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침내 브레히트 시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8년 독일의 작가이자 연구자 발터 힝크(Walter Hinck)는 “마침내 브레히트 시의 시대가 도래했다” 선언한다. 극작가로 알려졌지만, 브레히트는 희곡 이외에도 2,300여 편의 시를 쓴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희곡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벌써 어느 정도 총체적인 시각을 제공하였던 반면 시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시에 대한 얀 크노프 교수의 평가 한마디.
브레히트의 시는 ‘시’에 대한 개념을 본질적으로 그리고 지속해서 변화, 확장했다. 그가 시를 “개인적인 것의 표현”으로 간주하는 부르주아 시의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시’에 대해 그 자신뿐 아니라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영역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그 영역의 끝까지 가 본 사람이 없으며, 때문에 그 끝이 어디인지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 번역 시 선집이 출간된 이래 시집은 독자들이 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시론은 여전히 미답의 영역이다. 방대한 미학 서를 남긴 브레히트의 이론서 중에는 ≪불규칙 리듬의 무운시(無韻詩)≫ 등 시(장르)에 대한 오랜 성찰이 담긴 이론서들이 있을 뿐 아니라,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오직 점증하는 혼돈 때문에> 등 시(장르)에 대한 성찰을 시로 쓴 메타 시도 여러 편 있다. 이 책은 그의 저술 중 시에 관한 이론적인 글을 모았다. 편역자 이승진은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브레히트의 시집 ≪도시인을 위한 독본≫에 대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브레히트 연구 논문만 40여 편을 발표한 브레히트 전문가다.
“독자들은 시를 무의미하게 처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는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여기서 ‘처먹는다’는 것은 시를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그 수용을 위해 작가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동일하게 자신의 감정, 정서를 조율시키려는 독자의 수용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태도에는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것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이러한 의미로 시는 무비판적으로 ‘처먹히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사는 시대는 그가 말하듯이 “굶주림이 휩쓸고 있던 혼돈의 시대”이며 또한 “반란의 시대”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운을 맞추고 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면서 현실의 “조화롭지 못한 모습(…)을 마치 없는 일처럼 중화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 “인간 사이의 일들을 모순에 가득 찬 것으로서 투쟁에 광분하고 있는 폭력적인 것으로서 보여 주려” 시도했으며 그 결과 그는 불규칙한 운율 형식을 사용하고 또 시행에 (각)운을 주지 않았다.
또 그는 시가 힘이 있으려면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시의 꽃잎을 뜯어낸다고 부를 수 있는 냉정한 논리의 도입’에 대해 반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태도 없이 예술을 참되게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를 접할 때 판단력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장미의 잎을 모두 뜯어내 보아라, 그래도 그 꽃잎 하나하나는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또한 이성적인 것을 멀리하려는 시인들에게는 “시를 쓰려는 의도가 복된 것이라면 감정과 오성은 완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이들은 즐겁게 서로를 부른다. 남은 것은 당신의 결정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시인들에게 기존의 장르관에서 벗어나, 이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선택을 할 것을 요구한다.
* 이 책은 1964년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나온 ≪시에 관하여(Über Lyrik)≫와 2000년 완간된 ≪브레히트 신전집(Große Kommentierte Berliner und Frankfurter Ausgabe)≫에서 시에 대해 쓴 글을 선별해 옮겼습니다.
200자평
브레히트는 희곡 이외에도 2,300여 편의 시를 쓴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시에 대해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아무도 그 영역의 끝까지 가 본 사람이 없으며, 때문에 그 끝이 어디인지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방대한 시 세계의 미학적 기반이 되는 브레히트의 시론(詩論)은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브레히트 전공자인 독문학자 이승진 교수가 브레히트의 시 이론을 한 책에 모았다. “비판적인 태도 없이 예술을 참되게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를 접할 때 판단력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장미의 잎을 모두 뜯어내 보아라, 그래도 그 꽃잎 하나하나는 아름다울 것이다.” 브레히트의 목소리로 그의 시론을 만나 본다.
