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시대 예술을 이해하는, 또 다른 시선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과 사회변화의 변증법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로맨스코미디를 보면 재벌인 주인공(그이든 그녀이든)이 우아하게 화랑에서 그림이나 조각 등을 감상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일반 대중(흔히 민중이라 부르는)이 향유하는 미술 또는 예술은 그렇게 ‘우아’하지만은 않다.
예술은 곧 사회의 반영이다. 그래서 예술과 사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우리 시대(저자는 동시대라 표현한다)의 예술은 예술가들의 비약적으로 확장된 사회참여를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예술, 예술가, 사회는 별개의 존재들이 아니다.
이 책은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 즉 사회적 실천이 사회의 변화를 초래하고, 사회 공간의 변화가 다시 미학적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킨다는 변증법적 관점에서 우리시대 예술을 논한다. 필자는 예술가들의 사회참여를 단순히 몇몇 개인 예술가의 위대한 성취가 아니라 사회공간과 예술장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검토한다. 여기서 예술가는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한 고독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공간에서 관철되는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적 행위자가 된다. 즉, 상징투쟁자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논의를 위해 피에르 부르디외와 아놀드 하우저, 에밀 뒤르켐을 호명하고, 1980년대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활동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민중미술(혹은 참여예술)을 되살려낸다.
이 책은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 “상징투쟁 공간의 이론적 탐색”은 예술가의 상징투쟁이 수행되는 객관적 조건을 분석한다. 부르디외의 ‘상징투쟁’ 개념을 이해하고, 부르디외와 하우저를 대비시켜 예술적 생산관계를 분석하는 등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적 생산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탐색이다. 2부 “상징투쟁자로서의 예술가”는 좀 더 구체적인 맥락에서 예술가와 예술운동을 다룬다. 뒤르켐을 통해 본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 ‘전시장’과 ‘현장’을 나뉘었던 민중미술운동, 2000년대 이후의 예술가들의 상징투쟁, 영화와 미술, 감독과 작가 사이를 오가는 임흥순의 작품 분석, 상징투쟁의 관점에 재해석한 스티브 잡스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시대 예술을 이해하는 또 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다.
200자평
우리시대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술가들의 사회참여가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고립된 예술에 머물지 않고,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예술가들이 변화시킨 사회는 또 다시 예술을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의 실천은 곧 투쟁이다. 그들의 투쟁은 상징투쟁이다. 상징투쟁은 상징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이며, 정당한 상징을 통해 사회 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 책은 피에르 부르디외, 아놀드 하우저,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상징투쟁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우리시대 우리 예술적 상황에 적용한다. 예술적 실천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알 수 있다.
지은이
김동일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9년 한국 사회학회 논문상, 2011년 월간미술 대상 학술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피에르 부르디외(2016),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부르디외 사회이론으로 문화읽기(2010)를 출판했다. 예술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개념화하거나 사회학적 개념을 미학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예술은 그저 고상한 교양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정하고 또 부정되어야 하는 분류투쟁의 대상이며, 이 분류투쟁은 단순히 천재들의 비범한 영감의 소산이 아니라 인정과 명예를 독점하고, 이를 사회적 이해로 변환하기 위한 사회적 투쟁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예술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사고하고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평의 과제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부르디외를 중심으로 하우저, 단토, 라투르 등이 서로 교차하고 이탈하는 지점을 가늠하면서 문화사회학, 예술사회학, 사회학사, 현대사회학이론, 문화예술비평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머리말: 이제는 상징투쟁이다
