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깊이 병든 데카당스와 감추어진 가능성의 인물, 원매
일본의 중국 문학 연구자인 이나미 리쓰코(井波律子)는 ≪중국의 은자들≫에서 그에 대해 “깊이 병든 데카당스와 감추어진 가능성에 대한 과감한 도전, 평생 이 양극단을 오간 원매는 중국의 수많은 은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스케일이 크고 일종의 요기를 발산하는 괴물 은자”라고 평가했다. 그녀의 평을 통해서 우리는 원매라는 인간이 가진 이채로움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녀는 두 가지를 축으로 원매의 인생을 갈무리하고 있다. 우선 깊이 병든 데카당스는 원매가 호화로운 원림, 곧 수원(隨園)에서 거듭 만찬을 열어 강남 명사들과 교류하고 수많은 첩을 거느리며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 그리고 전통 사회에서 서른 명이 넘는 여제자를 두었던 것과 여색뿐만 아니라 남색 또한 즐기며 화려한 애정 행각을 벌였던 그의 인생을 함축하는 것일 테다. 사실 이나미 리쓰코는 양극단의 또 다른 축으로 감추어진 가능성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거론하지만, 깊이 병든 데카당스에는 어느 때건 또 다른 탈주를 감행할 무궁한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원매의 당시 전통에 대한 부정, 사회적 금기에 대한 거부의 정서는 그런 점에서 그의 과감한 도전이면서 동시에 데카당스로 간주될 수 있는, 역시 원매를 구성하는 질료들이다. 18세기 중국 사회에서 원매는 어느 쪽으로건 쉽게 계열화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원매의 다양한 글들을 두루 접할 수 있는 진정한 선집
옮긴이는 자신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글들, 원매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주된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다. 옮긴이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글은 ‘사랑과 그리움…’ 편에 담긴 것들이다.
원매의 산문은 2009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국내에서도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길잡이의 역할도 떠맡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글들,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된 글들도 함께 선정했다. 더불어 적은 분량의 책이나마 원매의 글을 맛보는 데 손색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글들을 소개하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200자평
2009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원매의 산문집을 개정 보완했다. 산문 한 편 안에서는 생략되는 내용 없이 전 편의 내용을 담고, 당시 소개하지 못했던 작품을 추가했다. 청나라 중기의 문인 원매는 조용히 은신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이 좋아했던 것을 펼치고 살았던 이채로움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책은 원매를 읽어 가는 가장 중요한 밑절미인 ‘감정’을 움직이는 산문들과 원매의 취미나 학술 연구, 그리고 삶의 지향점들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산문들을 선별해 원매의 다양한 글을 맛보는 데 손색이 없도록 구성했다. 원매의 자유로운 사상을 통해 지금까지의 중국 고전에서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원매는 청조(淸朝) 강희(康熙) 55년(1716) 3월에 절강성(浙江省) 전당현(錢塘縣, 지금의 항저우) 동원(東園) 대수항(大樹巷)에서 태어나 옹정(雍正)·건륭(乾隆) 연간을 살며 활동하다가 가경(嘉慶) 2년, 양력 1798년 1월 3일에 소창산의 수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는 자(字)가 자재(子才), 호(號)가 간재(簡齋) 또는 존재(存齋)인데, 주로 지금의 난징(南京)시에 해당하는 강녕현(江寧縣) 소창산(小倉山)의 수원(隨園)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원선생(隨園先生)으로 불리기도 했고 만년에는 스스로 호를 창산거사(倉山居士)·수원노인(隨園老人)·창산수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원매는 일생 동안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그의 창작이라고 확실하게 증명된 저작으로 총 10종이 있다. ≪소창산방시집(小倉山房詩集)≫ 39권, ≪소창산방문집(小倉山房文集)≫ 35권, ≪소창산방외집(小倉山房外集)≫ 8권, ≪원태사고(袁太史稿)≫ 1권, ≪소창산방척독(小倉山房尺牘)≫ 10권, ≪독외여언(牘外餘言)≫, ≪자불어(子不語)≫ 34권, ≪수원시화(隨園詩話)≫ 26권, ≪수원수필(隨園隨筆)≫ 28권, ≪수원식단(隨園食單)≫ 1권 등이다.
