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현철은 근대 연극론의 창시자이자 소설 창작론과 시론, 연극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문예비평을 시도했던 비평가다. 또한 외국의 작가와 문학사조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수용하는 동시에 소설과 희곡의 이론에 관해 기초적인 이론을 정립하고 민중극 운동에서 선구적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시와 소설, 희곡을 가로지르는 현철의 비평 작업은 일본 유학 생활에서 시작된다. 1920년 6월 ≪개벽≫ 창간호에 발표한 <소설 개요>는 스스로 ‘동경예술좌연극학교’에서 수업한 ‘필기’를 기초로 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그의 비평문은 창작 기초론과 직접 연관된다.
<소설 개요>는 김동인의 소설 창작론보다 앞서는 본격적인 문학 창작 방법론으로 평가받는 글이다. 이 글에서 현철은 소설 개요부터 시작하여 소설 연구법, 극본 개요, 극본 연구법을 차례로 집필하겠다는 순서를 제시했다. 소설론부터 희곡론에 이르는 그의 글은 소설과 희곡이 어떻게 다른가를 면밀히 밝히면서 근대소설의 5대 성분을 논한다. 바로 마련·인간(성격)·배경·문장·주제다. 이 중에서도 사건의 조직과 분석을 암시하는 마련, 그리고 그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인간(성격)을 소설에서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꼽았다.
현철의 시론에서 주목할 것은 황석우와 벌였던 ‘신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희생화와 신시를 읽고>를 포함한 황석우의 논쟁적인 글에 현철이 응답함으로써 시작된다. 현철은 <비평을 알고 비평을 하라>와 <소위 신시형과 몽롱체>에서 신체시와 자유시, 근대적 시형의 문제에 관한 제반 논쟁으로 논의를 확대한다. 황석우는 신체시가 특정한 시기에 일본에서 발생했다가 소멸한 형식이며 지금 조선의 시는 자유시이고 자유시는 ‘세계 시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현철은 자유시를 강조한 황석우의 견해를 상징주의의 산물로 치부하며 전통의 조선 시형을 탐구할 것을 강조했다.
현철이 소설론과 시론, 연극론, 문학 일반론에 대해 비평적으로 고찰함과 더불어 당대의 다양한 비평적 논쟁에 참여했다는 점은 근대문학사에서 매우 주목할 부분이다. 문학의 각 장르가 지닌 특성을 구분하고 이를 창작론과 연계하여 체계화하려 노력했던 그의 시도는 문학비평 이론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되는 실질적인 징후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삶을 진실하게 재현하는 다양한 문학 장르의 가능성과 의의를 살폈던 그의 문학 논의는 근대적인 문예이론의 씨앗을 뿌린 소중한 시도였던 것이다.
