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예벤키인은 퉁구스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몽고에도 거주하며, 인종학상으로는 몽골 인종으로,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어계 만주퉁구스어파 퉁구스 북부 그룹으로 분류된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 소수 씨족 단위로 흩어져 생활하기 때문에 거주 지역이나 씨족에 따라 외형, 언어, 생활양식, 종교관 등에서 일정 정도 차이가 나지만 한 민족의 범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공통의 문화 요소도 간직하고 있다. 순록 사육과 사냥이 주업인 예벤키인은 순록의 먹이인 이끼와 사냥감을 찾아 광활하고 거친 시베리아의 타이가와 툰드라를 끊임없이 이동한다.
예벤키족은 세계가 천상세계, 중간세계, 지하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천상세계는 해가 뜨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북극성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데 삶의 환경이 지상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쾌적하다. 지하세계는 해가 지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땅의 갈라진 틈, 폭포, 깊은 연못, 계곡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중간세계는 신화 속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동식물 및 주변 자연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이다. 중간세계는 천상세계, 지하세계와 무척 멀리 떨어져 있으며 중간세계에서 천상세계와 지하세계로 가는 길은 아주 험난하다. 인간은 천상세계와 지하세계의 사람을 볼 수 없으며 인간이 이 세계의 사람들과 접촉하면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이 책에는 동물 이야기, 지하세계 천상세계 이야기,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 무사 이야기, 식인 이야기 등 예벤키인의 설화 64편이 실려 있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엄순천은 러시아어학 박사다. 호남대, 동국대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시베리아 소수민족 언어 및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 ≪잊혀져가는 흔적을 찾아서: 퉁구스족(예벤키족) 씨족명 및 문화 연구≫, 역서로 ≪러시아문서 번역집 7≫, ≪러시아문서 번역집 10≫, ≪러시아문서 번역집 15≫, ≪러시아문서 번역집 20≫, ≪북아시아설화집 3: 나가이바크족, 바시키르족, 쇼르족, 코미족, 텔레우트족≫ 등이 있다.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다.
차례
동물 이야기
뻐꾸기
백조와 까마귀
멧닭과 백조
곰과 붕어
여우와 모캐
여우 훌랸
은혜 갚은 곰
토끼 자매
식테흐 신겔툰
개가 털옷을 입게 된 사연
자작나무에서 태어난 소녀
지하세계, 천상세계 이야기
지하세계에 간 남자 1
지하세계에 간 남자 2
차르치칸
천상세계에 갔다 온 남자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
토끼를 속인 할아버지
소년과 까마귀
백조에게 아들을 빼앗긴 아버지
똥에 빠져 죽은 할아버지 할머니
예벤키 남자와 뱀
치나나이
아카라모와 이불 형제
슬기로운 청년
두 형제
모험을 찾아 떠난 청년
비켈리디운
료하
움나
우차나이
헤누키찬
불화의 언덕
예벤키 사람들이 순록을 키우게 된 이유
무사 이야기
세 형제 무사
어린 무사
우냔니와 코렌도
옙카찬
무춘노이와 뵤르콜툰 형제
식토불
나라불
누르고불
누르가울
초로
소두 소르돈초 솔다니
킬리디나칸
중간세계의 우무스닌댠
차갈라이 차쿨라이
무사 볼론투르
하니 후분과 호호르 보그도
온기닐
우리얀과 몰리나
오란
디긴
어느 노부부의 오만방자한 아들
난쟁이 무사
캅탄디르
만기 됴롬고
식인 이야기
유라키 사람들
식인 출루그디
난드리와 털보
이쵸그디로
식인 청년과 결혼한 아가씨
샤먼, 들꿩 그리고 식인
구리불과 식인 형제
네멜론
해설
옮긴이에 대해서
책속으로
할머니가 음식을 가지고 유르타 안으로 들어갔다.
“영감, 배가 터질 때까지 실컷 먹어 봅시다!”
아닌 게 아니라 참말로 배가 터질 때까지 먹다가 할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먹은 것이 빠져나가면 너무 아깝고 또 배가 고파지면 힘이 드니까 그냥 항문을 꿰맵시다!”
항문을 꿰맸더니 너무 답답했다. 잠시 뒤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멈! 너무 답답해서 안 되겠소! 꿰맨 것을 찢읍시다.”
항문을 찢자마자 할아버지 할머니는 똥에 빠져 죽고 말았다.
−77∼78쪽
아주 오래전 이 땅에는 거인들이 살았다. 땅이 생기면서 호보키가 거인들을 땅으로 데리고 왔던 것이다. 처음에 거인들은 싸우지 않고 잘 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로 미워했고 점점 타락해 갔다. 서로를 미워하는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싸움에서 이긴 자가 진 자를 질근질근 씹어 먹었다. 거인들의 삶이 호보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호보키는 결국 그들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어떤 이들은 절벽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강, 호수, 늪이 되었다. 용감한 이들은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되었다.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