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것이 풍자다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한때 계관시인의 자리에 있기도 했던 존 드라이든은 영국 최고의 풍자시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든의 작품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는데 풍자시의 맛을 제대로 살려 번역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존 드라이든의 시와 풍자, 18세기 영국에 대해 연구해 온 김옥수 교수가 정확한 번역과 친절한 주석으로 드라이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드라이든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토리당의 일원으로서 휘그당 인물들을 공격하는 내용의 시들을 여럿 남겼다. 그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풍자시의 형식을 빌려 쓴 <압살롬과 아히도벨>이다. 현실의 인물들을 성서 속의 인물들에 비유해 나타낸 이 시는 드라이든의 수많은 시들 중에서도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 음모설(Popish Plot)’이 발단이 되어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토리당과 휘그당 사이의 갈등에서, 드라이든은 토리당의 입장에서 찰스 2세를 다윗에, 휘그당의 거두인 섀프츠베리를 반란자 압살롬의 책략가인 아히도벨에 비유하는 등 뚜렷한 인물 묘사를 통해 휘그당 인물들을 거침없이 공격했다.
드라이든은 그가 젊을 때, 청교도혁명의 핵심 인물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을 영웅으로 찬양하는 작품인 <영웅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 공을 세운 크롬웰을 찬양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시기적으로 그 후에 지은 작품인 <압살롬과 아히도벨>에서 드라이든이 왕정을 지지하는 토리당의 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은 큰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그의 정치적 변화는 그에게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결국은 시인 드라이든이 찬양시와 풍자시 등을 통해 큰 이름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한 것도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에 한몫했는데 드라이든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입장과 로마가톨릭을 옹호하고 영국국교회에 가톨릭을 이해시키기 위한 시를 남겼으니, 가톨릭을 암사슴에, 영국국교회를 표범에 빗대어 나타낸 우화시 <암사슴과 표범>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대표적인 작품들 외에도 드라이든의 시 세계를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들을 엄선해 수록했다. 특히 소개하기 어려운 수백여 행에 달하는 장편 시들도 핵심적인 부분을 발췌해 일부나마 그 정수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200자평
영국 시인 존 드라이든의 시 40수를 가려 실었다.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풍자시 <압살롬과 아히도벨>, 또 올리버 크롬웰의 영웅적인 면모를 찬양하는 작품인 <영웅시>,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드러내고 가톨릭을 옹호하는 우화시 <암사슴과 표범> 등 드라이든의 대표적 시들을 실었다. 영국의 신고전주의를 이룩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폭넓은 시 세계가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다.
지은이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은 1631년 노샘프턴셔 주 올드윙클에서 이래즈머스 드라이든과 메리 피커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가문은 모두 청교도 가문이었고, 왕에 반대하는 의회파였다. 학생 때인 1649년에 자신의 첫 번째 시 <헤이스팅스 경의 죽음>을 발표했다. 이 시는 형이상학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그다음 해인 1650년에 그는 당시 새로운 과학의 중심지였던 트리니티대학에 들어갔고, 시인으로서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과 고전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을 배웠다. 1658년 크롬웰이 죽자, 크롬웰의 영광스러운 기억에 바치는 <영웅시>를 썼다.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의회주의자였던 드라이든은 왕당파와 영국국교도가 되었다. 드라이든은 <정의의 여신의 귀환>이라는 시를 써서 찰스 2세의 왕정복고를 축하하는데, 이 시에서 드라이든은 영국과 로마를 비교하고, 찰스를 아우구스투스에 비유했다.
드라이든의 천재성은 늦게 만개했다. 드라이든은 런던에서 쾌활하고 완고한 왕당파인 로버트 하워드 경을 만나 교류했다. 1664년 로버트와 함께 비극 <인도 여왕>을 지었다. 마침내 드라이든은 1668년 윌리엄 대버넌트의 뒤를 이어 계관시인이 되었다.
47세 때인 1678년, 그는 풍자시를 쓰게 되었다. 드라이든의 문학적 능력은 풍자시에서 가장 잘 발휘되었다. 그는 의사 영웅체 풍자시(mock-heroic satire)인 <맥플레크노>에서 삼류 극작가를 주로 공격하지만, 여기에는 정치적인 풍자가 함축되어 있다. 휘그파와 토리파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1681년 <압살롬과 아히도벨>을 썼다. 이 풍자시로 그는 왕과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인 휘그당을 공격했다.
오렌지 공 윌리엄이 영국 왕으로 즉위하면서 드라이든은 계관시인과 왕실 사료 편찬자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드라이든은 새로운 군주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명예혁명 뒤 확고한 가톨릭교도이자 제임스주의자로서 인생의 나머지 12년을 보냈다. 1689년 이후 드라이든은 글로써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극작품과 번역에 매진해야 했다. 그는 다섯 개의 극작품을 썼고, 유베날리스와 페르시우스의 작품을 번역했다. 1700년 사망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드라이든은 영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풍자시인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라나다의 정복>으로 대표되는 영웅 희극이라는 드라마 장르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 비평사에서도 그의 이름을 길이 남긴 비평인 <극시론> 등을 썼다. 그 결과 그는 “영국 비평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옮긴이
김옥수는 부산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 영문과에서 석사 학위논문으로 <존 드라이든의 오거스턴 비전 연구>를 썼고, 박사 학위논문으로 <포프의 후기 풍자시와 18세기 영국의 사회 변화>를 썼다. 현재 제주대학교 인문대 영문과에 재직 중이다. 풍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로널드 폴슨(Ronald Paulson)의 ≪풍자문학론(The Fictions of Satire)≫(1992)을 번역했다. 또한 비평 방법론에 대한 관심도 지대해, 프랭크 렌트리키아(Frank Lentricchia) 외 여러 명의 비평가들의 논문을 편역한 ≪신역사주의론≫(1994)을 출간했다. 그리고 일반 대학생들의 시에 대한 감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19세기 영미시 이해≫, ≪20세기 영미시 이해≫를 출간했다.
차례
영웅시
로버트 하워드 경에게
정의의 여신의 귀환
대법관께
찰턴 박사에게
경이의 해
은밀한 사랑 서언
연가
아우렝제베 에필로그
인생은 축복일까
압살롬과 아히도벨
안녕, 감사할 줄 모르는 배신자여!
메달
맥플레크노
평신도의 신앙
아가티아스의 경구
로스커먼 백작에게
올덤을 추모하며
내 친구 노슬리에게
죽음의 두려움에 대해
앤 킬리그루 양
암사슴과 표범
성 체칠리아의 날을 위한 노래
밀턴에게 부치는 시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여섯 편
나는 아름다운 이리스를 사랑하나, 매시간 애가 타네
휘트모어 부인 비문
콩그리브에게
고드프리 넬러 경에게
알렉산드로스의 향연
오먼드 공작부인에게
팰러먼과 아사이트
체스터턴의 드라이든에게
수탉과 여우
피타고라스의 철학에 대해
선한 신부의 성격
매우 젊은 신사의 죽음에 부쳐
윈체스터 후작 기념비 비문
노퍽 바닝엄의 마거릿 패스턴 부인 비문
아내를 위한 비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 행복한 시대여! 위대한 아우구스투스 왕좌를 위해
운명에 의해 홀로 점지된 시대들과 같은 시대들이여
우리 민족은 제 세력의 통합으로 축복받아
이제 균형 맞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머지 세계를 지배하리라.
그대의 제국은 해외에서 어떤 한계도 알지 못할 것이고,
끝없이 순환하는 바다처럼 흐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