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열린사회를 향한 희구
앙리 베르그송은 닫힌사회와 열린사회를 대립시킨다. 닫힌사회는 본능과 지성에 뿌리를 둔 집단 이기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자신의 보존과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개미나 꿀벌과 같은 막시류(膜翅類) 곤충들의 사회에서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닫힌도덕과 정적 종교는 지성의 과도한 작용에 대한 자연의 방어적 반작용으로서 나타나며 닫힌사회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적인 집단 이기심을 넘어서 열린사회로 나아가려면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는 도약이 요구된다. 이는 예수나 성인들이 몸소 실천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모두가 구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도덕적 영웅들의 사랑에 대한 정서적 감동과 그들을 모방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자발적인 실천은 배타적 애국심을 보편적 인류애로 바꾼다. 열린도덕과 동적 종교를 바탕으로 한 베르그송의 열린사회는 타자에 대한 개방과 포용을 허용하는, 인류 전체로 열린사회를 의미한다.
새로운 사유의 물꼬를 튼 철학자, 베르그송
근대적 사유가 기계적 결정론과 추상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베르그송은 창조적인 지속과 역동적인 생성의 존재론으로, 구체적인 삶의 생동하는 실재에 대한 직관으로 사유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베르그송은 창조적인 생성과 변화를 근원적 실재로 보는 역동적 형이상학을 제시해 철학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또 생명 일반의 의미가 물질의 필연을 극복하는 자유의 확장에 있음을 논증함으로써 삶에 대한 진정한 긍정을 가능하게 했다.
베르그송은 73세에 류머티즘의 고통 속에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썼다. 유대인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의 광폭함을 직접 겪었던 베르그송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인간 사회의 미래를 다시 발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도덕과 종교의 발생 원천에 대한 노철학자의 탐구는 무엇보다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뜨거운 열정과 인간 사회의 진행 방향에 대한 냉철한 비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베르그송은 인류의 미래가 근시안적인 지성의 눈을 생명 일반과 인류 전체의 근원에 대한 직관으로 돌려 전체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때 비로소 개방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책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전집(Oeuvres)≫(édition du centenaire, Paris, PUF, 1970)에 실린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을 원전으로 삼아 약 30%에 달하는 분량을 발췌, 번역했다.
200자평
앙리 베르그송의 마지막 주저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은 도덕 및 종교의 의미와 그 발생적 원천에 대한 분석이자 인간 사회에 대한 생물학적·인류학적·형이상학적 고찰이다. 창조적인 생성과 변화를 근원적 실재로 본 베르그송의 역동적 형이상학이 잘 드러나 있다. 세계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과 타자에 대한 환대의 문화보다는 오히려 전쟁과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깊이 숙고하며 읽어 보아야 할 훌륭한 고전이다.
지은이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1859년 10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든 과목에 뛰어난 성적을 보이며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 했고, 특히 고교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그의 문제 풀이는 이듬해 수학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프랑스 엘리트 집합소인 파리 고등사범학교(ENS)에 입학해서는 프랑스 정신주의, 스펜서의 진화론 철학, 과학철학 등에 관심을 갖고 몰두했다. 22세에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30세에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앙제, 클레르몽페랑, 앙리4세 고등학교 교수를 거쳐, 콜레주 드 프랑스의 철학 교수,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국제연맹 국제협력위원회(유네스코 전신) 의장을 지내고, 최고의 레지옹 도뇌르 명예 훈장과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면서,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폐렴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살아생전에 자신의 철학으로 최고의 명예를 누린 극히 드문 철학자였다.
생전에 출간한 저서로는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이자 그의 철학의 요체인 지속 이론을 정초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1889), 기억의 지속을 통해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규명한 ≪물질과 기억≫(1896), 생명의 약동에 의한 창조적 생성의 우주를 그려 보인 ≪창조적 진화≫(1907), 인류의 미래에 대한 준엄한 통찰과 열린사회로의 도약 가능성을 역설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 등 핵심 사상을 보여 주는 4대 주저가 있다. 가는 곳마다 관중의 열광을 몰고 다녔던 그의 강연과 주옥같은 논문들을 모아 놓은 ≪정신적 에너지≫(1919)와 ≪사유와 운동≫(1934), 놀라운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철학적 희극론 ≪웃음≫(1900)이 있다. 후학들의 열정으로 사후에 출간된 저서로는 ≪잡문집≫(1972), ≪강의록 I∼IV≫(1990∼2000), ≪서간집≫(2002) 등이 있다.
