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사흘 동안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여기서 ‘하일라스’란 ‘물질’ 또는 ‘질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hyle’를 줄기 삼아 만든 이름이고, ‘필로누스’는 ‘누스(지성)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philo-nous’를 음역해 만든 이름이다. ‘하일라스’는 ‘유물론자’의 대명사이고, ‘필로누스’는 버클리를 대변하는 ‘비(非)유물론자’의 은유인 셈이다.
하일라스는 유형(有形)의 세계의 진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한편, 유형의 세계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이론과 철학적 이론을 거칠게나마 알고 있을 만큼 충분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주장하는 견해는 지각의 직접적 대상은 주관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주관적 관념이란 무엇인가? 유형적인,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독립적인?예외적으로 신에게는 의존적인?실재들의 인상 또는 심상이 바로 주관적 관념이다. 신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교적 계시에 대한 믿음은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필로누스가 내세우는 견해는 버클리 자신의 견해다. 감관에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세계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유형의 세계이며, 그것의 전체적 존재 양식은 의식의 대상으로서 임시적으로는 우리의 대상이 되지만, 항구적으로는 신의 의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대화>에서는 비유물론의 논변이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정신과 유리된, 감각의 대상이나 그 비슷한 것은 없다. 유형의 사물은 관념이다. 물질적 실체에 대한 믿음은 감각적 사물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을 함축한다. <두 번째 대화>에서는 우리의 관념의 유래가 논의된다. 그에 따르면, 신이 관념의 유일한 원인이다. 물질 또는 물질적 실체는 관념에 대해 불필요하거니와, 그 존재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이로써 비유물론을 위한 논변이 매듭지어진다. <세 번째 대화>에서는 각양각색의 반론이 논박된다. 앞서의 대화에서와는 달리, 하일라스가 질문자가 되어 반론을 제기하고 필로누스가 그것을 논박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비유물론을 위한 핵심적인 논변은 <첫 번째 대화>와 <두 번째 대화>에 전개되어 있어 마지막 <세 번째 대화>는 보론(補論)의 성격을 띤다. 그래서 비유물론의 이해를 위해서는 앞의 두 대화만 읽더라도 충분하다. 마지막 대화를 생략하고 앞의 두 대화만 번역한 이유다.
200자평
조지 버클리는 논지 개진에 효과적인 대화 기법을 사용해, 우리가 지각하는 감각적 성질의 담지자로서 ‘물질’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물론자들의 주장을 뿌리째 뒤흔든다.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이야말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된 실재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결론을 위한 논변과, 모든 감각적 사물의 궁극적 기초를 위한 논변을 담고 있는 초기 근대 철학의 백미다.
지은이
아일랜드 남부 킬케니의 토머스타운 인근에 있는 다이사트 캐슬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혈통상으로는 영국계였으며, 신앙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였다. 열한 살 되던 해 킬케니 칼리지에 들어가고, 열다섯 살에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했다. 1704년, 열아홉 살 되던 해 문학사 학위를 받고 1707년에는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성공회의 신부 서품을 받아 1709년 부제가 되고, 이듬해 사제가 되었다.
1709년 ≪새로운 시각 이론을 위한 한 시론≫을 발표했다. 우리가 공간을 보는 것은 시각과 촉각의 규칙적인 공존의 기초 위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귀납적 추론을 행한 결과라는 견해를 개진했다. 1710년 주저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관한 논고≫를 발표하고, 1713년에는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을 출간했다. 후자는 전자에 대한 반응이 시원찮은 데 실망해, 논쟁적 대화라는 보다 더 솔깃한 묘사 형식이 그의 철학적 아이디어들의 전파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펴낸 야심작으로서 대화 문학의 압권이다.
여러 해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힌 뒤, 1721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다시 돌아가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시니어 펠로우로서 교육과 행정에 전념했다. 1724년 데리의 교구장에 취임하기 위해 펠로우 직을 사임했다. 1734년 클로인의 주교로 임명되어 남은 생애 동안 교구민들을 조용히, 그리고 신실하게 보살핀다.
슬하에 일곱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셋이 어릴 때 죽었다. 1752년 여름 은퇴해 옥스퍼드로 주거를 옮겼다.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입학한 둘째 아들 조지의 대학 교육을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주일날 저녁 홀리웰 가(街)의 자택에서 아내가 읽어 주는 성경 구절을 듣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유언장에서 신체에 부패 징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장사를 지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유언에 따라 장례는 그다음 주 토요일에 치러졌다. 유택은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안에 마련되었다.
옮긴이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교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릉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제를 찾아서≫, ≪철학의 명저 20≫, ≪서양 고대 철학의 세계≫, ≪한국철학의 탐구≫, ≪존재와 언어≫ 등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저술했으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J. L. 아크릴), ≪철학의 거장들≫(O. 회페), ≪철학자 플라톤≫(M. 보르트) 등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번역했다. 서양 고대 철학, 존재론, 수사학이 주된 관심 분야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첫 번째 대화
두 번째 대화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자네는 뜨거움과 차가움, 단맛과 쓴맛은 특수한 종류의 쾌락과 고통이 아닌지를 물었네. 그에 대해 나는 단순하게 그것들은 특수한 종류의 쾌락과 고통이라고 대답했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구별했어야 했네.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으로서의 저 성질들은 쾌락이거나 고통이지만, 외적 대상들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그것들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이네.
-41쪽
서슴없이 말하게나, 사정이 이렇지 않거든 말일세. 즉 맨 처음에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해, 자네는 직접적인 대상들이 정신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그것들을 원형들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원인들, 그 다음에는 도구들, 또 그 다음에는 기회들,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것 일반이라고 했는데, 풀어서 말하면 이것은 무(無)를 의미하는 것이네. 결국 물질은 무라는 결론이 나오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하일라스? 자네가 밟아온 전 과정의 실질적 내용이 이렇지 않은가?
-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