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로그래밍된 자유’를 직시하라
기술의 지배에 맞서는 기술의 철학
누구나 챗지피티에 질문하면 대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답이 도출되는 과정은 알 수 없다. ‘내부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다’는 현대 첨단 기술의 이러한 속성을 빌렘 플루서는 속이 보이지 않는 상자, ‘블랙박스(blackbox)’로 비유했다.
플루서의 철학은 내막을 알 수 없는 기술이 인간 삶을 잠식하는 상황에 대한 경고이자 통찰이다. 인간이 그림과 문자 같은 매개를 통해 어떻게 세계를 의미화하며 문화를 창조해 왔는지, 기술이 도구에서 기계 그리고 기구로 점차 진화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행위와 사고 일반을 대신 떠맡게 되었는지, 오늘날 거대 기술 시스템에 종속되어 수동적 수행인(Funktionär)으로 전락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능동적으로 자기 실존을 재발명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이 책은 ‘문자’, ‘이미지’, ‘코드’, ‘기구’, ‘놀이’, ‘인간 되기’ 등 플루서의 주요 개념을 해설하며 인간 자유에 대한 그의 전망을 소개한다. 모든 것이 자동화하는 기술 사회 속에서 자유로움보다 위화감을 더 느끼는 이들에게 그 원인을 밝혀 주고 타개의 실마리를 전해 줄 것이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1920∼1991)
철학자.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9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고, 1941년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주해 저널리스트이자 커뮤니케이션 철학 교수로 활동했다. 1972년에 다시 유럽으로 이주한 후 독일·프랑스·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독일어·포르투갈어·영어·프랑스어를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썼다. 평생 동안 커뮤니케이션과 테크놀로지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인간의 조건과 문화의 변동을 탐구했다. 저서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코무니콜로기≫,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 ≪몸짓들≫, ≪사물과 비사물≫ 등이 있다.
200자평
산업 혁명 이후 기술 사회가 가속화하면서 인간 소외, 삶의 부조리가 심화했다. 플루서는 이러한 문제가 기존 문자 중심 철학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고 진단하고 극복 방안을 탐구했다. 이 책은 ‘문자’, ‘이미지’, ‘코드’, ‘기구’, ‘놀이’, ‘인간 되기’ 등 플루서의 주요 개념을 해설하며 인간 자유에 대한 그의 전망을 소개한다.
지은이
이진욱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던 중 가상과 실재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파더본대학교 미디어학부 박사 과정에서 매체라는 관점에서 가상을 연구했고, 베를린자유대학교 철학부 박사 과정으로 옮겨 현상학적 관점에서 빌렘 플루서의 기술적 이미지를 연구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플루서의 기술적 이미지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지식콘텐츠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대화로 철학하기≫(공저, 2023)가 있다.
차례
발 디딜 곳을 향한 여정
01 문화 : 네겐트로피
02 이미지 1 : 상상력
03 이미지 2 : 수수께끼와 퍼즐
04 문자 : 개념적 사고
05 코드 : 의미 주기
06 노동 : 반자연적 몸짓
07 기구 : 사고의 시뮬레이션
08 놀이 : 기구의 실행
09 수행인 : 새로운 인간 실존
10 인간 되기 : 주체에서 기획으로
책속으로
플루서가 문자의 발명과 기술적 이미지의 발명이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 단절을 초래했다고 판단한 이유는 문자와 기술적 이미지가 현존재로서 인간을 규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플루서는 문화가 자기 스스로 그 발전의 방향을 전회하는 데 이 두 단절이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이러한 문화의 자기 전회가 세계ᐨ내ᐨ존재(In-der-Welt-sein)로서 인간이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하는 방식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 현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규정 역시 변해 왔다고 보았다. 요컨대 플루서의 철학은 이 두 단절로 인한 문화의 자기 전회를 반성해 인간 실존의 변화 과정을 고찰하려는 철학적 탐험이다.
_ “01 문화” 중에서
플루서는 인간이 이러한 의미 주기(Sinngebung)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간 되기(Menschwerdung)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루서가 생각하는 인간은 주어진 자연 속에 이미 ‘되어진’ 존재가 아니라 반자연 속에서 ‘되어야’ 할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을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존재로 파악하는 것으로, 인간은 의미 주기를 통해 획득된 정보를 저장·전승하고 있고, 정보의 저장·전승은 곧 ‘인간 되기’의 과정을 의미하면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면모를 만들어 주며, 인간 또한 인간 되기의 과정 밖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_ “05 코드” 중에서
수행인이란 현실에서 그리고 자신에게서도 소외되어 산업적이고 문화적인 초인간적 기구의 일부가 된 인간 실존을 의미한다. 수행인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것이 무엇을 함의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능력을 상실한 채 주어진 규범과 규칙을 몰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수행인은 기구 규범의 의미를 묻지 않고 관습적으로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다. 수행인의 삶은 기구를 먹여 살리는 삶, 기구에 의해 연명되는 삶이다.
_ “09 수행인” 중에서
인간은 지금껏 세계를 지우는 데까지 이르는 추상화를 통해 세계를 인식해 왔다. 세계는 표상된 이미지로, 다시 이차원 평면 위의 이미지로 점차 추상화되었고, 선형으로 나열된 문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기술적 이미지는 인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낳고 있다. 이 이미지는 계산적이고 연산적인 실행을 통해 구체성을 상실한 추상적 현실들의 구체적 모형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이미지는 영차원 점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를 구성하는 점(픽셀)들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까지, 즉 이차원뿐 아니라 삼차원적 객체나 세계까지 투사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인식이 더 이상 개념적 사유 속에 머물지 않고 영차원 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면, “인식론적 주체는 객체성과 마주하는 자신의 비굴한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기획”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식론적 전환을 의미할 뿐 아니라 윤리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가능성의 공간으로 이뤄진 세계와 함께 자기를 스스로 투사하는 인간의 새로운 윤리학이다.
_ “10 인간 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