지은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현실 비판적이긴 했지만, 그 대안을 찾지 못해 댄디풍의 청년으로 지내던 브레히트는 부친의 권유로 입학했던 뮌헨대학 의대도 1학기 만에 중퇴하고 뮌헨의 연극판에 뛰어든다. 1922년에는 희곡 <한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상도 수상한다.1924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사내는 사내다> 등을 무대에 올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브레히트를 일약 베를린 문화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 준 작품은 1928년 초연된 서사적 음악극인 <서 푼짜리 오페라>였다.
1933년 독일 제국의사당이 나치스의 방화로 불탄 다음 날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그 후 그는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유럽을 전전하다, 194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작가 브레히트에게 망명은 곧 독자와 무대의 상실을 의미했다. 작품을 써도 읽어 줄 독자와 그 작품을 올릴 무대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망명 기간에 집필한 <사천의 선인>, <억척어멈>, <갈릴레이의 생애>, <아르투로 우이> 등의 대작 희곡은 모두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는 극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브레히트는 1947년 10월 30일 “반미활동 청문회”에 소환받아 공산당원 전력 등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된다. 다음 날 미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그해 11월 취리히에 도착한다. 취리히에서 브레히트는 독일 귀환을 준비한다. 하지만 분단된 독일은 모든 망명객들에게 두 개의 독일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브레히트는 결국 사상적으로 가깝고, 자신에게 연극 무대를 제공해 준 동독을 선택하면서 오랜 망명 생활을 청산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민중과 멀어진 당, 동독 문화 정책과의 불협화음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지병인 신장염이 재발해 1956년 8월 14일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역자 이승진(李承眞)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독일어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브레히트의 시집 ≪도시인을 위한 독본≫에 대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Aus dem Lesebuch für Städtebewohner. Schallplattenlyrik zum Einverständnis≫와 ≪매체작가 브레히트≫, ≪브레히트의 서사극≫(공저), ≪브레히트 연극사전≫(공저), ≪청년 브레히트≫(공저), 역서로서는 ≪전쟁교본(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 ≪독일 연극이론≫(공역), ≪브레히트의 연극이론≫(공역) 등이 있으며, <친절한 세상을 위한 브레히트의 “불친절한 시”>, <거지 오페라에서 <서푼짜리 영화>까지 − ‘서푼짜리 소재’의 변용 스토리텔링 연구> 등 40여 편의 브레히트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I.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메티의 엄격함
후손들에게
오직 점증하는 혼돈 때문에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순수예술에 대해
회화와 화가에 대해
〔시도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도 투쟁할 수 있나요?
〔현실은 작가의 창고다〕
II. 시인이여 이성을 두려워 말라
시인이라고 해서 이성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표현으로서의 시
시에서의 논리
베라의 시 <어느 부르주아 친구에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
시의 꽃잎을 뜯어내는 것에 대해
〔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서만은 안 된다〕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III. 변증법적·실천적 행위로서의 시
변증법
회의하는 자
〔시를 쓴다는 것은 사회적 실천이다〕
무엇이 아름다운가?
