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세기 후반 스페인 사실주의 대표 소설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의 ≪삼각 모자≫는 19세기 후반 스페인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다. 동시대 작가 에밀리아 파르도 바산(Emilia Pardo Bazán)은 이 소설을 “알라르콘 작품 세계의 절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 칭했으며, 문학사가인 비센테 가오스(Vicente Gaos)는 스페인 사실주의 소설의 효시로 페르난 카바예로(Fernán Caballero)의 ≪갈매기(La gaviota)≫(1849) 대신 이 작품을 꼽았다. 1874년 첫 출간 당시 대중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인기에 힘입어 여러 차례 재판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10여 개국 이상에서 번역·출간되었다. 발레, 오페라, 영화, 연극의 원작으로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y Matheu, 1876~1946)의 발레 모음곡은 음악 및 무용 애호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신고전주의를 계승하는 작법
소설은 총 서른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서른다섯 개의 장은 신고전주의 극에서처럼 다섯 개의 막으로 나눌 수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단일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강조한 삼단일 법칙을 준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때로 화자가 직접 등장해 소설에 개입하는 것은 낭만주의의 흔적을 엿보게 한다. 이렇듯 스페인 문학이 신고전주의,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이행하며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연구 가치가 매우 높은 소설이다.
방앗간지기 부부 루카스와 프라스키타, 그리고 시장 돈 에우헤니오의 유쾌한 소동극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어느 작은 도시, 금슬 좋은 방안간지기 부부 루카스와 프라스키타가 살고 있었다. 프라스키타의 미모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대단했다. 시장 돈 에우헤니오 역시 그런 그녀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정욕을 참지 못한 시장이 어느 날 마침내 보좌관 가르두냐와 계략을 꾸민다. 루카스를 집에서 꾀어 낸 다음 프라스키타를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시장의 속임수에 넘어가 집을 떠났던 루카스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굳게 걸어 잠갔던 대문은 활짝 열려 있고 시장의 옷가지가 사방에 널려 있는 게 아닌가. 설상가상 침실 문틈으로 엿보니 시장이 자기 침대에 누워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루카스는 시장의 삼각 모자와 망토를 걸쳐 입고는 시내에 있는 시장의 아내를 찾아 나선다.
200자평
≪삼각 모자≫는 19세기 후반 스페인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소설로 손꼽힌다. 1874년 첫 출간 당시 독자들의 선풍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인기에 힘입어 이후 세계 각국에서 여러 언어로 번역·출간되었다. 발레, 오페라, 영화 및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원작으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y Matheu, 1876~1946)의 발레 모음곡이 유명하다. 1804년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한 작은 도시의 어느 밤, 방앗간지기 루카스와 그의 아내 프라스키타, 그리고 프라스키타를 탐낸 시장 돈 에우헤니오 사이에 벌어진 한바탕 소동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지은이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Pedro Antonio de Alarcón, 1833∼1891)은 1833년 3월 10일 스페인 남부 지방인 그라나다의 과딕스에서 태어났다. 원래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로서 혁명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당시 스페인 군주였던 이사벨 2세를 비난한 글로 인해 한 베네수엘라 작가와 결투를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 보수주의자로 전향했다. 이 사건 이후 알라르콘은 수많은 저널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단편소설의 일인자라는 명성을 얻는다. 1857년 발표한 희곡 <방탕한 아들(El hijo prodigo)>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어 1859년에 발표한 ≪병사의 일기(Diario de un testigo de la guerra de África)≫ 역시 아프리카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고 세밀하게 군생활을 묘사해 많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에게 인기와 더불어 부를 안겨 주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고 여행 경험을 책으로 옮긴다. ≪마드리드에서 나폴리까지(De Madrid a Ná́poles)≫(1861)는 작가의 이탈리아 여행기이다. ≪라 알푸하라(La Alpujarra)≫(1873)는 고향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기독교 왕국에 거주하는 개종하지 않은 회교도인 모리스코인의 봉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듬해인 1874년 ≪삼각 모자≫를 출판한다. 이 책은 10년 동안 여러 차례 재판되었을 뿐 아니라 열 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듬해인 1875년에는 자전적이며 도덕적 경향이 강한 소설 ≪추문(El escándalo)≫을 발표한다. 진보 성향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작가는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이 밖에 ≪아기 예수(El niño de la bola)≫(1880), ≪독종 대위(El capitá́n veneno)≫(1881), ≪방탕한 여인(La Pró́diga)≫(1882)을 발표했으며 단편집 ≪국민일화(Historietas nacionales)≫(1881)와 ≪거짓말 같은 이야기(Narraciones inverosí́miles)≫(1882)를 펴냈다.
