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생태미술가는 왜 호수에 로봇 거위를 띄웠을까
비인간과 함께하는 환경 개선 프로젝트
거대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중독, 비만, 불면 등 여러 건강 문제에 시달린다. 눈부시게 발전한 의료기술도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환경에서 인간·동식물·기계가 맺는 복잡한 관계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내털리 제러미젠코는 도시를 인간만의 서식지로 간주하는 기존 시각을 비틀고 ‘환경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전개한다. 다양한 공적 실험과 이벤트로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며 ‘도시생명다양성’을 향해 나아간다.
생태미술가로 활동하는 제러미젠코는 본래 컴퓨터공학과 전기공학을 전공한 과학자다. 정보기술과 예술을 접목해 기술 이면에 숨은 권력을 고발하는 ‘역(逆)기술국’ 활동으로 이력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이 품은 접속과 소통의 힘을 발견했고, 직접 제작한 기계나 프로그램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예컨대 호수에 마이크를 내장한 로봇 거위를 띄워 사람들이 거위와 대화하게 하고, 유독 물질을 감지하는 귀여운 모습의 로봇견으로 로봇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물질을 함유한 미끼를 물고기와 나눠 먹으며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기도 한다. 이렇듯 제러미젠코는 비인간 존재들과 소통할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체적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이 책은 제러미젠코의 다채로운 포트폴리오를 열 가지 키워드로 탐색한다. 제러미젠코가 ‘이민 과학자’로서 겪은 경험이 작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제러미젠코의 공적 실험이 도나 해러웨이의 ‘응답-능력’ 개념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제러미젠코가 운영소장으로 있는 ‘x클리닉’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등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기후위기로 환경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절실한 오늘날, 과학과 예술이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할 길을 밝게 비춘다.
내털리 제러미젠코(Natalie Jeremijenko, 1966∼ )
바이오아트와 생태미술 작가로, 뉴욕대학교 스타인하트 예술·예술교육과 부교수이자 자신이 설립한 OOZ 주식회사와 환경건강 클리닉-연구소인 x클리닉에서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기존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역기술국, 우즈, x디자인, x클리닉, 교차종 어드벤처 클럽, 분자요리법 등 ‘새로운 실험주의’를 표방하고 ‘환경 상호 연결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환경을 심층적으로 개선하고 생태적 인식을 전환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VIDA예술과인공생명국제개척자상을 수상했으며 각종 펠로십과 레지던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200자평
내털리 제러미젠코는 ‘환경건강’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하는 과학자이자 생태미술가다. 흥미로운 공적 실험으로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과학기술에 기반해 비인간 존재들과 소통할 창구를 마련하며 그들에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체 역할을 부여한다. 이 책은 인간 중심 관점을 비트는 제러미젠코의 포트폴리오를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도시환경 속 인간ᐧ동식물ᐧ기계가 조화롭게 공생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지은이
박윤조
A.P.23 디렉터이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다. 동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생태미술에 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생태미술의 현황: 마음과 생명에 대한 인식론적 논의를 중심으로”(2022), “관계망을 통한 여성주의 작업 동력의 회복 과정: 윤석남, 박영숙, 정정엽을 중심으로”(2020)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공저로는 ≪미술의 이해와 감상≫(2020), ≪한국 현대미술의 읽기≫(2013) 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2022)과 광주시립미술관(2023) 등에서 발표했으며 허윤희, 권자연, 조은지, 강술생, 김미숙, 정정엽, 황주리, 홍이현숙 작가의 아카이브 전시와 그룹전을 기획했다. 기획자이자 현대미술포럼(CAF) 학술이사로서 미술비평과 전시 기획, 신진 작가 발굴에 힘쓰고 있다.
차례
‘도시생명다양성’을 위한 포트폴리오
01 이민 과학자
02 역기술 실천
03 종간 피드백
04 환경 모니터링
05 응답-능력
06 새로운 실험주의
07 파머시
08 x클리닉
09 도시생명다양성
10 생태적 인식 전환
책속으로
제러미젠코는 최근 자신을 ‘싱커(Thingker)’로 소개한다. 싱커란 제러미젠코가 직접 만든 조어로, 엔지니어로서 ‘사물 제작자(thing-maker)’의 의미를 넘어 사물을 의인화하는 동시에, 중간에 k를 넣어 발음상 ‘생각하는 자(thinker)’를 연상시킨다.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담으면서도 사물이라는 단어를 부각해 인간 중심의 실존주의적 관점을 비껴간다.
_“‘도시생명다양성’을 위한 포트폴리오” 중에서
제러미젠코는 자신의 전략에서 인간만을 모니터링의 주체로 내세우지 않는다. 동물이나 로봇 역시 사회적 수준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홍합 합창단(Mussel Choir)>(2012∼ )에서 ‘노래 퍼포먼스’의 주체는 바로 홍합이다. <생태학(Ecology)>(2012)이라는 전시에서 제러미젠코는 홍합이 시간당 6∼9리터 상당의 물을 정수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 착안해, 이 대행자를 매개로 수질 상태를 검토했다. 이 홍합들에는 껍질의 개폐 상황을 소리로 변환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마치 그들이 노래하는 듯한 효과를 낳는다. 즉 음향으로 변환된 데이터를 통해 ‘직접’ 수질 정화에 대해 ‘노래’하는 오디오 장치인 셈이다.
_“04 환경 모니터링” 중에서
제러미젠코는 뉴욕을 가로지르는 하이라인(High Line) 공원을 따라 박쥐의 비행에서 발생하는 음향을 추적하고 그 소리의 주파수를 측정했다. 또한 옥외 간판 내부에 장착된 모니터링 장치의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박쥐들의 울음소리를 매핑하고, 그 데이터를 인간에게 그들의 상태와 필요한 조건들을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번안했다. 제러미젠코는 그 자료를 광고판에 올리는데, 이는 그동안 채집한 수많은 울음소리 패턴을 분석·적용한 결과다. 이 옥외 설치 작업물은 박쥐들의 안전한 숙식처로 기능하는 동시에 조명에 모여든 나방을 먹이로 제공한다. 제러미젠코의 표현대로, 이 작품은 인간이 박쥐를 위해 제공한 ‘동굴’이자 그들을 위한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스루’인 셈이다.
_“05 응답-능력” 중에서
비올라시움과 잔티노박테리움 리비듐은 습지 토양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로, 치명적인 곰팡이(chytrid fungus)로부터 생존한 양서류의 피부에서 발견된다. 제러미젠코는 만찬에서 이러한 항진균성 박테리아를 첨가한, 일명 ‘습지의 키스(Wet Kiss)’라는 보라색 쿠키와 칵테일을 제공했다. 이를 먹은 참여자는 ‘개구리와의 키스’라는 이벤트를 통해 곰팡이로 인한 중독과 감염을 예방하는 ‘접종(inoculation)’을 실시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해러웨이가 ‘반려종 선언’에서 언급한 자신의 개와의 입맞춤을 연상시키면서, 인간과 개구리, 물고기로 하여금 종 너머의 공존과 응답-책임을 경험하게 한다.
_“08 x클리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