옮긴이
김재희는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Bergson의 지속의 형이상학>(석사, 1995)과 <베르그손의 무의식 개념에 대한 연구>(박사, 2005)로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으로는 <베르그송의 이미지 개념>, <베르그손의 기억 개념과 시간의 역설에 대하여>, <무의식과 시간: 베르그손의 순수 과거 개념에 대한 소론>, <베르그손에서 잠재성과 물질의 관계>, <탈경계의 사유: 카프카를 통해 본 해체와 탈주의 철학>, <보르헤스 작품에 나타난 시간의 철학적 의미>, <추상: 비가시적인 삶의 파토스−미셸 앙리의 칸딘스키론>, <외국인, 새로운 정치적 대상: 아감벤과 데리다를 중심으로>, <법 앞에 선 주체: 라깡과 데리다를 중심으로>, <물질과 생성: 질베르 시몽동의 개체화론을 중심으로>, <베르그손에서 창조적 정서와 열린사회>, <들뢰즈의 표현적 유물론> 등이 있다. 저서로는 ≪물질과 기억: 반복과 차이의 운동≫(살림, 2008),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그린비, 2010)이 있고, 번역서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한나래, 1998), 자크 데리다와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에코그라피≫(공역, 민음사, 2002), 질베르 시몽동의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그린비, 2011)가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대진대학교 학술연구교수를 지냈으며, 성균관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등에 출강했다. 현재 을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베르그송과 후기 구조주의 중심의 현대 프랑스 철학이며, 현재 베르그송으로부터 질베르 시몽동과 질 들뢰즈로 이어지는 표현적 유물론의 자연철학, 그리고 테크놀로지 문화의 철학적 의미, 문학과 철학의 관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차례
제1장 도덕적 의무
사회 속의 개인
의무에 대한 잘못된 이해
의무 전체와 사회의 지위
조국애와 인류애의 본성 차이
사회적 도덕과 인간적 도덕
닫힌 영혼과 열린 영혼
감동과 창조
억압의 도덕과 열망의 도덕
도덕과 의무의 두 기원
지성 이하의 것과 지성 이상의 것
정의의 예
생명의 두 표현 : 사회의 억압과 사랑의 약동
도덕교육: 버릇 들이기와 신비체험의 효과
제2장 정적인 종교
꾸며 내기 기능과 종교
생명의 약동이 갖는 의미
지성의 이기주의에 대한 방어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방어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방어
우연의 의미
정적 종교의 일반적 기능
제3장 동적인 종교
종교의 두 의미
신비가의 존재 의미
신비주의와 직관적 경험
창조와 사랑
영혼의 사후 존속에 대하여
제4장 마지막 고찰 : 기계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
닫힌사회와 열린사회
전쟁 본능에 대하여
사회의 진화 : ‘이분법’과 ‘이중적 열광’
기계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그 관념에다가 자연은 죽음 이후의 삶의 연속성에 대한 이미지를 대립시킨다. 죽음에 대한 관념을 정립했던 지성의 영역에다가 자연이 심어 놓은 이 이미지는 사태를 다시 정돈한다. 이미지에 의한 관념의 중립화는 따라서 미끄러지는 것을 붙드는 자연의 균형 감각 자체를 표현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원에서 종교를 특징짓는 것처럼 보였던 이미지들과 관념들의 매우 특수한 유희 앞에 다시 서게 된다. 두 번째 관점에서 고찰해 보면, 종교는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지성의 표상에 대항하는 자연의 방어적인 반작용이다. (77∼78쪽)
닫힌사회는 다른 인간들에게는 무관심한 채 구성원들끼리 결속되어 있는 사회이고, 공격하거나 방어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으면서 전투태세를 강요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손에서 만들어져 나왔을 때의 인간 사회다. 개미가 개미 집단을 위해 만들어졌듯이, 인간도 사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이 유비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 막시류의 공동체는 동물 진화의 두 주요 노선 중 하나의 끝에 있고, 인간 사회는 다른 노선의 끝에 있음을, 따라서 두 사회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의 사회는 천편일률적인 형태를 갖는 반면, 후자의 사회는 다양하다. 전자는 본능에 사로잡혀 있고, 후자는 지성에 사로잡혀 있다. (114쪽)
따라서 인류의 기구는 그의 신체의 연장이다. 본질적으로 제작적인 지성을 우리에게 부여한 자연은 이렇게 우리를 위한 어떤 확장을 예비했다. 그러나 석유, 석탄, ‘수력발전’으로 움직이며 수만 년 동안 축적했던 잠재적 에너지를 운동으로 전환하는 기계들은, 우리 종의 구조가 갖는 구도에선 전혀 예견되지 않았을 정도로 그 차원과 그 힘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광범위한 외연과 너무나 무시무시한 힘을 우리 유기체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 그러나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그 신체 안에서, 영혼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제는 그 신체를 채우기에도 너무나 작아졌고, 그 신체를 이끌고 가기에도 너무나 약해져 버렸다. 이로부터 신체와 영혼 사이에 텅 빈 간격이 생기게 된다. (140∼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