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신오토기보코(新御伽婢子)≫는 1683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의 서명(書名)은 그에 앞서 간행된 아사이 료이(淺井了意)의 ≪오토기보코(伽婢子)≫를 의식하여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오토기보코≫는 중국 명나라 때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를 비롯해 지괴(志怪)나 전기(傳奇)를 번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서명 맨 앞에 ‘신(新)’을 붙이고 있는 것에서 이전의 작품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곳곳을 다니며 옛날이야기를 모았고 각종 책자에 있는 기담들도 가져왔다. 한국이나 중국의 이야기를 배제했다는 서문을 보면 일본에 전해 오거나 견문한 고래(古來)의 기이한 이야기를 모았다는 데 의미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책에는 질투나 집착, 변심으로 여자가 뱀이 되는 변신담, 동물을 포함한 각종 요괴 이야기뿐만 아니라 불법의 공덕, 고승의 영험 등 불교적 내용을 다룬 이야기도 상당수 실려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문학사적으로 크게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한 구성, 기술적인 문장, 한자의 다용 등으로 문학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성급하고도 안일하게 대응한 판행 태도나 작자의 역량이 관련하겠거니와, 무엇보다 일본에서 생산된 기이한 소재를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소설적인 발달을 아직 보지 못한 문학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오히려 항간에 떠도는 소재들이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고스란히 담겨 있어 작품의 진실성이 부각된다. 역사적 사건이나 재해, 세시풍속, 신앙 등이 꾸밈없이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귀신의 존재나 기이한 현상에 대한 에도인의 인식과 사고, 윤리관이나 종교관도 함축되어 있다. 이처럼 작품 전반에 일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외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중국 작품 번안 못지않게 매력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1683년에 간행된 일본 에도시대의 민간 설화집이다. 일본 항간의 기이한 이야기 48편을 모았다. 사람이 뱀으로 변하거나 혼령이 깃든 동물이나 요괴가 등장하는 이야기 등 항간에 떠도는 소재를 소박하게 담아 내 당대 일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로써 자연히 귀신의 존재나 기이한 현상에 대한 에도인의 인식과 사고, 윤리관이나 종교관도 엿볼 수 있다. 책에는 17세기 일본 당대의 삽화를 살려 실었고, 조선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천예록≫과 비교 분석한 글을 부록으로 수록했다.
지은이
≪신오토기보코≫ 서문의 마지막에 ‘낙하우거 씀(洛下寓居書)’이라고 서명되어 있다. ‘낙하’는 당시 문화의 중심지인 교토를 말하며 그곳에 우거(寓居)를 둔 이가 썼다는 정도로 해석된다. 그런데 본서의 말미에는 판행 서지로서 에도와 교토의 세 출판사가 기록되어 있는 가운데, 교토의 니시무라 이치로에몬(西村市郞右衛門)이 출판 책임자이며 그 서사(書肆)에서 펴낸 책은 통상적으로 ‘니시무라본(西村本)’으로 불리는데, 본 책도 그 하나다. 니시무라 이치로에몬은 출판사 경영자이자 당시 풍속소설을 일컫는 우키요조시(浮世草子)의 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전기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바가 많고 본서의 간행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낙하우거’가 곧 니시무라 이치로에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거나, 또는 ‘낙하우거’와 같은 사람이 자료를 수집하고 니시무라가 편집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낙하우거’가 니시무라와 동일 인물이라는 확증은 없다.
옮긴이
박연숙은 계명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닛본에이타이구라(日本永代藏)론>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우키요조시괴이소설연구(浮世草子怪異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과 일본의 계모설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 고전문학과 비교문학이다. 현재 계명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저술하고 번역한 책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계모설화 비교 연구≫, ≪한일설화소설비교연구≫, ≪한·일 주보설화 비교 연구≫, ≪일본 옛이야기 모음집 오토기조시≫, ≪우지슈이 이야기≫ 등이 있으며, 일본의 근세문학과 한·일 비교문학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차례
서 문
권1
남자의 자만
요괴녀의 머리채
두꺼비 사령
말하는 촉루
사후의 혈맥
화차(火車)를 묶은 벚나무
회향을 부탁하는 망자
고양이가 먹다 남긴 유녀
권2
살아서의 원한
늙은 거미 요괴
흉가에서의 용맹
여자의 생목[生首]
식인 노파
죽은 미소년
수난으로 변한 독사
머리 자르는 벌레
안총의 고적
수신 엄벌
권3
여자의 몸체가 변한 독사
꿈에 아내를 죽이다
사후의 질투
빗속의 아이
남편을 찢은 두 아내
야밤의 거인 법사
거북을 구한 나그네
들에 떠도는 불덩이
작은 뱀으로 변한 핏방울
권4
선경
단발머리 여우
긴부산 신의 엄벌
거울에 비친 세 얼굴
독버섯
소라고둥
교만의 과실
뱀을 퇴치한 명검
권5
원수를 갚은 유령
인어의 평
침향합
일생을 망친 꿈
성령회(聖靈會)
어두운 밤에 가는 일념
소리에 반응하는 광물체
권6
태신궁(太神宮)의 수호
자업자득의 과보
사체(蛇體)의 왕생
요괴 닭
집을 배회하는 혼령
묘닌전
해설
부록-≪천예록≫과 ≪신오토기보코≫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젊은 승려는 이누마 구교사라는 담림(談林)에 방 하나를 얻어 있었다. 그런데 이 승려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자주 여자의 웃음소리가 크게 났다. 옆방에 거처하는 승려가 이상히 여겨 문틈으로 여러 번 엿보았지만 승려 혼자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아주 비좁은 방이어서 사람 하나 숨길 만한 틈도 없었다. 이렇게 그럭저럭 세 해를 보냈을 즈음, 이 승려의 모친이 아프다는 전갈이 와서 부랴부랴 교토로 올라갔다.
