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식 그래픽 노블을 구현한 스토리텔러, 방학기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TV드라마의 대사다.
‘다모폐인’이란 말이 나올 정도를 사랑을 받은 TV드라마 <다모>의 원작자, 김두한과 시라소니, 이정재, 역도산을 지금 여기로 소환한 장대한 스케일의 만화로 당대 남성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받았던 작가, 바로 방학기다. 한때 스포츠신문 한 면을 가득 메운 그의 만화는 시간이 흘러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되었다. 장쾌한 서사와 거칠 것 없는 그림, 뛰어난 장면 연출, 압도적인 캐릭터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스토리텔러인가를 방증한다. 이 책은 한국식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리는 방학기의 작품론이다.
이 책은 방학기의 대표작 중 일곱 편을 분석하고, 여성 캐릭터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원천 콘텐츠로서 매력을 논의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일곱 편의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1970년대식 SF물인 <타임머쉰>, 다모 채옥을 중심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의 내력담이 서사를 담보한 <조선여형사 다모>, 아버지 부재의 시대에 스스로 새로운 아버지의 질서와 규율을 만들고 싶어 했던 세 사내, 김두한과 시라소니, 이정재의 삶을 그린 <감격시대>, 흔히 ‘들병이’로 알려진 여성을 내세워 인우구망(人牛俱忘)에 이르는 구도의 여정을 그린 <청산별곡>, 최배달이란 인물을 통해 극진(極盡)에 이르려는 구도(求道)의 여정을 다룬 <바람의 파이터>, 일제강점기와 해방에 이르는 격동기에 협객으로 일세를 풍미한 시라소니의 생을 그린 <바람의 아들>, 불꽃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외로운 사내, 역도산의 일생을 다룬 <역도산ᐨ승부사의 노래>다.
저자는 이들 작품을 통합하며 방학기 작품 속에서 나타난 여성 캐릭터와, 드라마나 영화로 옮겨진 방학기만화의 원천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분석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방학기 만화의 근력은 풍부한 서사성에 있다”며, “작품 간 연관이나 연쇄도 풍부하게 드러나 방학기 스토리월드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만화를 넘어 그래픽 노블로, 나아가 방학기 스토리월드의 구축 가능성까지 열어둔 방학기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200자평
<다모>의 원작자 방학기는 풍부한 서사성과 비장미를 바탕으로 한국식 그래픽 노블을 구현한 스토리텔러다. 중심 캐릭터와 메인 플롯의 긴장과 속도를 자유 모티프의 유연한 활용으로 조절하며 탄력적이고 풍성한 이야기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즐겨 구사한다. 철저한 취재와 조사를 통해 서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풍경을 구현하고, 이를 현재적으로 소환함으로써 향유자의 참여와 공감을 강화한다. 격렬하고 역동적인 상황을 하나의 칸 안에서 종합적으로 구현하는 독특한 방학기식 장면 연출 역시 압도적인 성취다.
지은이
박기수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콘텐츠전략연구소 소장이다. 한양대학교 ERICA 창의융합교육원장과 ICᐨPBL센터장을 맡고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 서사의 특성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을 하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과의 운명적인 조우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창작아카데미 자문위원, KBS 미디어비평 자문위원을 지냈고 캘리포니아대학교(어바인)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연구의 관심 분야는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리터러시, 향유, 팬덤, HCI 등으로 현장성 강한 실천적 학문의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전략』(2018), 『윤태호』(2018), 『강도하』(2018), 『웹툰,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가능성』(2018),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구조와 전략』(2015), 『アニメは 越境する』(공저, 2010), 『애니메이션 서사구조와 전략』(2004) 등 28권의 저서와 “웹툰의 트랜스 미디어스토리텔링 전략 연구”(2016) 등 8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차례
치열한 생잔의 미망, 비장미의 미학
01 1970년대식 소년의 꿈
02 다모, 탐정담과 내력담 사이
03 세 갈래 미망의 기록
04 인우구망의 길
05 극진의 구도와 투사
06 유협의 오디세이
07 생잔의 호접몽
08 종속과 애욕을 넘어서
09 원천 콘텐츠로서 방학기만화의 매력
10 서사성과 이야기성 그리고 비장미
책속으로
방학기의 작품을 읽으면서 경외스러운 지점은 자료 조사와 취재부터 스토리와 작화까지 홀로 수행하면서도 무엇 하나 소홀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서사의 밀도나 구조, 작화의 완성도나 장면 연출의 미적 성취, 구사 언어의 생동감 등 그가 보여 주는 성취는 성실함과 자존의 작가 의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_ “치열한 생잔의 미망, 비장미의 미학” 중에서
<조선 여형사 다모>의 스토리텔링에서 두드러지는 성취는 장면 연출이 고도화되었다는 점이다. 방학기 작품 대부분은 주간지나 스포츠신문 연재 단위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향유자의 관심을 소구하고, 연재 주기에 맞추어 흥미를 유지시키기 위해 거시 서사의 완성도보다는 미시 서사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해 왔다.
_ “02 다모, 탐정담과 내력담 사이” 중에서
결국 <청산별곡>은 밥과 인연의 연쇄로 추락하는 고난담이다. 철저한 취재와 자료 조사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풍경을 밀도 있게 구현해 내는 방학기는 이 작품에서도 하층민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 언어생활, 계급사회의 모순, 갖지 못하고 늘 빼앗기는 자들의 애환을 묘화의 여정에 배경으로 깔아 주고 있다.
_ “04 인우구망의 길” 중에서
방학기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현재적 의미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에 가깝다. 방학기 작품은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소재를 적극 활용하면서 빠른 속도의 사건 전개를 통해 몰입을 유도하고, 시공간적 배경이나 캐릭터의 연결을 통한 서사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풍부한 서사성(narrativity)을 확보한다.
_ “06 유협의 오디세이” 중에서
방학기 작품들은 풍부한 서사성과 그만의 독특한 만화 미학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과 원천 소스를 발굴하는 탁월한 식별력, 그리고 발굴한 소재에 대한 철저한 취재와 자료 조사로 강한 이야기성을 확보하는 등이 그 브랜드를 유지하는 토대다.
_ “09 원천 콘텐츠로서 방학기만화의 매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