이 중 ≪소창산방시집≫ 39권은 건륭 원년 21세 때부터 가경 2년 82세 때까지 지은 고금체시(古今體詩) 도합 4484수를 수록했다.
옮긴이
백광준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중국 난징대학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근래에는 근대 시기 동서 교류, 표상의 맥락, 중국 명·청 시기 문인의 삶과 담론의 문제 등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경계에서 중국을 읽다≫(공저), 번역서로 ≪원매 산문집≫이 있고, 논문으로 <19세기 초 서양 근대 지식의 중국 전파−‘Society for the Diffusion of Useful Knowledge in China’를 중심으로>, <현대 중국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소비와 해석−문화 표상으로서 ≪청명상하도≫ 읽기>, <후기 동성파(後期桐城派)의 지리 관념(地理觀念)―오여륜(吳汝綸)과 장유조(張裕釗)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차례
개정판에 부쳐
삶의 지향과 사유
정진방에게 답하며(答魚門)
‘상례혹문’을 읽고(讀喪禮或問)
양조관에게 답하며(答楊笠湖)
청렴에 관하여(淸說)
검소함을 경계하며(儉戒)
‘복성서’를 읽고(書復性書後)
산인 아무개에게 답하는 글(答某山人書)
모란에 관하여(牧丹說)
지팡이에 대한 단상(杖銘)
관목 지팡이에 대한 단상(灌木杖銘)
사랑과 그리움…
조카 한집옥을 애도하며(韓甥哀詞)
누이를 애도하며(祭妹文)
다시 술양을 방문하여 그린 그림에 부치는 글(重到沭陽圖記)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先妣章太孺人行狀)
돌아가신 고모의 묘지명(亡姑沈君夫人墓志銘)
여동생 소문의 전기(女弟素文傳)
황촌의 벽에 쓰인 시에 관한 글(篁村題壁記)
동이수 시집의 서문(童二樹詩序)
원매의 애호 : 원림, 책, 음식
수원에 관한 글(隨園記)
수원에 관한 후속 글(隨園後記)
소호헌에 부치는 글(所好軒記)
황 군이 책을 빌리는 데 부침(黃生借書說)
수원식단 서문(隨園食單序)
수원식단·본분을 명심해야(隨園食單·本分須知)
수원식단·억지로 권하는 것을 경계함(隨園食單·戒强讓)
수원식단·화변월병(隨園食單·花邊月餅)
수원식단·밥(隨園食單·飯)
요리사 왕소여의 전기(廚者王小餘傳)
관가의 풍경 : 정치, 재판, 군사
도 관찰사가 사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에 답하는 글(答陶觀察問乞病書)
도 관찰사에게 다시 답하는 글(再答陶觀察書)
강소안찰사 전여사 선생에게 답하며(復江蘇臬使錢璵沙先生)
작은 일화(稗事)
노지유에 관하여(書魯亮儕)
마성의 사건 전말(書麻城獄)
말 화상의 일화(書馬僧)
반형산의 일화(書潘荊山)
향산 동지 팽군의 전기(香山同知彭君小傳)
원매의 여행
무자 중추의 유람기(戊子中秋記遊)
도중에 비를 만난 여산 황애 유람기(遊廬山黃崖遇雨記)
선도봉 유람기(遊仙都峯記)
절서의 세 폭포 유람기(浙西三瀑布記)
황산 유람기(游黃山記)
단하산 유람기(遊丹霞記)
계림의 여러 산 유람기(游桂林諸山記)
단주 보월대 유람기(遊端州寶月臺記)
협강사 비천정 유람기(峽江寺飛泉亭記)
무이산 유람기(游武夷山記)
여러 인물들
범산자의 전기(帆山子傳)
남경 학관 두 명의 전기(江寧兩校官傳)
왕학암의 일화(書汪壑庵)
포의원 선생의 전기(鮑竹溪先生傳)
범서병의 묘지명(範西屛墓志銘)
서선의 묘지명(徐君星標墓誌銘)
서영태 선생의 전기(徐靈胎先生傳)
설수어에게 띄우는 글(與薛壽魚書)
난쟁이의 전기(短人傳)
효자 이유황의 전기(李孝子傳)
시, 수필, 소설에 관하여
홍양길(洪亮吉)과 시를 논한 글(與稚存論詩書)
