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이구조는 193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아동문학가로, 창작과 이론을 병행했다.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1942년 타계할 때까지 ≪까치집≫ 한 권을 상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아동문학사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동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사실동화론을 주창하고 그에 따른 작품들을 창작했기 때문이다. 사실동화란 1920년대 주로 창작되었던 전래동화의 개작이나 번안동화, 창작동화와 다르며, 1920년대 후반부터 발표되었던 경향문학의 계급주의 성향을 띤 소년소설과도 거리가 있다. 비록 정착되지 못하고 1930년대 후반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이구조의 사실동화는 ‘생활동화’라는 새로운 양식을 출현하게 한 교량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구조는 “天眞하고 爛漫하며 ‘어른의 아버지’오, 地上의 天使만도 아닌 同時에, 개고리 배를 돌로 끈는 것도 어린이오, 물딱총으로 동무의 얼굴을 쏘는 것도 어린이오, 메뚜기의 다리를 하나하나 뜯는 것도 어린이오, 미친 사람을 놀려 먹는 것도 어린이”라면서 새로운 아동관을 주장했다. 그의 아동관은 천사주의적 아동관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경향문학에서 주장하던 아동관과도 달랐다. 그가 생각하는 어린이는 선과 악의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을 가진 복합적인 존재였다. 다양한 욕망을 가진 주체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존재이며, 반성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해 가는 존재이며, 놀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줄 아는 지혜로운 존재였다. 기존의 장르로는 자신이 지향하는 새로운 아동관을 담아낼 수 없었기에, 이구조는 ‘사실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안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이구조가 ‘사실’과 ‘동화’라는 두 축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은 아동문학 또한 문학임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이구조가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암울한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작품을 창작하고자 했다. 그랬기에 “현실의 인생에 직면”할 수 있는 소년소설 장르와 “희망의 광영을 지속시켜 독자인 어린이에게 자극을” 주는 ‘동화’ 장르를 혼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동화는 박목월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실에의 해방을 꿈꾸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김요섭이 시적 환상을 통해 현실을 돌파하는 힘을 주고자 했다면, 이구조는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 스스로 현실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했다. <방패연>, <공>, <소꼽질>, <제기>, <전등불>, <손작난> 등 이구조의 작품 가운데는 놀이를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이구조의 작품에 등장하는 놀이는 아이들의 욕망을 실현해 주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선택하고, 규칙을 정하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획득해 간다. 또한 놀이를 통해 주변 세계와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며 세상의 질서와 의미를 깨달아 간다. 살펴보았듯이 이구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놀이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판타지 세계나 꿈처럼 아이들의 소망이 충족되는 공간이요, 아이들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장이요, 세상의 의미를 깨우쳐 가는 장이다. 현실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장치인 것이다.
200자평
이구조는 1930년대 후반, 단 10여 년 활동했던 아동문학가로 창작과 이론을 병행했다. 그가 보는 어린이는 선과 악의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주체였다. 그런 어린이를 그리기 위해 그는 사실동화를 주창했다. 이 책에는 <조행 ‘갑’> 외 14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이구조는 1911년 평안남도 강동부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부터 시와 동요, 동극, 창작동화, 소년소설 등의 작품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1934년부터는 ≪동아일보≫에 동화극 <쥐와 고양이>를 비롯해 동시 <시계>, 시 <송아지>, 동화 <새 새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1937년 11월 소년소설 <산울림>을 ≪가톨릭소년≫ 2권 9호에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아동문학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창작뿐만 아니라 이론에도 힘을 쏟아, 1940년 ≪동아일보≫에 <동화의 기초 공사>, <아동 시조의 제창>, <사실동화와 교육동화>라는 평론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아동문학평론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42년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엮은이
박혜숙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했다. 1999년 ≪아동문예≫에 동화 <나무의 전설>로 등단했으며, 2010년 봄 계간 ≪아동문학평론≫에 <시적 판타지가 구현해 낸 개벽 세상>으로 평론 부문에 등단했다. 현재 동화를 창작하며 아동문학 평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몽골 촌놈과 책 읽어 주는 마귀할멈≫, ≪배꼽 빠지게 웃기고 재미난 똥 이야기≫, ≪초등학생을 위한 이야기 장자≫, ≪잔소리 대마왕≫, ≪깜빡 깜빡 깜빡이 공주≫, ≪거짓말을 왜 할까요?≫ 등 다수가 있다.
차례
操行 ‘甲’
어머니
손작난
산울림
소꼽작난
전등불
새 새끼
달님공주
공
제기
과자벌레
새집
알사탕과 설탕
그림책
방패연
지붕 위에 올라가
해설
이구조는
박혜숙은
책속으로
“엄마 고리에 넣는 게 무어유?”
저녁꺼리를 사시러 저자에 나가셨던 엄마가 돌아오시여서 울퉁불퉁 나온 봉지를 고리에다가 넣으십니다. 옥이의 눈에는 꼭 알사탕으로만 보이는데 한 톨도 안 주시고 고리 속 깊이 넣으시거던요.
“엄마! 하나만 먹게….”
“이게 또 알사탕인 줄 아니? 못 먹는 거야.”
“그럼 무어유?”
“아무것두 아니란다.”
엄마는 무슨 바쁜 일이 게신지 종종거름을 처서 밖으로 나가시였읍니다.
옥이는 몇 밤을 잤는지 모르리만큼 오래된 접때, 엄마가 누런 봉지에서 두 알만 끄내 주시고, 그 남어지 알사탕은 높은 고리 속에 넣던 것이 생각났읍니다.
그렇게 해 놓고 옥이가 떼를 쓰거나 심부름을 갔다 오거나 해야만 한 알씩 한 알씩 주시였읍니다. 옥이 성미가 차분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었던 것이였읍니다.
옥이는 ‘영치기’ 있는 힘을 다 써서 오빠 책상을 고리 앞에 갖다 놓고 그 우에 벼개로 몇 겹 돋아 놓으니까, 고리에 손이 닿었읍니다. 안 열리려고 버티는 고리 뚜껑을 코잔등에 땀을 흘려 가며 억지로 열었읍니다. 알사탕 봉지를 뒤지노라고 옥이의 팔목이 고리짝 턱아리에 빨갛게 질리였읍니다.
옥이는 악을 써서 기여코 알사탕 봉지를 끄내 들고야 말었읍니다. 접때 보던 봉지와 꼭 같은 노랑 봉지였읍니다. 좋아서 햇죽어리는 옥이의 꼴을 방 안이 되여서 햇님이 보아 주지 못한 것이 섭섭하였읍니다.
울고 싶지 않은 우름을 억지로 흥흥대야만 눈물값으로 겨우 한 알씩 얻어먹다가, 봉지가 툭 터지리만큼 담뿍 든 알사탕 봉지를 손에 쥐게 되였으니, 이런 땡이 어디 또 있겠읍니까.
봉지를 펴고 쓰윽 디려다 보니 눈송이같이 새하얀 놈이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꼴깍 넘어갔읍니다. 저번 날 치는 물끼가 있고 넙적한 것도 있었는데 이번 것은 둥글고 오진 것뿐이였읍니다.
옥이는 대번에 세 톨을 끄내서 입안에 담쑥 집어넣었읍니다.
“에튀 에튀 에튀튀….”
-<알사탕과 설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