알라르콘은 정치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급진적인 자유주의에서 온건 보수파로 전향한 이후 자유연합(La Unió́n Liberal)에 당원으로 가입하면서 정부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1875년 국왕 알폰소 12세의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여러 나라의 대사도 역임했다. 1877년 스페인 왕립 학술원의 회원으로 위촉돼 ‘예술에서의 도덕’이라는 주제로 입회 연설을 했다.
1887년경 문예사조로서 스페인의 사실주의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았다. 젊은 시절 함께했던 자유주의파 친구들의 혹평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이후 모든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1891년 7월 19일 마드리드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박효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대학교(La 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 어문학부에서 스페인 근현대 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검은 기억의 어둠≫에 나타난 저항과 혼종성>, <타자의 시선 : 스페인 문학에 투영된 적도기니>, <한국에서의 스페인 문학 번역 현황>, <적도기니의 독재와 도나토 응동고의 탈식민주의적 글쓰기>, <피오 바로하의 회화적 딜레탕티즘>, <식민 전쟁과 서발턴>, <주변에서 중심으로 : 소수민족 문학으로서 바스크 문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 ≪원서발췌 포르투나타와 하신타≫, ≪강요된 대답≫을 출판했고 저서로는 ≪스페인 문학의 이해≫, ≪초급 스페인어 I≫, ≪중급 스페인어≫, ≪지중해의 근대화와 여성≫(공저) 등이 있다.
차례
1.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관하여
2.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에 관하여
3. 주는 만큼 받는다
4. 여인의 겉모습
5. 한 남자의 외모와 내면적인 모습
6. 부부의 다양한 재능
7. 행복의 근원
8. 삼각 모자를 쓴 남자
9. 이랴!
10. 포도나무 위에서
11. 팜플로나의 폭격
12. 디에스모스와 프리미시아스
13. 갈까마귀가 까마귀에 말했다
14. 가르두냐의 조언
15. 이별
16. 불길한 징조의 새
17. 촌장
18. 루카스가 선잠을 잤음을 독자가 알 수 있는 장
19. 나귀의 울음소리
20. 의심과 진실
21. 기사여, 결투 준비!
22. 바빠지는 가르두냐
23. 또다시 귀에 익은 나귀 울음소리
24. 국왕
25. 가르두냐의 별
26. 반격
27. 국왕의 명령이다!
28. 아베 마리아! 12시 반이오!
29. 구름이 걷히고 달의 여신이 나타나다
30. 명문가의 부인
31. 탈리오의 형벌
32. 믿음은 산도 움직이게 한다
33. 그런데 당신은?
34. 시장님 부인도 역시 예쁘지
35. 황후의 명령
36. 에필로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잘난 체하기는! 혹시 제가 시장님을 사랑하게 될 경우를 가정해 보세요. 세상에는 별일이 다 일어나잖아요.”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
“왜요?”
“그럴 경우 당신은 이미 당신이 아니기 때문이지. 내가 알고 있는 현재의 당신이 아니기 때문에 악마가 당신을 데려간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좋아요.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글쎄! 그러면 난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나도 모르겠어.”
“왜 다른 사람이 되나요?” 프라스키타가 위로 쳐다보기 위해 비질을 멈추고 당차게 물었다.
루카스는 깊이 묻혀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마침내 여느 때와는 달리 진지하고 조리 있게 말했다.
“지금은 나 자신만큼이나 당신을 믿는 사람이고 나에게 그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따라서 당신을 믿을 수 없을 때는 내가 죽든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든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겠지. 갓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야. 다른 마음을 갖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할지 몰라. 한바탕 웃고는 당신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겠지. 당신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지도 모르지. 쓸데없이 이런 일에 기분을 잡칠 필요는 없어! 세상의 모든 시장이 당신을 사랑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프라스키타가 아닌가?”
-10장 <포도나무 위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