중이 떠난 후 서른 날가량 지나서 이 승려가 묵은 방에서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절 안이 발칵 뒤집혀 그 방에 채운 자물쇠를 뽑아 방 안을 들여다보아도 사람의 자취란 없었다. 작은 감색 종이뭉치에서 그 소리가 났다. 두려워하면서 종이를 펼쳐 보니, 나무 밥통 같은 물건에 한창 젊은 여자의 머리가 들어 있었는데 반달눈썹에 생생히 살아 있는 홍안보다 빼어나고 눈물에 젖은 눈은 근심이 드리운 채 부어 있었다. 이것이 사람들을 보자 부끄러운 듯이 이내 풀이 죽고 아침 햇살을 받아 눈이 녹듯 스르륵 색이 변하더니 곧 말라 버렸다.
– <여자의 생목>(67~68쪽)
“그래 최후는 어떠했느냐? 용케도 잘 처리했다!”
하고는 주인이 칼을 받아 뽑아 보니 목을 자르고 열흘 남짓 지났건만 칼이 칼집에서 술술 빠졌다. 그리고 칼끝에서 피가 칼날을 타고 흐른다 싶더니 곧 한 마리 작은 뱀이 되어 남자의 목을 휘감았다. 남자가 뱀을 잡아서 버리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계속해서 감아 조였다. 본처가 이러한 사정을 듣고 뱀을 향해 갖은 욕설을 퍼부으니, 곤란했던지 이번에는 남자의 목 피부 속으로 들어간다 싶었는데 곧 입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이렇게 밤낮으로 괴롭혀 뱀은 마침내 남자를 죽여 버렸다.
– <작은 뱀으로 변한 핏방울>(136~137쪽)
남자도 이 여자가 건강할 때는 시시덕거리며 사랑을 주고받았으나 어느새 나이도 들고 오래 병상에 누워 있어서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초췌해진 데다가 불쑥 내뱉는 말조차 미워 들은 체 만 체 응대했다. 여자는 끊임없이 얼굴에 핏대를 세워 가면서 두서없이 내뱉었다. 남자는 진저리를 치고 그 집을 나와 다른 곳에서 잤다. 그 후에 여자는 정말로 미쳐 버렸다.
“몹쓸 사람아. 더러운 인간아. 이런 인간하고 왜 인연을 맺었는지.”
긴 세월 동안 잠자리에서 나누던 정담까지 끄집어내어 욕을 해 대니, 가까운 친척들도 귀를 틀어막고 피하고 아랫것들에게도 달라붙어서 병석으로 다가가는 사람조차 없었다. 더욱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므로 주체할 수 없어 집안사람들이 의논을 했다.
“이 사람, 아무래도 오래갈 목숨이 아니니 이대로 놓아두어서는 고생도 심해지고 우사만 당할 터. 죽여서 명복을 빌도록 하세.”
이렇게 합의하고 일고여덟 명이 무리하게 달려들어 여자의 목을 졸라 죽였다. 나약한 여자인 데다 오래 병상에 있어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저항하지 못하고 죽었다. 사람들은 모두 제 손으로 죽였기에 찝찝하면서도 안되었다는 생각에 밖에 있는 남편을 불러들였다.
남편이 돌아와 무심코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죽은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아, 내 남편 소리가 들리네, 돌아왔구나. 어쩐 일로? 오늘이 내가 마지막임을 알고.”
– <사체(蛇體)의 왕생>(240~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