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선조의 불교계는 억불숭유의 분위기 속에서 철저하게 산문기(山門期)로 접어들었다. 14개의 종파는 세종대에 이르러 7개로 통합되고, 다시 명종대에 오면 선교 양종으로 축소되었다. 불교계는 자연스레 종파의 허물을 벗고 산속에 침잠하며 사승(師承) 관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 양성 문제는 조선조 불교계의 영원한 화두이자 생존의 근간이었다.
조선조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양성한 스님으로는 청허휴정을 빼놓을 수 없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한국 조계종단의 70∼80%가 청허휴정의 계보라는 말도 절대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다. 임란을 기점으로 그의 4대, 혹은 8대 제자들은 이후 조선 불교계의 근간이 되어 이끌었다. 그런 점에서 청허휴정은 조선 불교계의 거목이다.
≪선가귀감≫은 청허휴정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썼던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다. 그는 수많은 경전에서 선(禪)에 관련된 약 50여 종의 서적을 선정했고, 다시 그중에서 선 수행에 필요한 중요한 문구를 가려서 강의 노트를 만들었다. 이 교재는 스님이 계셨던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를 중심으로 선학 수행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스님은 직접 그 내용을 제자들에게 강설했고, 제자들은 다시 그 내용을 낱낱이 기록해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다.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불법의 원리와 우주의 근본[一物]을 밝히다.
둘째, 선(禪)과 교(敎)의 논리를 논하다.
셋째, 간화선[看話禪, 조사선(祖師禪)]의 수행[修行, 보살행(菩薩行)]과 방편(方便).
넷째, 수행자의 병통과 경책(警策).
다섯째, 오종(五宗)의 법통과 가풍을 설명. 특히 임제종(臨濟宗)의 종지(宗旨)를 강조하다.
200자평
조선 전기의 승려 청허휴정(淸虛休靜)은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님을 밝혔다. 동시에 간화선(看話禪)을 지침으로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을 천명하면서 제자들에게 수행의 귀감을 삼으라는 뜻에서 이 책을 지었다.
지은이
조선 중기의 승려·승군장(僧軍將). 본관은 완산(完山)이고, 속성은 최(崔)씨이며, 자는 현응(玄應)이고, 호는 청허(淸虛) 또는 서산(西山)이며, 아명은 여신(汝信)으로, 안주(安州) 출생이다. 1534년 진사시에 낙방하자 지리산에 입산,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고 영관(靈觀)의 법을 계승했다. 1552년 승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때 73세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16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이 되어 승병(僧兵)을 모집,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1594년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냈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부도가 서고, 밀양(密陽) 표충사(表忠祠) 등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고, 편저에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운수단(雲水壇)≫, ≪삼가귀감(三家龜鑑)≫, ≪심법요(心法要)≫, ≪설선의(說禪儀)≫ 등이 있다.
옮긴이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한국학 및 불가 한문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 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희대(학진연구교수), 동국대(학진연구교수),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KF객원교수)을 거쳐 현재 중국 북경공업대학 한국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라는 새로운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잡체시 연구≫,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문학사≫, ≪속담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300≫ 등이 있고,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사명당집≫, ≪허정 문집≫, ≪허응당집≫, ≪청허당집≫, ≪무의자 시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집≫, ≪초의시고≫ 등이 있다.
차례
선가귀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가난한 사람이 와 빌거든 (자신의) 분수에 따라 베풀어 주어라. (상대를)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마음[慈悲心]이야말로 참된 베풂[布施]이다.
-95쪽
배움이 도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보고 들은 것을 자랑하고 뽐내며, 한갓 입에 발린 교묘한 말로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마치 뒷간에 단청을 하는 것과 같다.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