인 의지로 단합했던 것이다.
1830년 2월에 상연된 희곡 <에르나니(Hernani)>의 성공으로 고전주의에 승리를 거둔 위고의 낭만주의 연극은, 그해 ‘7월 혁명’의 성공으로 진보적인 귀족 출신의 루이 필립(Louis-Philippe)이 새 국왕에 즉위한 이래 10여 년간 연이은 성공을 거두는 한편, 위고는 뛰어난 서정시집들을 잇달아 발표해 마침내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것은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얻어 낸 개인의 영예이자 낭만주의의 승리를 확인한 쾌거였다.
하지만 2년 후인 1843년은 <성주들(Les Burgraves)>의 뜻밖의 실패로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던 위고의 연극이 쓰라린 패배를 당한 해며, 그가 애지중지하던 열아홉 살의 맏딸 레오폴딘이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센강 하류 빌키에(Villequier)에서 사위와 함께 보트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해이기도 하다. 이 불행한 사고로 인해 위고는 6개월이나 펜을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좌절과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국왕 루이 필립의 호감에 힘입어 1845년 상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 위고는 한동안 보수 왕정제와 공화제 사이에서 갈등을 겪던 끝에 1848년 공화제를 지지하는 우파 의원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그가 추종했던 루이 보나파르트(Louis Bonaparte)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어서 황제에 즉위하자, 위고는 곧바로 민중 저항운동에 앞장섰고, 이로 인해 망명의 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후 나폴레옹 3세는 모든 국외 추방자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지만, 위고는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정관시집≫, ≪제 세기의 전설≫과 같은 심오한 시집과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다.
1870년 위고는 기차역에 운집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파리로 돌아왔다. 그 이후 프로이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시민들이 조직한 자치 정부이자 ‘피의 일주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파리 코뮌(Paris Commune)에 대해 지지를 표했던 위고는, 그 죄목으로 다시 2년간 국외로 추방되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그 뒤 파리로 돌아온 위고는 1876년 다시 상원 의원에 선출되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는 한편, ≪할아버지 되는 법≫, ≪교황≫, ≪정신의 네 바람≫ 등 새로운 시집들을 간행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1885년 5월 22일 83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빅토르 위고는 총 스무 권의 시집, 열 편의 희곡, 열 편의 장편소설, 다섯 권의 논집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옮긴이
윤세홍은 1958년 서울의 한 근면한 가정에서 삼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학교 밖에서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 이곳저곳으로 몇 차례 이사를 하면서도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많은 문학 서적만큼은 그때마다 잃어버리는 법이 없었던 형님들 덕에 청소년기에 들어서서는 자연스레 독서를 즐기며 공상에 잠길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고등학생 시절 가끔씩 선 멋을 부리며 습작하는 데에서 미묘한 희열을 느꼈던 문학적 취향과 서점 안을 기웃거리던 호기심은,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그렇게 지워진 듯했다. 그러던 중 교양 과목 삼아 접한 불문학 강의는 일생일대의 신비한 동요를 불러일으켰고, 이미 고인이 된 불문학자 강거배 교수의 참스승다운 가르침이 가슴 설레는 미지의 인생 항로로 이끌었다.
졸업 후 1년쯤 지나서야 부모님의 승낙을 얻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7대학에서 불어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파리 4대학으로 옮겨 불문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부족한 아들을 끝까지 믿어 주신 부모님과 이해심 깊은 아내의 격려 덕분에 10년 유학 생활의 결실로 1994년 <빅토르 위고의 작시법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이후 창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시 강의를 맡고 있고, 빅토르 위고와 베를렌 시의 예술성에 관한 연구 논문 발표를 이어 나가고 있다.
차례
기다림
달빛
몽상
석양의 햇살 I
황홀
어느 여인에게
아틀라스산에서의 어느 날
어린아이
꽃이 만발한 5월의 초원
밤의 대양
올랭피오에게
6월의 밤
시인의 본분
어느 시인에게
바닷가에 잠든 한 아이에게 바치는 묘비명
제비가 봄에 찾는 것은
저물어 가는 밤
젊은이들이여, 남의 말을 삼가라
전원을 찾아 나선 시인
푀이앙틴에서
오라! 보이지 않는 플루트가
행복한 사람
샘터
내일, 새벽 일찍
왔노라, 보았노라, 살았노라
들판의 안개 속으로 달이 보일 때
별
벼락
황혼
죽음
아침 산책
설명
봄이 오면
걸인
저녁의 기쁨
목동과 양 떼
어린 시절
하늘엔 광대한 빛이 넘치네
5월 1일
현관 처마 밑의 새끼 새
모래사장에 무리 지어 있던 사람들
소 울음소리
이제 계절이 저물어
잠든 보아스
여자의 손가락
파종의 계절, 저녁
가엾은 아이들
깨진 단지
봄
숲속에 도사린 위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수정과 같은 그대의 시가 흘러나오도록 하라.
또한 지나는 길에, 땅에서 새어 나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든 물을 엄숙한 물결 속으로 거둬들이는,
꿈과 사상의 광대한 물줄기를, 풍요로워진 영혼들을 가로질러,
평온하고 순수한, 무한의 심연인 하느님을 향해
흘러가도록 하면서, 그대의 시가 달아나게 하라!
그대여, 어둠 속에서 행복하여라. 그대의 잊힌 삶 속에,
고매하고 성스러운 그대의 고요 속에
숨어 살라, 신비로운 사색가여!
또한 병들었지만 진지한 나그네가 있어,
우연히 그대의 은신처를 찾게 된다면,
그로 하여금 그대에게서 평화와 은밀한 소망을 얻게 하고,
피로를 잊고, 위험을 잊도록 하라.
또한 저 멀리, 모든 백성이 같은 물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대의 맑은 정신에서 물을 마시게 하라.
그대, 샘물처럼 작아지고, 강물처럼 커져라.
-<어느 시인에게>, 48~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