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교신학: 개론≫은 블라디미르 로스키가 교리신학을 한 학기 동안 가르치면서 잡지에 기고한 글들이다. “신앙 밖에서 신학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천명하는 블라디미르 로스키는, 신앙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신학 사상의 기초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로스키의 저술이 지닌 가장 강한 매력과 장점은 ‘학’으로 표현될 수 없는 ‘신앙’의 깊은 세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깊은 인격적 관계와 그를 통한 인간의 신화 과정, 말씀이 육이 되어 가는 과정의 깊이와 오묘함을 교부들의 풍성한 가르침들과 성경 말씀을 통해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키는 선언한다. “신앙은 신과 인간의 존재론적 관계이며, 신자들은 그 관계를 통해 세례와 기름부음을 받으며, 세계와 기름부음은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을 회복시키고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스키가 동방정교를 ‘신비신학’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인간의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맺음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신비적 측면이 사실 동방정교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에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특징임을 고려할 때, 이 책이 갖는 가치는 더욱 배가된다.
신성과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의 의지와 관련된 순종에 대한 로스키의 묘사는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이 그 순종의 과정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파노라마처럼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의 고뇌는 죄로 인한 인간의 ‘자유 의지’에 근거해 선택하는 과정의 고뇌를 보여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의 자유는 철저한 자기 비움으로 나타나는데, 온전한 신인 그가 죄악 가운데 있는 총체적인 인간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성부의 의지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죄가 없으시기에 죽을 이유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의 삯인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 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영으로는 이해하지만,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육신의 신비와 구속 안에 숨겨진 깊은 영적 비밀을 로스키는 탁월한 문장으로 표현해 낸다. 독자 스스로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체험하고 깨달은 그 신비의 세계에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200자평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창조자와 피조계의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나? 인간은 어떻게 타락했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 모든 신학자라면 질문해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탐구한다. 이 질문들은 신학적 논쟁을 위한 추상적인 제안에 그치지 않는다. 크리스천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궁극적인 요소다.
지은이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로스키(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Лосский, 1903∼1958)는 정교 신학에서 ‘신교부’ 종합 파리 학파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1903년 6월 8일에 독일 괴팅겐에서 유명한 직관주의 철학자 니콜라이 오누프리예비치 로스키의 아들로 태어났다. 러시아의 페트로그라드대학교에서 1920년부터 1922년까지 공부하다가, 1922년 레닌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자행된 인텔리겐치아 추방 행렬에 끼여 아버지 로스키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추방당했다. 처음에는 프라하에 살면서 유명한 비잔틴학자이자 예술학자인 니코짐 파블로비치 콘다코프 밑에서 공부하다가, 1924년에 파리로 이사해 소르본대학교에 입학하고, 1928년에 아내 막달리나 이사코브나 말키엘샤피로와 결혼하여 자녀 넷을 두었다.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는 모스크바 정교회에서 프랑스에 정교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트료흐스뱌치첼 예배당의 총주교 포티야 명의의 수도사제단에 들어갔다. 이 시기부터 러시아 교회의 정통적 전일성을 수호하기 시작하고, 저작 활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1939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0년부터 1944년 사이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하고, 1944년 12월에 프랑스가 해방된 후 파리에 성 디오니시우스 프랑스 정교대학이 설립되자, 그곳에서 몇 년 동안 교리 신학과 교회사를 강의했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그 신학교에서 학장으로 일하며, 파리의 성 주느비에브 거리에 첫 프랑스 이민 정교 교구가 만들어지도록 힘썼다. 1947년부터는 영국 최초의 순교자인 성자 알바니야와 성 라도네슈스키 영러 협의회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생애 말기에는 서구 유럽 총주교구 산하 사제 과정에서 강의를 하며 신학과 철학 학술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6년에 로스키는 러시아를 방문하고 1958년 2월 7일에 파리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러시아기독문화연구회는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하는 일곱 명을 주축으로 2003년에 결성되어 러시아정교와 러시아 문화와 관련된 저술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공통 관심 분야의 책을 공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동 작업의 첫 열매는 ≪바흐찐과 기독교≫(부산대학교출판부, 2009)이고, 이 책이 두 번째 열매가 될 것이다. 번역자 각 사람의 학문적 관심 분야와 주요 이력은 다음과 같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인 최동규는 투르게네프, 레스코프, 나기빈, 러시아 종교철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 ≪뚜르게네프 비교문학 비평연구≫(한국문학사, 1998), 역서로는 레너드 샤피로, ≪투르게네프 :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한 작가≫(책세상, 2002)가 있고, 논문으로는 <≪귀족의 둥지≫에 나타난 자연묘사>(2010), <영웅의 사랑과 죽음 : ≪그 전야≫의 주제 구성>(2016) 외 다수가 있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인 이용권은 러시아어 조어론, 러시아어 음향 음성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통통 러시아어 문법≫(신아사, 2014) 외 다수, 논문으로는 <한국인 러시아어 학습자와 러시아인의 전이음 대조 연구>(2014), <러시아어와 한국어 구개음화의 음향적 특성 연구>(2015) 외 다수가 있다.
