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에서 코지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 전통의 근본 개념들을 철저히 재구성해 변화된 사회 현실을 분석하는 데 활용한다는 야심찬 작업을 수행한다. 책의 부제인 ‘인간과 세계의 문제에 대한 연구’가 시사하고 있듯이 코지크는 이 책에서 인간과 세계의 문제를 다른 학문들과의 연관 속에서 철학적으로 폭넓게 다룬다. 책에서 다룬 수많은 주제들, 이를테면 ‘사이비 구체성’의 문제, ‘구체적 총체성’으로서 현실 개념, 일상생활의 형이상학, 과학과 이성의 형이상학, 예술의 사회적 역할, 존재 형성적 존재로서 인간 존재, 노동과 시간성의 체계적 연관, 실천과 노동의 관계, 변증법적 방법의 설명력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의를 지니고 있다.
코지크는 이 책에서 일관되고 정연한 철학 체계를 제시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독자와 더불어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그는 우선 우리가 현실에 접근하고자 할 때, 또는 현실을 투명하게 알고자 할 때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그러고 나서 그 문제에 대해 종래의 학문, 특히 근대의 철학이나 경제학이 어떻게 답해 왔는가를 살핀다. 이어서 이 입장들이 현실적으로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들은 어떠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뿌리박고 있는가를 밝힌다. 이와 같은 고찰의 성과를 토대로 비로소 코지크는 자신의 변증법적 입장에 기초해 잠정적인 답을 제시한다.
또한 코지크는 마르크스 이후 서양의 제반 철학과 과학의 조류들을 주목하면서 이들을 마르크스 사상과 대결시키거나 종합하려 한다. 특히 그는 하이데거의 현상학과 청년 마르크스의 개념들을 독창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하이데거를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사회·역사적 차원을 주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실존적·존재론적 지평을 도입한다.
이와 같이 해서 ≪구체성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주의의 고전 저작들에 대한 단순한 주석서에 머무르지 않고, 마르크스의 개념과 방법을 그 이후의 새로운 학문과 대면시키고 변화한 사회 현실의 분석에 창조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 필적하는 저술로 평가받아 왔다.
200자평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을 사상적으로 예비한 책이다. ‘프라하의 봄의 철학적 선언’으로까지 평가받는다. 역사, 자연, 인간성 그리고 문화에 대한 코지크의 해석을 새로운 독자들에게 전한다. 사회과학에 대한 방법론적이고 철학적인 이해를 도울 것이다.
지은이
카렐 코지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1943년 9월 비합법 반나치 공산주의 저항 그룹인 ‘선봉’에 가담했고 비합법 잡지 ≪청소년의 투쟁≫의 편집장을 맡았다. 1944년 11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대역죄로 고발당했고, 다음 해 1월부터 5월까지 집단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1945∼1947년 프라하의 카를 대학(Charles University)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1947∼1949년에는 소련의 레닌그라드 대학과 로모노소프 대학에서 수강했다. 1950년에 카를 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3년 대표작 ≪구체성의 변증법-인간과 세계의 문제에 대한 연구≫를 출간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범주들을 휴머니즘적 현상학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으로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의 지도적 철학자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68년 카를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
1948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체코슬로바키아는 1968년 1월 공산당 제1서기인 둡체크의 주도로 자유화 운동인 일명 ‘프라하의 봄’을 시도했지만, 그해 8월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군대의 침공으로 좌절되었다. 그는 ‘프라하의 봄’ 동안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지도적 대변자가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참여 탓에 그는 민주화 기간이 끝난 후 1970년에 대학에서 해고되었다. 이후 1990년까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았다. 원고와 노트, 서적 등을 압수당했고 그의 모든 저술은 금서가 되었다.
1989년에는 벨벳 혁명으로 불리는 무혈 시민 혁명이 일어나 공산 정권이 붕괴되고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다시 카를 대학에 복귀했다(1990∼1992). 이후 유럽의 각국에서 초청 강연을 하는 등 뛰어난 좌파 사회비평가로 활동하다가 2003년 프라하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술로는 대표작인 ≪구체성의 변증법≫(1963) 외에 ≪체코의 급진 민주주의≫(1958), ≪도덕과 사회≫(1968), ≪현재 우리의 위기≫(1969), ≪청소년과 죽음≫(1995), ≪구시대적 사고≫(1997) 등이 있다.
옮긴이
박정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서울대, 국민대, 서울시립대, 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했고,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인제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회 정의와 인간 실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공부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현대 철학의 흐름≫(공편저, 동녘, 1997), ≪지식의 세계≫ 1∼2권(동녘, 1998)이 있고, ≪철학대사전≫(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동녘, 1997) 편찬에도 관여했다. 옮긴 책으로는 ≪사회과학의 역사≫(J. D. 버날 저, 한울, 1984), ≪역사와 계급의식≫(공역, G. 루카치 저, 거름, 1986),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하(레닌 저, 돌베개, 1992) 등이 있다.
차례
영역본 편집자 서문
1장 구체적 총체성의 변증법
1. 사이비 구체성의 세계와 그 파괴
2. 현실의 정신적·지적 재생산
3. 구체적 총체성
2장 경제와 철학
1. 일상생활의 형이상학
관심
일상성과 역사
2. 과학과 이성의 형이상학
경제적 인간
이성·합리화·비합리성
3. 문화의 형이상학
경제적 요인
예술과 그 사회적 등가물
역사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
3장 철학과 경제
1. 마르크스 ≪자본론≫의 문제
원본의 해석
철학을 지양하는 것인가?
≪자본론≫의 구성
2. 사람과 사물, 혹은 경제의 성격
사회적 존재와 경제적 범주
노동의 철학
노동과 경제
4장 실천과 총체성
1. 실천
2. 역사와 자유
3. 인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변증법은 ‘사상 자체(Sache selbst)’를 추구한다. 그러나 사상 자체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상 자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노력뿐만이 아니라 우회하는 것도 필요하다. 따라서 변증법적 사유는 사상(sache)에 대한 표상(Vorstellung)과 개념(Begriff)을 구별한다.
-3쪽
현실의 특정 측면을 드러내고자 의도했던 단순한 관점의 변화가 실제로는 전혀 다른 현실을 형성하며, 또는 오히려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서도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 대체는 현실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방법론적 접근을 통하여 현실 자체가 변화한다. 방법론은 존재론화하는 것이다.
-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