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이범선은 한국전쟁 이후 파괴되고 피폐해진 일반인들의 삶의 모습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러나 동시에 강렬한 주제 의식을 그 바탕에 깔고 묘사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제상의 강렬함과 탄탄한 내용 구성, 깊이 있는 감정 표현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충실한 문장 등으로 일찌감치 문단 주변에서 대표적인 전후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어 왔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체험과 결부된 사회적 모순과 인간 운명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는 만큼, 그의 소설은 흔히 리얼리즘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리얼리즘만으로 그의 소설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과 더불어, 리얼리즘만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과, 전통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동경 내지 열망과 관계되는 휴머니즘의 정신을 두루 감싸 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200자평
<오발탄>, <학마을 사람들>로 친숙한 작가 이범선. 그는 잔잔한 문체로 사회의 비정함과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인간의 본질적 모순을 그리면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다. 학마을 사람들, 사망 보류, 몸 전체로, 갈매기 등의 작품을 실었다.
지은이
이범선은 1920년 평남 안주군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암표’, ‘일요일’로 등단했다. 초기 대표작으로 소극적이고 평범한 서민의 삶을 다룬 ‘학마을 사람들’이 있다. 이후로는 ‘오발탄’ 같은 사회 고발성이 짙은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주요 작품으로 ‘동트는 마을 밑에서’ ‘너는 적격자다’ ‘피해자’ 등이 있다.
엮은이
김유중(金裕中)은 1965년 3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이후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대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 중이던 1991년, <현대문학>지의 신인 평론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석사 졸업 후 잠깐 동안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후 육군사관학교와 건양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의 저서로는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역사 의식≫(태학사, 1996), ≪김기림≫(문학세계사, 1996), ≪김광균≫(건국대출판부, 2000), ≪한국 모더니즘 문학과 그 주변≫(푸른사상, 2006), ≪김수영과 하이데거≫(민음사, 2007)이 있으며, 편저서로 경북대 김주현 교수와 공동 편집한 ≪그리운 그 이름, 이상≫(지식산업사, 2004)이 있다. 현재 한국 현대시의 존재론적 탐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컴퓨터 게임이 지닌 구조와 특성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학마을 사람들
사망 보류
몸 전체로
갈매기
오발탄
살모사
명인
청대문집 개
삼계일심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쯔’ 같은 것이죠. 입으나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봉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 없거든요. 흥.”
-<오발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