200자평
근대 연극론의 창시자이자 시·소설·희곡 등 장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문예비평을 시도했던 평론가 현철. 그는 김동인의 소설 창작론보다 먼저 본격적인 문학 창작 방법론을 발표했고, 황석우와 신시 논쟁을 벌였으며, 문학의 각 장르가 지닌 특성을 구분하고 이를 창작론과 연계하여 체계화함으로써 문학비평 이론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지은이
현철(玄哲, 1891∼1965)은 근대극 운동의 선구자이자 문예비평가로 많은 글을 남겼다. 현철의 본명은 현희운이고 호는 현당(玄堂), 효종(曉鍾), 효종생(曉鍾生), 세류옹(世瘤翁), 해암(海巖) 등이다. 소설가 현진건의 당숙이기도 했던 현철은 1911년 보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13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재학 중 일본 신극의 선구자 시마무라 호게쓰(島村抱月)가 경영하는 게이주쓰좌(藝術座) 부속 연극학교로 옮겨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문예 활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 시절에 현철이 영향을 받았던 문예이론은 이후 발표하는 창작론과 문학 일반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17년 연극학교를 마치고 귀국했으나, 다시 상하이(上海)로 가서 연극 공부를 계속했다. 1919년 2월 귀국하여 서울 서대문 근처에 예술학원(藝術學院)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근대극 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해 6월 ≪개벽≫지를 창간하고 초대 학예부장으로 취임하여 1923년까지 일하면서 다양한 문예평론과 희곡 작품을 지면에 발표했다. 1923년 10월 동국문화협회(東國文化協會)를 발족하고 이듬해 12월 조선배우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했다. 1926년 2월 조선배우학교 1기생이 졸업했으며 같은 해 9월 입센의 <인형의 집>으로 시연회를 열었으나 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1934년 5월, 박승희(朴勝喜)와 함께 토월회(土月會) 후신인 태양극장을 재건하려 했으나 포기하고, 창극 진흥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해방 후 동국문화협회를 통하여 ≪한국 급 한국인≫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대표 평문으로는 <소설 개요>, <소설 연구법>, <소위 신시형과 몽롱체>, <문학에 표현되는 감정>, <희곡 개요>, <현당극담>, <문화사업의 급선무로 민중극을 제창하노라>, <비평을 알고 비평을 하라> 등이 있다.
엮은이
백지연(白智延)은 1970년 서울에서 출생해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 <아담의 글쓰기, 환유적 욕망>이 당선되면서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첫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창비, 2001)과 공저로 ≪페미니즘 문학비평≫(김경수 편, 프레스21, 2000), ≪20세기 한국소설≫(최원식 외, 창작과비평사, 2005), ≪한국문학과 민주주의≫(함돈균 외, 소명출판, 2013) 등이 있다. 현재는 경희대와 단국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차례
小說 槪要
小說 槪要(續)
小說 硏究法
小說 硏究法(續)
戱曲의 槪要
文學에 表現되는 感情
文學에 表現되는 感情(續前號)
批評을 알고 批評을 하라−≪時事新聞≫의 微蛻 君과 東京 잇는 黃 君에게 答
所謂 新詩形과 朦矓體
文化 事業의 急先務로 民衆劇을 提唱하노라
文學上으로 보는 思想
해설
현철은
엮은이 백지연은
책속으로
大槪 우리 人類에는 그 心中에 여러 가지 動機가 잇스니 첫재는 自己의 느는 바라. 生覺하는 바를 發表하고자 하는 動機가 잇고 둘재는 자기의 聞見하는 바 外界의 事物을 幾分間이라도 表現하고자 하는 動機가 잇스며 셋재는 自己와 同一한 여러 가지 思想 感情을 包含하고 外界에서 行動하는 人物을 그 마음과 가티 描寫하랴는 動機가 잇는 것이라. 이러한 第一 動機로부터 表現하는 것이 叙情詩요 第二의 動機로부터 表現하는 것이 叙事詩며 第三의 動機로부터 表現되는 것이 곳 戱曲과 小說이라.
―<小說 槪要>
萬一 黃 君이 君의 말과 가티 眞正한 誠意로 朝鮮 民族을 爲하야 國民 詩歌를 創設하랴고 하거던 그 順序로써 먼저 우리의 古詩를 硏究하여 그 詩想과 詩形이며 는 그 民族性이 那邊에 잇는 것을 깁히 안 後에 朝鮮文을−朝鮮語−를 新古 勿論하고 잘 알아야 할지요. 그런뒤에는 外國 詩想이나 詩形을 배울 것이며 그 主義 主張을 參酌하여 가장 우리 民族性의 特長에 融入하는 것이라야 비롯오 참으로 黃 君의 偉大한 所謂 國民 詩歌가 創造될 줄 안다. 그러치 아니하고는 아모리 外國에서는 조코 適當한 모든 詩具를 가지고 오더래도 그것은 한갓 徒勞에 不過할 것이요 沙場에 세우는 집이나 蜃氣樓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所謂 新詩形과 朦矓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