심덕잠의 시론에 답하여(答沈大宗伯論詩書)
하남원의 시집 서문(何南園詩序)
고 문량공의 미화당시집 서문(高文良公味和堂詩序)
시란타의 시론에 답하는 글(答施蘭垞論詩書)
시란타의 시론에 답하는 두 번째 글(答蘭垞第二書)
정진방의 시론에 답하여(答蕺園論詩書)
수원수필서(隨園隨筆序)
자불어서(子不語序)
학술에 관하여
윤사촌에게 답하는 글(答尹似村書)
혜동에게 답하는 글(答惠定宇書)
혜동에게 답하는 두 번째 글(答定宇第二書)
정진방에게(與程蕺園書)
황생에게 주는 글(贈黃生書)
황생에게 다시 답하는 글(再答黃生)
손보지 수재에게 띄우는 두 번째 글(與孫俌之秀才第二書)
원혜양 효렴에게 답하는 글(答袁蕙纕孝廉書)
호물애의 시문에 부친 글(胡勿厓時文序)
모곤(茅坤)의 팔가문선을 읽고(書茅氏八家文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배와 수레를 보면, 현자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하고, 아래 등급의 사람은 “놀러 다닐 수 있겠구나” 하고 말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타고 도적질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한다. 아름다운 이를 보면, 현자는 “짝을 이뤄주어야겠구나” 하고 말하고, 아래 등급의 사람은 “유혹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해야겠구나” 하고 말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희롱하고 또 팔아넘겨서 잇속을 차려야지” 하고 말한다.
-39쪽
지금 사람들은 사리에 밝기를 추구하지 않고 우선 청렴하기만을 추구합니다. 사리에 밝지 않고 청렴한 것은 사리에 밝지 않고 탐욕스러운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리에 밝지 않고 탐욕스러운 경우, 탐욕스러움은 어리석음을 치료하는 약이어서 가난한 사람은 죽어도 부유한 사람은 삽니다. 사리에 밝지 않고 청렴하면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모두 부당한 판결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사리에 밝기를 추구하지 않고 우선 부지런하기만을 추구합니다. 사리에 밝지 않고 부지런한 것은 사리에 밝지 않고 게으른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리에 밝지 않고 게으른 경우, 게으름은 과오를 줄이는 한 요인이어서 엉터리 판결이 한 달에 한두 건에 불과합니다. 사리에 밝지 않고 부지런하면 경솔히 결정한 엉터리 판결이 하루에도 장차 수천 건일 것입니다.
-145쪽
장우촌(張雨村)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메스꺼워하여 장우촌은 그 아들을 내다버리려고 했다. 선생은 찹쌀을 가루로 만들고 반죽해 아이의 몸에 입혀서 비단으로 싸고는 흙 속에 묻게 했다. 머리를 밖으로 내게 하여 우유를 먹이니, 이틀 밤낮이 지나자 피부가 생겨났다.
-268쪽
노쇠한 나이의 심사는 남을 위해 돈을 맡고 있는 손님과 비슷하여 섣달 매화가 시드는 세밑에도 불안해하며 자기 모습을 살피고 종일토록 장부를 정리하여 뒷사람에게 넘겨줄 생각이 굴뚝같다네. 내게 몇 년을 허락해 준다면 분명 더 진전이 없을 리 없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마는, 주인이 이 손님을 붙잡을지 여부를 확신하기 어렵군. 웃자는 소리네.
-3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