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극은 오십대 노동자 윤희중의 집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는 20년 동안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감독으로 진급하지 못했고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간다. 윤씨가 다니는 공장 사장은 감독 승진을 미끼로 윤씨의 딸 세숙을 첩으로 줄 것을 제안한다. 윤씨는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강직한 성품을 가졌지만 가난한 현실이 그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사장 제의를 수락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큰아들 세현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집을 떠난다. 세현이 남긴 편지를 읽고 윤씨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해고를 무릅쓰고 혼담을 거절한다.
이 작품은 가난하지만 바르게 살아가려는 윤씨 일가를 통해 어렵고 혼탁한 현실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1930년대 풍자를 통해 비판을 유도했던 작가의 주된 극작술에서 벗어나 희극적인 요소가 배제된 채 노동자 집안의 일상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윤씨 일가의 가난한 삶은 노동자의 힘겨운 생활과 그들이 처해 있었던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윤씨가 감독으로 승진하는 것과 해고 사이에서 겪는 고통은 윤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삶이라는 집단 차원의 고민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1930년대 후반에도 작가의 진보적 세계관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200자평
1939년 7월 ≪문장≫에 발표된 단막극이다. 송영이 상업 극단 작가로 활동할 때 발표한 것이지만 그 취향에만 함몰되지 않으려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지은이
송영은 본명은 무현(武鉉)으로 1903년 5월 24일 서울 서대문 오궁골에서 태어났다. 송동양, 수양산인, 앵봉산인, 석파 등 필명을 사용했다. 배재고보 재학 당시 3·1 운동을 체험한 뒤로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1922년 이적효, 이호, 최승일, 김영팔 등과 프롤레타리아 문예 단체인 염군사를 조직했으며 기관지 ≪염군≫을 기획했다. 1923년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귀국했다. 1925년 7월 ≪개벽≫ 현상 공모에 <늘어가는 무리>가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1935년까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참여, 아동 문예 운동과 연극 운동, 소설 창작에 힘썼다. 카프가 해산한 뒤 1937년에는 동양극장 문예부원으로 활동하며 대중극 대본을 창작했다. 해방 이후 월북해 1946년 작가동맹상무위원을 시작으로 조선연극인동맹위원장, 2∼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영화 촬영소 소장 등 요직을 거쳤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용광로>, <석공조합대표> 등과 희곡 <호신술>, <황금산>, <역사>, <백두산은 어디서나 보인다> 등이 있다. 정신 질환을 앓다가 1978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차례
人物
一幕, 一場
同, 二場
<尹氏 一家>는
송영은
책속으로
세현: 아버지, 어머니 안영히 계십시요.
저는 이왕 부르터난 김에 떠나가 버리겠습니다. 반드시 저는 만족하실 만큼 성공을 해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 계시더라도 세숙이만은 남의 첩으로 주지 마십시오. 왜, 귀하게 자라난 어린 누이를 그렇게 만드시려고 하십니까. 저는 멀리 가면서도 반드시 세숙이 형제만은 아버님, 어머님 슬하에서 행복되게 커 가리라고 믿습니다. 세숙아, 아무쪼록 마음을 똑바로 그리고 대담하게 먹고서 굳세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재숙아, 야학이나마 열심으로 잘 다녀라. 그러면 안영히 계십시오. 늙으신 두 분을 배반하고 떠나가는 저의 심정을 너그러이 보살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