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
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00자평
부조리한 현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공광규 시인의 육필시집. 표제시 <얼굴 반찬>을 비롯한 53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 글씨 한 자 글획 한 획에 시인의 숨결과 영혼이 담겼다.
지은이
공광규는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와 시 창작론인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 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이 있다. 제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자서
소주병
별국
수종사 풍경
얼굴 반찬
아내
애장터
놀란 강
모과 꽃잎 화문석
폭설
우현(雨絃) 환상곡
무량사 한 채
몸관악기
어머니께·1
어머니께·2
겨울 편지
갈대로 서서
누가 저놈의 뒤통수를
움직이는 꽃밭
손안에 돌
욕심
사과나무밭을 지나며
비굴한 개
아름다운 기둥
뿌리의 힘
무명암 가는 길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레만 호
닭
새싹
다시 절벽으로
기계
썩은 말뚝
맛없는 고기
봄병
겨울 산수유 열매
체온
흙집 사리
시골 새벽
청양
제부도에서
향일암 가는 길
사랑
적당한 거리
아름다운 사이
압록 저녁
잃어버린 문장
말똥 한 덩이
법성암
거짓말
미루나무
가을 덕수궁
알혼 섬
아름다운 회항
공광규는
책속으로
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자서(自序)
옛사람이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고
하였는데 내가 그동안 삐뚤빼뚤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글씨로 들키고 말았다.
남은 시간이나마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