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의 원전은 니나 아우어바흐와 데이비드 스칼이 편집하고 노턴 출판사에서 출간한 ≪드라큘라(Dracula)≫(1997)며, 원문의 6분의 1 정도를 발췌, 번역했다. 고딕소설과 현대적 추리소설의 요소를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써 도시 고딕소설(Urban Gothic)이라 할 수 있다. 고딕소설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문학 장르로서, 영화의 스릴러나 미스터리처럼 독자에게 공포와 전율을 안겨 주는 소설이다. 고딕풍의 중세 성을 배경으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유령이 출몰하기도 한다.
≪드라큘라≫의 주된 배경은 중세가 아니라 19세기, 특히 문명화와 산업화의 첨단을 달리는 영국이다. 작품 도입부에서만 전통 고딕소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길 따름이다. 악령의 존재를 믿는 미신적이며 미개한 트란실바니아의 주민들, 이리와 늑대 떼가 울부짖는 야성적인 자연, 드라큘라 백작의 낡은 고딕풍 성, 피의 식사를 즐기는 흡혈귀 등에 대한 묘사는 일반적인 고딕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200자평
앙드레 말로가 ‘현대에 창조된 유일한 신화’라고 격찬한 소설이 출간되었다. 빛을 싫어하며, 피를 탐하고, 창백한 피부와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눈동자. 이 어둠의 존재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매료시켜 왔다. 수많은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된 환상 문학의 고전 ≪드라큘라≫의 원작을 즐길 수 있다.
지은이
브램 스토커는 1847년 11월에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센티미터 장신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병치레가 잦았으며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병약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아일랜드의 동화나 민담, 전설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불을 지폈다.
브램 스토커는 더블린 정부의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와 연극 평론가로 활동했다. 이때 그가 썼던 연극 평론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글을 우연히 읽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이 호기심에서 그를 식사에 초대했던 것이다. 1878년에 라이시엄(Lyceum)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된 어빙이 스토커에게 극장 프로듀서 자리를 제안하자, 그는 추호의 미련도 없이 12년 근무했던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런던에서 그와 합류했다.
스토커는 극장을 경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897년 ≪드라큘라≫를 출간하기에 앞서, 그는 ≪뱀의 고갯길(The Snake’s Pass)≫이나 ≪샤스타의 어깨(The Shoulder of Shasta)≫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욱 창작에 박차를 가했다. ≪드라큘라≫는 그가 영국 국립도서관 등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6년 이상의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출간과 동시에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그가 쓴 많은 작품 가운데 ≪드라큘라≫만이 유일하게 계속해서 독자에게 읽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드라큘라≫의 출간 이후로 어빙과 스토커에게 여러 악재가 뒤따랐다. 1898년에 런던 외곽에 있던 거대한 무대장치가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극장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어빙과 스토커의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스토커는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어빙이 사망한 이후로도 그는 ≪칠성의 보석(The Jewel of Seven Stars)≫이나 ≪흰 벌레의 소굴(The Lair of the White Worm)≫과 같은 모험소설과 방대한 ≪헨리 어빙에 대한 개인적 회상(Personal Reminiscence of Henry Irving)≫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실에 추측과 성찰이 가미된 ≪유명한 사기꾼들(Famous Imposters)≫을 발표했다. 이 마지막 책에서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실은 여장한 남자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문필가나 소설가로서 그의 존재는 미미했다. 1912년에 그가 사망했을 때도 동시대인들은 그를 다만 헨리 어빙의 조력자로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옮긴이
김종갑은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몸문화연구소 소장이다. ≪타자로서의 몸, 몸의 공동체≫,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역서, 논문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드라큘라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이번에는 착각이 있을 수 없었다. 백작은 고개를 돌리면 어깨너머로 바로 볼 수 있는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도 거울에는 그의 모습이 비치지 않다니! 방 전체가 거울 속에 담겨 있었지만 나 자신을 제외한 어떤 사람의 모습도 거기에는 없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이상한 일들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백작의 곁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그제야 나는 면도하면서 생긴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했다.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를 훔칠 탈지면을 찾기 위해서 몸을 뒤로 돌리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백작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은 분노한 악마처럼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내 목을 움켜쥐었다. 당황해서 급히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그의 손은 내가 목에 걸고 있었던 십자가 달린 염주를 건드리게 되었다. 그러자 갑작스런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의 얼굴에서 분노의 표정이 사라졌다.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