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詞)란 무엇인가
사(詞)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사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구양수의 문학 세계
사람들은 작가로서의 구양수를 유학(儒學)과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와 관련한 대부분을 ‘개인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것’에, ‘해이한 것보다는 경직되고 긴장된 것’에, ‘유흥적인 것보다는 건설적인 것’에 무게를 둔다. 틀린 것은 아니다. 구양수의 시문을 통해 그를 이해한다면 맞는 말이다. 별다른 배경 없이 상식만을 가지고 구양수를 본다면, 구양수는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한 사람을 제삼의 눈으로 보아낸다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아쉬울 것이 없어도 앞으로는 아쉬울 것이 있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특히 심리의 저변은 본인만이 알기 때문에 옆에서 단정 지어 무어라 말할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 구양수는 사를 통해서 아쉬운 소리와 사람들이 보지 못한 많은 심정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구양수가 사를 통해 사람들이 보아내지 못하는 이면의 감정을 상당 부분 노출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배경 때문이었다. 사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수단이었고, 점차 흥행해 구양수가 살던 시기에는 지체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애용하는 국민 문학의 형식이 되었다. 따라서 아무리 구양수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계승하고 한유(韓愈)의 도통(道統)을 이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녀와의 사랑에서 느끼는 세심한 희열과 비애를 사 형식을 빌려 거침없이 쓰는 것이 결격이나 비난의 사유가 되지 않았다. 당황스럽고 민망한 내용이나 표현도 적잖게 보이지만 오히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구양수 문학 세계의 전체적인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망라해 보아야만 하고, 사는 구양수의 문학에 대한 오해를 일소하고 환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관건이 된다.
200자평
구양수의 사 93수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구양수의 문학작품을 언급할 때 시와 산문은 익숙하지만 사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사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수단이었고, 이전 시기부터 점차 흥행해 구양수가 살던 시기에는 지체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애용하는 국민 문학의 형식이 되었다. 그의 가장 솔직한 심리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사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구양수가 반듯한 산문으로는 하지 못했던 말,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은이
구양수(歐陽修, 1007∼1072)는 1007년에 출생해 1072년까지 66년을 살았다. 1007년부터 1030년까지는 관직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보냈다. 그는 4세 때 부친을 잃고 모친과 함께 백부 구양엽(歐陽曄)이 추관(推官)으로 있는 수주(隨州)로 가서 생활하며 빈궁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구양수는 한유(韓愈)의 깊고 예리한 문장에 매력을 느꼈고 그를 추앙했다. 1023년 17세 때 처음으로 수주의 지방 고시에 참가하지만 그의 용운(用韻)이 관운(官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패한다. 그 뒤 1028년 명사인 서언(胥偃)을 찾아가 자신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서언은 구양수의 웅대한 문장에 감탄해 그를 자신의 문하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해 겨울 서언과 함께 경사로 가서 춘계국자감고시(春季國子監考試)에 응시한 구양수는 수석의 영광을 얻었고, 가을에는 국학(國學)에 응시해 또 수석을 차지하게 된다.
1034년에는 아내와 자식이 죽는 아픔을 겪었으나 1043년 인종(仁宗)은 언로(言路)를 확장하기 위해 간관(諫官)을 늘리면서 구양수 등을 지간원(知諫院)으로 삼고 여정(余靖)을 우정언(右正言)으로 임명하자 같은 해 4월에 구양수는 경사로 돌아온다. 1054년 수년 만에 구양수를 만난 인종은 그의 노쇠한 외모와 상황을 측은히 여겨 극진히 대우하며 이부(吏部)의 유내전(流內銓)에 임명한다. 당시 구양수의 정적들은 그의 기용에 두려움을 느끼고 각종 모함과 구설수를 만들었지만, 구양수는 지속적으로 경사에 머무르며 ≪당서(唐書)≫ 편찬에 참여하게 되고 한림학사 겸 사관수찬(翰林學士兼史館修撰)으로 승진하게 된다.
구양수는 66세의 나이로 천명을 다했고, 2년 후에 조정에서 ‘문충(文忠)’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문충’은 그가 일생 동안 이루어낸 문학적 위업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상징이다.