부산대학교, 경남대학교 강사인 홍대화는 푸시킨, 레르몬토프, 고골, 도스토옙스키, 자먀친, 불가코프, 러시아 작가들 간의 상호텍스트성, 러시아 문학 속의 악마주의, 러시아정교와 철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도스또예프스끼≫(살림출판사, 2005) 외 다수, 역서로는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상, 하권(열린책들, 2000)외 다수, 논문으로는 <러시아 문학에 나타난 악마주의 전통>(2003), <도회 전설의 전파텍스트로서 고골의 <외투> : 화자의 담화분석>(2015) 외 다수가 있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인 허선화는 도스토옙스키, 러시아정교신학 및 영성, 심리학과 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역서로는 호먀코프, ≪교회는 하나다/서구 신앙고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게오르기 플로롭스키, ≪러시아 신학의 여정≫(지식을만드는지식, 2016)이 있고, 논문으로는 <조시마 장로의 형상에 나타난 정교 이콘화 특성의 연구>(2005), <도스토옙스키 후기 소설 속의 그리스도>(2008), <도스토옙스키 후기 소설 속의 수도원 공간>(2009) 외 다수가 있다.
한남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교수인 최윤희는 러시아 언어와 문화, 러시아정교, 민속학, 사고와 표현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안녕! 처음 러시아어≫(GS인터비전, 2013년, 공저) 외 다수, 역서로는 ≪러시아 민화집≫(노벨미디어, 2005, 공역) 외 다수, 논문으로는 <러시아어 성경 인명(人名) 관용구에 나타난 특징 연구>(2016),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에 나타난 러시아어 관용구 특징 연구>(2015), <문화간 비언어적 의사소통 차이에 관한 연구 : 러시아어와 한국어의 몸짓언어를 중심으로>(2014) 외 다수가 있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인 김영숙은 러시아정교문학, 바흐친의 미학과 철학, 20세기 러시아 실존주의 소설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알타이의 민족들≫(국립민속박물관, 2006)이 있고, 논문으로는 <바흐친과 다문화사회 담론>(2012), <서구 타자철학의 흐름에서 본 바흐친의 타자철학>(2015), <바흐친의 사랑의 윤리학>(2015) 외 다수가 있다.
차례
영어판 번역자 서문
서문: 신앙과 신학
제1장 두 일신론
제2장 창조
제3장 원죄
제4장 그리스도론
후기: 형상과 모양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신앙 밖에서 신학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신학은 성령 안에 있는 내적 증거에만 기초할 수 있다. 신앙 규칙(regula fidei)은 이러한 증거에 대한 첫째 작동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가 내적 주인(Interior Master)에 대한 글에서, 자신이 모든 이들에게 말해 온 것처럼, 기름부음이 말을 해 주지 않는 사람들, 성령에 의한 내적 가르침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신앙교리(indocti)를 떠났다고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내적 증거다.
-13쪽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는 행동이다. 이것은 신적인 존재의 그 어떤 필요에도 부응하지 않는다. 때때로 이 행동에 부여되는 도덕적 동기들조차 무게 없는 진부한 말,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하시다”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자가 이미 그 안, 즉 위격의 상호 내재성 안에 있는 한, 그 사랑을 부어 줄 만한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그것을 원했으므로 창조자이시다. 창조자의 이름은 삼위일체의 세 이름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신은 영원히 삼위일체다.
-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