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리스 비극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는 에우리피데스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에 이어지는 ≪오레스테스≫를 통해 아가멤논과 그 가문에 내려진 저주를 다룬다.
감히 신을 시험하려 한 탄탈로스의 오만이 화근이었다. 그로부터 5대에 걸쳐 그 자손들은 근친상간,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는다. 아가멤논은 바로 이 가문에 내려진 저주의 희생자였다. 아가멤논은 딸을 제단에 바치고 트로이 전쟁에 나서면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원한을 산다. 아가멤논이 승전하여 트로이의 공주이자 사제였던 카산드라를 대동해 그리스로 돌아오자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정부와 공모해 아가멤논을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후환이 두려워 아들 오레스테스를 나라 밖으로 추방해 버린다. 오레스테스는 몰래 고국으로 돌아와 누이 엘렉트라와 함께 어머니를 살해한다.
천륜을 저버린 대가는 가혹했다.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환상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어미를 죽인 죄로 그리스 시민들에게도 신에게도 미움받는 오레스테스 곁엔 언제나 곁을 지켜 준 친구이자 사촌 필라데스와 누이 엘렉트라뿐이다. 세 사람은 모친 살해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이 끔찍한 복수를 지시한 것은 아폴론 신이었는데도 말이다.
“포이보스 아폴론 신께서는
너무나 불결하고 잔인한 일을
우리 두 사람에게 시키시고는
결국 우리를 희생자로 삼으셨어요.
우리 손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의 피를
흘리게 하셨으니까요.”
-23쪽, 엘렉트라의 대사 중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오레스테스≫에서 신의 뜻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유 의지로 신의 뜻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정된 운명, 불합리하고 가혹한 운명 가운데서도 인간은 스스로 정의를 찾기 위해 고뇌하고, 고통을 감내한다. 이 작품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를 죽여 정의를 지키고자 한 오레스테스의 고뇌, 복수의 여신에게 쫓기는 한 인간의 고통을 통찰력 있게 그려 냈다. 또한 오레스테스의 죄를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묻기로 하는 결말을 통해 신들의 뜻이 정의로 통하던 구시대가 저물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했다.
200자평
아가멤논 가문에 내려진 저주의 결말. 에우리피데스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에 이어 <오레스테스>에서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에 종막을 예고한다. 아가멤논 가문은 대를 이어 거듭된 근친 살해로 신들의 미움을 샀다. 아가멤논도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딸을 희생 제물로 삼은 과오의 대가로 아내와 그 정부에게 살해되었고, 자식들은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의 피를 손에 묻혔다. 그리고 그 벌로 무자비한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에우리피데스는 오레스테스의 목소리를 빌려 신의 뜻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다고 호소한다. 또한 오레스테스의 죄를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묻기로 하는 결말을 통해 신들의 뜻이 정의로 통하던 구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했다.
지은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원전 534년에 그리스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며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과정에서 서구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극작가다.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부유한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점과 좋은 가문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 정도만 전해진다.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기원전 408년경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머물렀고 2년 뒤에 사망했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바카이>는 이때 집필된 작품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6년부터 계명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현재 한국영미어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에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공저)≫이 있으며, 세 권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 20편을 번역했으며, 소포클레스의 작품 전체와 아이스킬로스의 현존 작품 전체를 번역했다. 최근 ≪길가메시 서사시≫를 번역했고, 현재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제4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레스테스 : 누나도 동참하긴 했지만
어머니 피를 직접 흘리게 한 건
바로 나잖아. 내가 비난하려는 건
아폴론 신이야. 나를 부추겨
저주받을 행동을 하도록 했으니까.
말로는 날 격려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어.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를 어찌할지 물었다면,
아버지는 내 턱을 잡고 간청하셨을 거야.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지 말라고….
어머니를 죽인다고 아버지께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가련한 나만 슬픔의 잔을 마시게 될 테니까.
-33쪽
아폴론 : 신들은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이용했다.
그녀를 이용해 트로이와 그리스가
맞붙어 싸워 서로를 죽이게 했다.
인간의 수가 너무 불어나 고통스러운
대지의 짐을 가볍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