옮긴이
홍병혜는 1969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까지 <유우석과 백거이 사의 남방성 고찰> 등을 비롯해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구양수 사의 이해≫ 등 10여 권의 저서와 편역서를 출판했다. 동국대학교 중국산업경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과 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대학과 배화여자대학 중국어통번역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차례
제1부 삶과 사랑
01. 주렴이 드리워져
02. 한이 가득한데
03. 그대에게 기대어
04. 수심과 걱정이 가득하지만
05. 그 사람 얼굴은 지금 어디에
06. 소매에서 향기가 생겨나는데
07. 끝없는 원망과 근심이 얼굴에 깃든다네
08. 애간장이 마디마디 끊어지니
09. 작년의 그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10. 아름다운 구름과 같던 날들이 쉽게 날아가 버리니
11. 가는 이를 보내고
12. 우리는 서로 이별하니
13. 울며 화장하니
14. 그리움만 쌓이고
15. 청명절이 되니
16. 이별을 원망하네
17. 다시 서로 그리워해야
18. 은밀하게 기약하니
19. 이별의 근심만을
20. 이미 마음을 주었으니
21. 주렴과 막은 여러 겹이 드리웠네
22. 꿈에서도 찾을 곳이 없다네
23. 좋은 소식은 끊긴 채 오지 않으니
24. 서로가 꿈에서 생각하네
25. 올 때의 그대는 보이지 않네
26. 그 사람 돌아오지 않았는데
27. 아득한 사랑이 있으나
28.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네
29. 귀한 내 임을 그리워하네
30.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31. 이별 후에
32. 마음속의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네
33. 쉬었다 더디 가야 하네
34. 오랫동안 그대에게 기대어
35. 이별의 한
36. 미인이 부끄러워
37. 추억이 더해오네
38. 그 사람을 생각하면
39. 다시 만나요
40. 그대는 외롭게 멀리 있네
제2부 삶과 멍에
41. 세월은 모두가 한순간이니
42. 슬픔은 여전한데
43. 떨어진 꽃은
44. 높은 누각에 의지하니
45. 적막하고 쓸쓸한
46. 봄빛은 무정하게
47. 봄날의 근심은
48. 덧없는 삶을 생각하네
49. 술잔을 잡고 탄식하니
50. 봄이 가진 원망
51. 왜 돌아올 기약을 지키지 않는 것인가
52. 봄날을 저버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53. 세월이 정말 빨라서
54. 봄은 왔다가 또 떠나니
55. 세파에 시달리니
56. 술잔 앞에
57. 나를 머물게 하네
58. 헛된 세상에서
59. 장안성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늙는다네
60. 하늘 끝에서 늙어가고
61. 충성을 약속했으니
62. 유양으로 출수하는 유원보에게
63. 조개에게
64. 꽃 앞에서 술을 들고
65. 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는데
제3부 삶과 자연
66. 서호 예찬 1
67. 서호 예찬 2
68. 서호 예찬 3
69. 서호 예찬 4
70. 서호 예찬 5
71. 서호 예찬 6
72. 서호 예찬 7
73. 서호 예찬 8
74. 서호 예찬 9
75. 서호 예찬 10
76. 서호 예찬 11
77. 서호 예찬 12
78. 서호 예찬 13
79. 1월의 노래
80. 2월의 노래
81. 3월의 노래
82. 4월의 노래
83. 5월의 노래
84. 6월의 노래
85. 7월의 노래
86. 8월의 노래
87. 9월의 노래
88. 10월의 노래
89. 11월의 노래
90. 12월의 노래
91. 석류
92. 목단
93. 연꽃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술잔 앞에서 돌아갈 날을 말하려고 하는데
말하기도 전에 아름다운 그녀는 목이 메어 있네.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이러한 원망은 바람과 달과는 무관한 것이라네.
이별 노래를 신곡으로 바꾸지 않아도
한 곡으로 이미 마디마디 애간장이 끊어졌네.
진실로 모란꽃을 다 보아야지만
비로소 봄바람과 쉽게 이별할 수 있을 것이라네.
玉樓春 其四
尊前擬把歸期說, 未語春容先慘咽. 人生自是有情癡, 此恨不關風與月
離歌且莫翻新闋. 一曲能敎腸寸結. 直須看盡洛城花, 始共春風容易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