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여기에 묶인 이야기들은 동물 우화 시리즈로서 ≪안경을 씌워 주세요≫라는 우화집에 실렸던 작품들이다. 이윤희 작가의 동물 이야기는 유래담의 성격을 가진 우화에 속한다. 동물들에게 숨겨진 사연들 –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일화 – 이 동화적 상상력으로 채워지면서, 독자는 묶였던 매듭을 풀듯이 긴장감을 가지고 동화를 읽어 갈 수 있다. 그의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낙타, 하마, 곰, 사슴, 코뿔소, 나무늘보나 고래와 같이 우화적 전형성이 고착되어 있지 않은 주인공들이다. 또한 사자나 호랑이, 원숭이처럼 옛이야기나 우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들에게는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다. 따라서 기존의 우화에 익숙한 독자라도 새로운 성격의 동물 주인공들에게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이윤희 동물 동화의 또 다른 특징은 구어체에서 찾을 수 있다. ‘∼이야’, ‘∼지’, ‘∼거든’ 등의 어미를 사용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발화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너도 알고 있지?”나 “하지만 어디 상상해 보렴”, “당연히 이상했을 거 아니겠어?”와 같은 ‘말 건넴’의 어투도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구어체 문장들은 이야기의 구술성을 살려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독자를 끊임없이 호출해 이야기에 집중하고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독자의 관심과 호응을 적절하게 얻어 내려는 전략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말하기 형식은 저자와 독자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와 독자의 거리감도 조절해 준다.
고전적 우화의 내용은 관념적 주제로 수렴된다. 작품의 주제를 하나의 짧은 명제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희 작가의 우화들은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도덕적 가치를 넘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다가서려 한다.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전통적인 우화의 형식을 벗어나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마다 한 가지 이상의 철학적 물음을 숨겨 놓고 있다. 그것을 찾은 독자는 자신의 삶 속에 그 물음을 던지면서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게 된다. 책 속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의 끈은 독자의 몫이 된 것이다.
우화를 읽는 독자는 우화가 가진 초현실성, 초공간성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구성하는 낭만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또한 전형적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을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의 인물들과 알레고리적으로 조우시키기도 한다. 우화를 읽는 독자는 그저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구성하는 창조자인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함께 공모해 작품을 완성해 내는 것이 우화의 힘이자 매력이며 우화를 읽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윤희 동물 동화의 힘도 여기에 있다.
200자평
이윤희 작가의 우화들은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도덕적 가치를 넘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다가서려 한다. 작가는 이야기마다 한 가지 이상의 철학적 물음을 숨겨 놓고 있다. 책 속의 이야기는 끝이 나도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의 끈은 독자의 몫이 된다. 이 책에는 <술래가 된 낙타> 외 11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이윤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새벗문학상을 받았다. 단편동화집 ≪코뿔소에게 안경을 씌워 주세요≫, 그림동화집 ≪최고 울보상≫, 장편동화집 ≪네가 하늘이다 1∼4≫, 그림동화집 ≪돌이가 울었어요≫ 외 다수의 책을 펴냈다. 1995년부터 어린이 문화 전문 계간지 ≪아침햇살≫을 펴내고 있다. 2013년 현재 재능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초등학교 1학년 읽기 교과서에 동화 ‘펭귄 가족의 사랑’이 실렸으며, 지은 책으로 <네가 하늘이다>, <하얀 저 눈 언덕 너머>, <오리 너구리의 사과 편지>,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 단편 동화집 <꼬뿔소에게 안경을 씌워 주세요> 등이 있다.
해설자
이향근은 1974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에서 읽기 교육을 전공해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교원대학교에서 문학 교육을 전공해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서울교대, 한국교원대, 공주교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차례
작가의 말
술래가 된 낙타
고래의 소원 두 가지
나무늘보 코 고는 소리
별꼴 사슴뿔
원숭이 그림자
‘잘난 척 신사’ 기린
나는 곰이다!
사자가 사자 가르치기
하마의 팔자타령
웃는 호랑이
또 다른 쥐 한 마리는
코뿔소에게 안경을 씌워 주세요
해설
이윤희는
이향근은
책속으로
“난 참 고달픈 신세야.”
항상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어.
바로 흉내쟁이 원숭이의 그림자였지. 그 그림자는 남의 흉내를 내느라고 바시락거리는 주인 때문에 늘 피곤했어.
원숭이는 생각했지.
‘난 누구든지 될 수가 있어. 갈기를 날리는 멋진 사자도, 껌뻑 눈의 부엉이도, 날씬한 신사 기린도.’
원숭이는 공연히 여기저기를 쏘다녔어. 그러고는 신나게 다른 동물들 흉내를 냈지. 그림자가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그렇지만 생각해 봐. 항상 바닥에 온몸을 붙이고 다녀야 하는 그림자로선 어느 한곳에 익숙해질 틈이 없었을 것 아니야? 게다가 주인을 따라 하는 몸짓도 너무 힘들고.
그런데도 원숭이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툭하면 나무 위에 올라가 웅크리고 있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림자는 주인이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을 때가 가장 힘들어.
왜냐하면 주인은 나무 위에 있고, 그림자는 나뭇가지를 거쳐 땅바닥까지 길게 드리워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원숭이 그림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