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하일 체호프의 연기론
미하일 체호프의 연극 세계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비단 그가 형식주의자·신비주의자로 비난받았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가 연출가로서 보여준 작업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창조한 연기술은 요절한 천재 연출가 바흐탄고프에 비추어 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직관과 상상력이 연기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적 구분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인간이 가진 직관과 영적 능력을 연기술에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현대 연기술에서 거의 잊혀갔던 무의식과 영혼의 세계, 그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영감과 직관을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이를 배우의 창조적 영역에 포함시켰다. 일상적 체험에 갇혀 있던 연극과 배우 예술을 정신적이고 초감각적 차원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향해 펼쳐놓은 것은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미하일 체호프가 현대 연극 예술계에 이루어 놓은 가장 큰 공헌이다.
미하일 체호프와 스타니슬랍스키
러시아의 많은 연극 예술가들이 그렇듯 미하일 체호프의 탐구 역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그조차 자신 나름의 것으로 받아들인다.그의 연기론은 스타니슬랍스키와는 다른 것이었다. 만약 스타니스랍스키가 돈키호테 역할을 준비하고자 한다면 그는 돈키호테의 주변을 상상하고 바로 돈키호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하일 체호프는 본인 스스로 돈키호테를 상상한다. 우선 돈키호테를 즐기는 것 외에 할 일은 없다. 그의 연기론이 스타니슬랍스키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배우의 개인적 체험과 내면으로부터 역할의 구현을 이끌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에 있다. 미하일 체호프의 배우는 상상력과 직관의 힘으로 극중 인물로부터 이상적인 형상을 도출하고, 이 인물의 형상과 배우가 끊임없는 소통의 과정을 진행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무대 위의 형상을 완성한다. 미하일 체호프의 배우는 자신이 만들 형상을 이미 상상 속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에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와는 달리 자신의 역에 심리적으로 함몰되지 않는다.
200자평
국내 처음 번역이다. 러시아의 연극 예술가 미하일 체호프는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적 사고를 깨고 상상과 직관으로 배우의 힘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기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일상과 개인적 체험에 갇혀 있던 연극과 배우를 깨워 초감각적 차원에 펼쳐놓은 그만의 연극예술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연기란, 또 연극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지은이
미하일 체호프는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이며, 20세기 배우 연기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메소드 중 하나를 확립한 이론가이기도 하다. 그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의 조카로서, 철학자이며 발명가이기도 했던 아버지와 작가인 삼촌으로부터 다양한 재능을 물려받았다. 어려서부터 상상력이 풍부했던 미하일 체호프는 1907년 알렉세이 수보린 연극 학교에 들어갔고, 1912년 안톤 체호프의 아내이자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주연 배우였던 올가 크니페르 체호바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예술극장에 입단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 제1스튜디오에서 미하일 체호프는 스타니슬랍스키를 비롯하여 술레르지츠키 등 훌륭한 스승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연극 인생에서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연출가 바흐탄고프를 만나, 그의 제자이자 동료이자 친구로서 그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뜰 때까지 깊은 예술적 교감을 나눈다. 미하일 체호프는 체험과 정서 기억으로부터 출발하는 배우 연기술의 위험성과 한계성을 느끼고, 배우의 개인적 삶과 현실을 넘어서는 창조적 원동력을 탐구했다. 그 결과 그는 역할 창조 과정에서 배우의 작업 영역을 무의식과 영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스스로 자신의 연기론을 ‘영감의 연기’로 설명하는 미하일 체호프는, 스타니슬랍스키식의 체험과 정서 기억으로부터 탈피하여 상상력과 직관을 중요한 창조적 원천으로 삼았다. 상상력, 이미지, 심리적 제스처, 상상의 신체와 중심 등 그의 연기론의 중요한 개념은, 현대 연극과 배우 예술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초감각적 세계의 차원을 부여한 것이다
옮긴이
이진아는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희곡문학을 전공했으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원에서 연극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소위원회 위원(2∼3기)을 역임했다. 러시아 연극과 한국 연극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대표적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공저, 2009), ≪동시대 연극비평론의 방법론과 실제≫(공저, 2009), ≪가면의 진실≫(2008), ≪동시대 연출가론≫(공저, 2007) 등이 있으며, <탈식민적 상황에서의 한국연극의 자기 재현>, <도스토옙스키 연극과 페테르부르크 테마>, <김우진의 ≪난파≫ 다시 읽기>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배우의 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에게는 분명하다. 배우의 최우선 과제는 그 자신을 재정비하는 작업, 자신의 테크닉, 자신의 배우적 현존을 재정비하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연극을 구원하는 것은 새로운 레퍼토리가 아니라, 바로 새로운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