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녀의 커밍아웃 이후, 성소수자의 부모라는 또 한 번의 커밍아웃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던 부모들은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그 경계를 넘는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관계는 모두 다르지만,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세계관이 뒤흔들렸다는 점은 같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성소수자의 부모됨을 세상에 자랑스럽게 드러낸, 또 한 번의 커밍아웃을 한 이들을 만난다. 저자는 커밍아웃을 ‘성소수자 부모’라는 범주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체험으로 보고, 시기·장소·방식·상대·목적 등을 중심으로 그 형태와 과정을 살핀다. 독특한 점은 커밍아웃 체험을 ‘학습 사건’의 시작과 확장으로 조명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성소수자 부모를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뻗어 가게 하는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평범함이라는 게 얼마나 유약해요…” 관습을 넘어 복수의 정상성으로
한국 교육 문화는 가족 문화와 깊은 공조 관계에 있으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교육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녀의 커밍아웃은 그에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평범함, 보편성,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는 자녀의 존재를 새로 배우게 된 이들은 전혀 새로운 부모-되기의 여정에 오른다. 자녀가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봐” 염려하던 이들은 그 평범함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깨닫고, 수없이 많은 차이를 삭제하지 않는 단일한 정상성이란 없음을 깨닫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 교육과 사회가 여태 무엇을 평범하다고 말해 왔는지, 정상과 비정상을 어떻게 구분했는지, 특이성을 어떻게 위계화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환대받는 이에서 환대하는 이로,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은’ 이들이 학습과 변화를 이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공동체다. 회피, 부정, 고독의 시간을 보내다 모임을 찾은 부모들을 반기는 것은 먼저 그 시간을 경험한 이들의 환대다. 환대란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그대로 울리는 환대의 공간에서 때로 긴장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모두의 목소리를 위한 더 나은 조건을 고민한다. 여기서 체화한 감각은 부모들이 발 딛은 일상, 일터, 사회, 세계로 뻗어 나가며 공간의 외연을 넓힌다. 저자는 성소수자부모모임 참여 관찰과 인터뷰로 그 감각에 더 가까이 가려 했다. 내부자의 감각으로 포착하고 그린 장면을 외부자의 감각으로 낯설게 보고 그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짚어 낸다. 그 전환 속에서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경험을 보다 깊게, 넓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퀴어와 그 가족이 벽장문을 열어젖혔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부모들에게 자녀의 커밍아웃은 큰 균열과 도전이다. 삶에 진실해지고자, 정상이란 범주 밖에 자신을 위치 짓기로 한 성소수자들은 자신과 부모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정상이라 말하는가? 이 질문을 받아안고 자신의 삶을 벼리며 새로운 ‘되기’가 이루어진다.
지은이
이은지
서울대학교에서 교육인류학을 공부하며 “성소수자 부모의 커밍아웃 체험과 그 실존적 의미에 관한 교육인류학적 연구”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질적연구 아카데미, The(R)이해’에서 포스트휴머니즘에 관해 공부하고 있으며, 고양이 요루를 입양한 이후 비인간 동물과의 얽힘에서 일어나는 상호 길들임과 몸 구성의 의미를 탐색 중이다.
차례
들어가며
왜 커밍아웃을 하나요?
왜 커밍아웃을 연구하나요?
내가 만난 얼굴들
장별 소개
1부 성소수자 부모의 커밍아웃 체험
01 자녀의 커밍아웃
학습 사건의 시작: 자녀를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
형태: 자녀-청소년-성소수자에 대한 낙인
과정: 자기 부정과 혐오를 넘어서
작용: 언어와 가능세계의 발견
02 부모의 커밍아웃
학습 사건의 확장: 관계적 주체이자 책임적 주체로
형태: 내부와 외부의 순환
과정: 정상 가족이라는 벽장에서 나오기까지
작용: 자신-이웃-사회와의 만남
2부 탈(脫)정상성에서 시작하는 교육적 삶
03 가정에서의 변화
소유에서 존재로
존재론적 문제: “나중”이라는 유예를 넘어서
정상성의 복수화: “평범함은 내가 만드는 것”
04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부모-되기
추상에서 구체로
불온한 얼굴: “바이러스 같은 존재”
구체적인 얼굴: “나 여기 있어요.”
05 교육적 존재-되기
자폐에서 탈존으로
삶의 형식: “살아 온 방식들을 조금씩 걷어 내는 과정”
존재 물음: “왜 살아야 하는지,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3부 커밍아웃 선언: 나ᐨ너ᐨ우리의 가능세계
06 공간: 시적 환대의 교육적 의미
당신의 무지가 아니라 교육의 무지입니다
환대받는 이에서 환대하는 이로
07 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차이의 연기, 결정을 미루는 시간
자기 형성, 나의 관점을 만드는 시간
08 관계: 구체적 만남에서 책임 있는 응답으로
몸으로 만난 세계
너는 네가 되고, 나는 내가 되는 관계
나가며: 커밍아웃 선언을 위하여
참고 문헌
책속으로
누구나 교차적이고 혼종적인 삶의 궤적 속에서 저마다의 소수성을 갖게 된다.
– vi쪽
10대 시절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할 권리가 친권을 가진 부모에게 종속된 것으로 여겨지듯이, 비비안을 비롯한 많은 부모가 자녀가 그러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갖게 된 것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 부모 중에서도 어머니에게 큰 짐이 되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자녀 됨에 대한 일종의 정상 규범이 모성 실천에 대한 정상 규범과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26~27쪽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는 못 볼 꼴을 많이 봤죠. … 정말 물리적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모든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태랑 똑같더라고요. 빠져나갈 수도 없고 꽉 막혀 있는 느낌? 그때는 정말로 힘들단 느낌이 들었어요. 출구가 없는 삶을 사는 건 이렇게 힘들겠구나.”
– 68~69쪽
‘되기’는 보이지 않던 이질적 존재들과 밀접하게 엉키는 ‘결연’을 통해 각자 또 함께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횡단적 연대 속에서 사회가 정상성을 기준으로 구분해 놓은 다수자와 소수자의 수직적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다수성과 소수성의 이분화가 아닌 독특성의 복수화에 중점을 둠으로써 서로의 독특성이 명확해진다. 되기의 공생 과정을 통해 다수자와 소수자를 구분하는 정상 규범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 86쪽
“평범함이라는 게 얼마나 유약해요. 뭐만 엇나가면 바로 깨지는 게 평범함이니까요. 평범함을 얻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끼신다면, 그 평범함이라는 것이 참 깨지기 쉬운 거라는 것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 99쪽
자녀를 비롯하여 여러 성소수자들과 구체적으로 만나며 부모들은 점차 소수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몸틀’이 되어 갔다. 나비는 이를 “그냥 쳐다보는데 내 마음속에서 걔네의 존재가 왈칵 다가온 것”이라고 표현했다. 성소수자라는 가려져 있던 존재를 자신의 감각 체계를 통해 체험한 것이다.
– 107쪽
“그 얼굴을 보는데 눈빛이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말로 설명하긴 어렵고…. 내가 막 걔네들한테 ‘그래. 너 거기 있는지 알아. 너 누군지 알아’ 했던 거? 그게 아마 살면서 존재감이 가장 크게 다가온 경험이었어요.”
– 116쪽
인간은 문화적 질서에 길들여진 존재기도 하지만, 이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 가는 교육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질서의 패턴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은 부모들이 인간으로서 문화와 맺어 왔던 관계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기도 했다.
– 126쪽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각오하고도 계속해서 타인, 세계와 만나며 “자신을 변형하고 정화하며 변모”하려는 행위는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서 나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 158~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