1부 상징투쟁 공간의 이론적 탐색
01 어휘들
사회 공간의 상징적 변용 / 상징폭력과 완곡화 / 아비튀스 / 장 / 투쟁 / 정초된 환상 / 상동성 / 오인 / 상징투쟁의 이중성 / 예술장 / 예술가의 이중적 상징투쟁 / 구별짓기와 예술 / 역전적 전략으로서의 예술적 상징투쟁
02 하우저와 부르디외, 혹은 반영과 굴절 ‘사이’
반영과 굴절 / 하우저의 양식반영론 / 반영론의 한계 / 하우저에서 부르디외로 / 장 분석의 한계 /
부르디외에서 다시 하우저로: 17세기 프랑스 양식 상황에 관한 장 분석 / 예술장으로서의 아카데미 / 당대 장들 사이의 상동성 / ‘굴절된 반영’
03 상징투쟁의 위상학 혹은 미술관의 사회적 존재론
대미술관의 시대 / 예술 생산관계로서의 미술관 / 후기 자본주의 시대와 미술관의 공모 / 장소ᐨ관계의 미학과 동시대 예술 생산력 진보 / 대미술관 체제와 장소ᐨ관계의 예술 / 비엔날레, 혹은 ‘현장을 포섭하기’ /
공공미술: 미술관을 현장으로 확장하기 / 문화기본권 시대의 미술관 / 커뮤니티 큐레이터 제도 도입을 위한 제언
04 상징투쟁의 제도적 주체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대안 공간
문화적 실천의 사회적 효과 / 국립현대미술관: 국가권력과 문화장 사이의 환류점 / 리움(Leeum):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상호 변환 / 대안 공간: 공공미술과 시민사회의 성장 /
문화장 내 투쟁과 사회 공간의 지형들
05 상징투쟁 장소로서의 커뮤니티
슬그머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 <망치질하는 사람>에서 <도롱이집>까지 / 강한 개인의 거룩한 계보 /
전복을 꿈꾸다 / 국가의 소멸에 대항하라 / 전략들 / 공동체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 또 다른 식민화 /
비평으로서의 커뮤니티 아트 / ‘대화’로서의 비평 / 미학적 민족지로서의 비평 / 순화된 지배 혹은 ‘문화적 아편’ /
현장 중심 민중미술의 성과와 커뮤니티 아트 / 나가며
2부 상징투쟁자로서의 예술가
06 의례로서의 예술, 1980년대 민중미술의 재해석
“토템은 그 사회의 깃발이다” / 뒤르켐의 관점에서 종교와 사회 / 의례와 집합표상 / 부르디외와 뒤르켐 사이 /
도덕공동체로서의 민중과 민중미술 / 걸개그림: 민주주의의 집합표상 / 의례로서의 걸개그림 / 걸개그림과 의례공동체
민중미술 이후
07 감성투쟁으로서의 예술, ‘두렁’을 중심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의 의미와 공감장의 재구성 / 감성투쟁과 공감장의 가능성 / 공감장의 복합적 성격 /
전시장 대 현장 / 전시장과 현장의 모순과 상호부정 / 두렁의 성립과 산개 / 두렁의 공감미학, 민속과 전통 /
공동창작과 걸개그림 / 신명, 감성투쟁의 분기점 / 1990년대 이후 두렁 / 감성투쟁자로서의 두렁
08 상징투쟁으로서의 점거, <오아시스 프로젝트>
본질과 상징투쟁 / 의미의 재맥락화 / 점거의 구조 / 맥락의 재의미화 / 공간을 둘러싼 권력 /
예술포장마차 / 예술가 네트워크 / 미디어ᐨ언론 네트워크 / 법 네트워크 /다시 예술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09 임흥순, 혹은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영화
예술가의 사회참여와 표현 가능성 / 새로운 거부와 선택 / 닫힌 미술관에서 열린 극장으로 / 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 /
불화와 어긋남 혹은 경계 넘기 / 우연을 부추기기: <북한산>과 <려행> / 공감의 구조 <위로공단> /
심화 혹은 확장: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환생> /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예술
10 상징투쟁으로서의 창의성, 스티브 잡스의 혁신
창의성이 논의되는 맥락 / 창의성의 심리학 / 카리스마 / 대화적 존재로서의 천재 / 반즈의 이해관계 모델 /
상징투쟁으로서의 창의성 / 상징투쟁자로서의 스티브 잡스 / 반문화적 히피 / 미니멀리즘: 차별화된 가치투쟁의 미학
애플과 애플 마니아 / 결론을 대신하여
참고문헌
미주
책속으로
예술은 상징투쟁이다. 예술은 예술장의 합법적 참여자들인 예술가들 사이의 미학적 투쟁이다. 이 미학적 투쟁이 예술장에 틈입하는 권력과 자본의 힘을 막아 낼 때 장 내에서 생산된 이미지는 상징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게 되고, 그 상징ᐨ예술이 사회 공간 속에서 창출하는 영향력은 더 커진다.
_ “1장 어휘들” 중에서
오늘의 대미술관 체제는 열강의 제국주의 식민 침탈(루브르, 대영제국박물관), 프랑스혁명 이후 민주주의의 대두(오르세, 퐁피두미술관), 그리고 세계대전을 전후로 뉴욕(모마, 구겐하임, 휘트니미술관)과 런던(테이트미술관)이 대자본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이 과정은 주로 ‘오일 온 캔버스(oil on canvas)’를 지배 양식으로 하는 오리지널 단품 오브제 생산방식의 예술 생산력 수준을 전제한다. 오리지널 단품의 수공업적 예술 생산은 예술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사회관계들을 만들어 낸다.
