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왜 불평등한가
유럽중심주의를 뒤집는 역사유물론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주변부는 빈곤과 저발전 문제에 시달린다. 마르크스 역사유물론을 비롯한 서구 사상 체계는 그 원인을 주변부 내에서 찾으며 주변부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근대화하면 자연스레 중심부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자 사미르 아민은 이 가설을 단호히 거부한다. 갈수록 심화하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양극화가 현실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유럽중심주의를 날카롭게 폭로한다.
이 책은 주변부의 역사 이론이자 해방 담론으로 기획된 아민의 역사유물론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유럽 중심 역사관에서 벗어나 ‘공납제’, ‘봉건제’, ‘근대성’,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정치적 이슬람’이 왜 전도된 형태의 유럽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민을 따라 자본주의 그리고 세상을 더욱 폭넓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조망해 보자.
사미르 아민(Samir Amin, 1931∼2018)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다. 1931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파리대학교에서 주변부의 저발전 문제를 파헤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중심부와 주변부의 양극화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이들 사이 지배와 종속, 착취와 침탈 관계를 더욱 심화했다는 사실을 파고들었다.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 저술로는 ≪세계적 규모의 자본 축적≫(1970), ≪불균등발전≫(1973), ≪유럽중심주의≫(1988) 등이 있다.
200자평
사미르 아민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 정치경제학자다. 중심부와 주변부의 양극화가 현실자본주의의 본질임을 밝히고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비유럽중심적으로 해석했다. 이 책은 역사유물론을 혁신해 주변부의 역사 이론과 해방 담론으로 세운 아민의 기획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자본주의 그리고 세상을 더욱 폭넓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조망할 수 있다.
지은이
최일성
한서대학교 국제관계학과·자유전공학부 교수.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이론을 비판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상고르(L. S. Senghor)의 ‘아프리카 사회주의’와 권위주의”(2021), “역사유물론과 유럽중심주의: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유럽중심주의 비판을 중심으로”(2019), “비서구 저항담론으로서의 세제르(A. Césaire)의 탈식민주의 비평, 그 가능성과 한계”(2018) 등이 있다. 저서로는 ≪세네갈의 역사≫(2023), ≪말리의 역사≫(2019),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 호텐토트의 고향≫(2018)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유럽중심주의≫(2023, 공역)가 있다. 현재 제3세계의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차례
사미르 아민의 정치사상
01 유럽중심주의
02 현실자본주의
03 역사유물론
04 세계체제론
05 공납제
06 봉건제
07 근대성
08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09 정치적 이슬람
10 절연
책속으로
아민은 만일 인류가 유럽의 역사적 특수성을 인식한다면, 유럽이 발전시킨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러한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를 통합하기보다는 분열시켰다는 사실(현실자본주의)을 인식한다면 진정 보편적인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주변부 민중의 해방을 위한 역사적 대안, 즉 세계자본주의 체제와의 ‘절연(déconnexion)’을 제안한다. 이제 인류는 아민과 함께 새로운 논쟁에 돌입한다. 그 논쟁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아민의 비판은 물론 그가 정초하려는 새로운 역사유물론에 대한 평가를 아우른다.
_“사미르 아민의 정치사상” 중에서
양극화는 현실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생성되고 유지된다. 체제 자체가 주변부의 발전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며, 자본주의적 발전이나 중심부 ‘따라잡기’를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민은 유럽자본주의를 보편 모델로 상정한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주변부 역사 이론을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평가하며, 따라서 현실자본주의 분석에 기초해 새로운 역사유물론을 정초할 것을 주문한다.
_“02 현실자본주의” 중에서
중심부 공납제 사회는 다량의 잉여를 추출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이데올로기 사회였던 반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유럽 본토 등 나머지 주변부 공납제 사회는 느슨하고 분권적인 이데올로기 사회에 불과했다. 따라서 중심부 공납제 사회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는 데 효과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주변부 공납제 사회는 그러한 이행을 재촉하는 상인(자본) 권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민은 ‘덜 발전한 공납제 사회’의 더 큰 유연성이 ‘더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재촉했다는 ‘불균등발전론’을 전개한다.
_“05 공납제” 중에서
무슬림 사회는 유럽의 문화주의적 해석을 모방해 19세기 ‘나흐다(Nahda)’라 불리는 ‘이슬람 르네상스’를 기획하며 근대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은 유럽중심주의가 선전해 온 ‘기원으로의 회귀’라는 문화주의적 선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그릇된 이해에 기반해 그 ‘기원’을 이슬람교(종교)로 대변되는 문화적 요소들로 가득 채웠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 문명(특히 ‘이성’)의 출현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던 고대 동방 문명은 ‘자힐리야(Jahiliya)’, 즉 불경의 시간으로 취급되어 재탄생(르네상스)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못했고, 종교(이슬람)의 반계몽주의적 흐름만 더욱 공고화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_“08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