노 젓기, 대화
〔걸작은 살아 있다〕
IV. 시는 사용되어야 한다
인간에 의해 생산된 모든 것에 대해
400명의 젊은 시인들에 대한 심사를 마치고 나서
시와 건축의 결합에 대해
〔시집 출판에 대해〕
≪가정 기도서≫에 대해
≪가정 기도서≫의 사용 지침
〔루르 서사시〕
〔≪시 백선≫에 대해〕
〔스벤보르 시집의 모토〕
〔에피그램 형식에 대해〕
〔예전에는 생각했지〕
V. 진실은 여러 방식으로 침묵될 수도, 말해질 수도 있다
〔<넓고 다양한 사실주의 서술 방식>에 대한 머리말〕
넓고 다양한 사실주의 서술 방식
〔<넓고 다양한 사실주의 서술 방식>에 대한 추가 서술〕
〔셸리에 대한 짧은 노트〕
민중문학
〔옛 시 형식을 사용한 실험에 대해〕
〔오히려 형식적인 것이 덜 중요시되었다〕
형식과 소재
VI. 시어(詩語), 운율, 게스투스
소재와 형식에 대해
불규칙 리듬의 무운시(無韻詩)
〔앞글에 대한 보충〕
클롭슈토크의 시행을 낭송하는 방법에 대해
문학에서 사용되는 게스투스 언어에 대해
게스투스에 대해
시의 번역 가능성에 대해
한스 칼 뮐러의 시 낭송회
〔시 낭송에 대해〕
VII. 쓸모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시
시인의 노래
K씨와 시
〔고트프리트 벤에 대한 노트〕
〔슈테판 게오르게에 대해〕
〔보들레르에 관한 노트〕
쓸모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얼마 전 시인 킨예가 이러한 시기에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를 써도 되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써도 된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를 썼는지 물어보았지요. 그는 못 했다고 대답했고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 만드는 것을 내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이따금 몇 줄을 끄적거리면서도 나는 이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를 모든 사람을 위해, 즉 비 오는 날 비를 피할 잠자리를 찾아다녀도 집도 절도 없어 빗방울이 그의 옷깃과 목 사이로 그대로 떨어지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즐길 수 있는 체험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제 앞에서 나는 그만 움츠러들었어요.”
“예술이 오늘의 상황만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언제나 빗방울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가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짐짓 이렇게 떠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만약 옷깃과 목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다면 그런 시가 쓰일 수 있겠지요.”
-14~15쪽
작품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지내는 시인이 여럿 있는데, 나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다른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유독 시를 쓸 때면 이성적인 것을 멀리하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자주 있다. 혹시 이들은 시를 단지 감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또 오직 순수 감정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게 믿고 있다면 이들은 적어도 감정 역시 사고(思考)처럼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안다면 시인들은 보다 조심스럽게 시를 쓰게 될 것이다.
몇몇 특히 시를 갓 쓰기 시작한 시인들은 그들이 정서에 젖어 무엇인가를 느끼려 할 때 이성적으로 생겨난 것이 이 정서를 망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걱정이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걱정이라는 점이다. 위대한 시인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를 안다면 이러한 걱정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빼어난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사려 깊고, 명징한 사색을 멀리하지 않으며 또한 이로 인해 이들 시인의 창작이 방해받을 정도로 이들의 정서는 피상적이고, 불안정하며, 쉽게 사라지고 마는 정서가 결코 아니다. 어느 정도의 들뜬 상태나 격앙됨이 사고(思考)의 명징함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 기준을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오히려 이 정서를 아주 비생산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싫으면 시 쓰는 것을 단념해야 할 것이다.
-27~28쪽
시를 좋아하는 문학 동호인들은 시의 꽃잎을 뜯어낸다고 부를 수 있는 냉정한 논리의 도입, 즉 이 연약하고 활짝 핀 꽃과 같은 구성물로부터 단어들과 이미지를 분리해 내는 것에 격렬한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 말해 둘 것은 사람들이 바늘이나 칼로 꽃을 찌른다고 해서 꽃이 시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비판적인 개입도 잘 견뎌 낼 능력이 있다. 어떤 시행 하나가 좋지 않다고 해서 시 전체가 망가지는 것도 아니며, 또 시행 하나가 잘되었다고 해서 시 전체가 구제받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시행을 찾아내는 것과 훌륭한 시행을 찾아내는 능력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며 이러한 능력 없이는 시를 참되게 즐길 수 없다. (…) 장미의 잎을 모두 뜯어내 보아라, 그래도 그 꽃잎 하나하나는 아름다울 것이다.
-4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