_ “03 상징투쟁의 위상학 혹은 미술관의 사회적 존재론” 중에서
필자는 이 글에서 ‘리움미술관(Leeum Museum)’,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대안 공간’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한국의 동시대 문화장의 제도적 거점이자, 전체 사회 공간과 환류하면서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변화시키는 핵심적 ‘지렛대’로 작용한다. 동시에 이들은 그 자체로 상징투쟁의 주체로서 문화적 실천의 객관적 공간 속에서 이 공간이 생산하는 상징자본을 독점하거나 재편하기 위해 투쟁하고, 그런 문화적 투쟁을 통해 당대 한국 사회와 문화가 움직이는 궤도를 만들고 있다.
_ “04 상징투쟁의 제도적 주체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대안 공간” 중에서
공공미술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들은, 생각보다 텅 비어 있다. 한편에서 공공미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고, 휘황한 수사와 이미지들로 풍성한 증빙물들이 그 예산의 용처에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조금만 더듬어 보면 그 알리바이들은 너무나도 조잡하고 피상적이며 허구적이다.
_ “05 상징투쟁 장소로서의 커뮤니티” 중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은 당대 제도권 예술계에서 통용되던 지배 양식만은 아니었다. 또한 민주화의 물결에 동참하는 젊은 미술가들만의 치기 어린 사회운동도 아니었다. 민중미술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첨예한 의문에 더욱 타당한 방식의 미학적 응답을 제기하고자 했던 미학적 실천이자, 동시에 그런 미학적 실천을 통해 사회를 민주화된 방식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던 상징투쟁이었다.
_ “06 의례로서의 예술, 1980년대 민중미술의 재해석” 중에서
1980년대 두렁의 미학은 “전통적 맥락을 이르면서 오늘날 대중의 생활과 밀착되어 깊고 넓은 공감적(共感的) 미감이 소통될 수 있는 산 그림을 창조하자”는 그들의 선언으로 요약된다. 처음부터 두렁에게 미술은 일종의 감성 행위였고, 미술을 통한 공감은 두렁이 추구하는 감성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 “07 감성투쟁으로서의 예술, ‘두렁’을 중심으로” 중에서
오아시스는 불꽃이었다. 가장 눈부시게 빛났고 미련 없이 사라졌다. 오아시스 동인은 점거를 통해 공간에 얽힌 모순을 낱낱이 밝혔다. 오아시스의 점거는 공간의 문제가 그것을 소유하고 독점하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공간을 박탈당한 사람들 사이의 지배와 착취의 문제임을 보여 주었다. 오아시스 동인의 상징투쟁은 먼저 예술가 공동체를 구축하고, 이를 사회 공간의 네트워크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_ “08 상징투쟁으로서의 점거, <오아시스 프로젝트>” 중에서
임흥순은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한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작업은 좀 더 분명한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시각예술과 영화의 아비튀스를 매우 전략적으로 혼용하면서, 극장/미술관, 예술가/감독, 예술/영화 사이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미학적 경계 허물기는 임흥순 자신의 존재를 예술적으로 각인할 뿐 아니라 사회 공간에서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현해 나가는데 기여하는 예술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09 임흥순, 혹은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영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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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미술관의 전시장은 더 이상 조용한 곳이 아니며, 작품도 작가가 창작해 낸 단순한 미학적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이루어 낸 뜨거운 실천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동일은 부르디외의 상징투쟁을 빌려 한 점의 작품 뒤에 응축되어 있는 예술가와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층위를 표면화시키고 텍스트로 가시화시키고 있다. 특히 현대 예술 작품들과 이들이 전시의 형태를 통해 관람객들을 만나는 공공 미술관들에 대한 분석은 예술과 공공성의 의미와 역할을 풀어낸 것으로 저자의 독창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강수정(국립현대미술관 시니어큐레이터, 미학)
사회학자 김동일은 ‘상징투쟁’이나 ‘상징자본’과 같은 부르디외의 개념을 난해한 이론적 맥락 속에 휘발시키지 않고 예술 생산이 이루어지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촘촘하게 맥락화하고 구체화한다. 미술평론가로서 전시장과 현장의 관계를 면밀히 살펴 역사적으로 의미화하는 이론적 장인 정신의 발로다.
- 최유준(전남대학교 교수, 음악학)
이 책은 고독한 천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뒤집는다. 저자는 예술과 사회의 이분법을 뛰어넘고 예술계의 미학적 실천들을 가로지르며, 외부의 사회적 요구를 내적 논리에 따라 굴절시키는 상징투쟁으로서의 예술을 포착한다. 예술이 어떻게 사회를 활용하고 사회가 어떻게 예술을 전유하는지 생생히 밝히는 이 책을 예술을 감싼 무지의 베일을 벗어나고픈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 지주형(경남대학교 교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