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울치인은 러시아 극동의 아무르강 유역의 소수민족으로 3000명 정도가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 중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석기 시대에 아무르강 유역에 거주했던 토착민은 기원전 3000년경 북쪽과 서쪽으로부터 온 퉁구스, 튀르크, 몽골계 민족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오랫동안 나나이, 네기달, 예벤키, 아이누 등, 여러 민족과 섞이면서 현재 울치인의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됐다. 다양한 민족 간 교류와 접촉의 역사는 울치인의 생활 양식, 문화, 언어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19세기 중반 아무르 지역이 러시아에 병합되면서 울치인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아직까지 결혼이나 가족 제도, 종교 의식에는 옛 전통이 남아 있다.
울치인은 자연물의 정령과 하늘의 신이 사는 천상 세계의 존재를 믿고 숭배했다. 사냥할 때는 반드시 땅의 주인 정령에게 사냥을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고, 물의 주인 정령, 불의 주인 정령에게 다양한 음식과 풀 등의 제물을 바쳐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또한 하늘의 신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고, 닭이나 돼지를 제물로 바쳐 풍요를 빌었다.
이 책은 울치인 설화 13편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혹독한 환경과 생존을 위협하는 수많은 존재와 투쟁하며 살아온 울치인의 치열한 삶과, 부정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던 낙관적 미래관을 엿볼 수 있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이경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비노그라도프대학원에서 의미통사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어휘ᐨ통사 층위에 나타나는 언어문화적 변이>, <담화연결어의 의미와 기능>, <언어적 세계상에서의 놀이와 도박> 등이 있으며, 저역서로 ≪도박하는 인간≫(공저),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공역), ≪북아시아 설화집 5(알타이족)≫, ≪셀쿠프인 이야기≫, ≪토팔라르인 이야기≫, ≪시베리아 타타르인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켐테르게 용사
용사와 사악한 정령
가난한 노인과 부자 노인
처녀와 거인들
두 자매
바투리
개구리와 쥐
개구리 아이
청년과 호랑이
소년과 사악한 여우 정령
거지가 왕이 된 이야기
첸투세
호심부 할아버지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담비와 다람쥐, 족제비 들도 왔다. 동물들은 노인을 집으로 끌고 갔다. 이빨로 노인의 다리를 물고 닥치는 대로 물고 끌고 갔다. 여우들과 족제비, 다른 동물들이 모두 힘을 합해 노인을 끌어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토끼, 담비, 다람쥐 들이 모두 집으로 들어왔다. 할머니가 동물들을 보고 말했다.
“기다려! 가지 마! 고마워라. 너희가 우리 영감을 구했어. 우리 영감을 끌고 오다니.”
할머니는 집에 있는 창문이랑 굴뚝을 모두 닫아서 동물들이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제 모두 끝냈어요.”
할머니가 말을 마치자마자 노인이 벌떡 일어나서 여우들과 다른 짐승들을 다 죽였다. 집 안에 있는 짐승들은 아무 데로도 나갈 수가 없었다. 노인은 이제 아주 부자가 되었다. 창고에는 물고기와 짐승 가죽이 가득했다.
-<가난한 노인과 부자 노인>, 47~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