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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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예술 비평가, 디드로
디드로는 1759년부터 1781년까지 미술 비평 ≪살롱(Salon)≫을 집필해 ‘예술 비평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예술 비평 장르를 문학에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1759년, 디드로의 막역한 친구 프리드리히 멜히오르 그림(Friedrich Melchior Grimm)은 디드로에게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문학통신≫에 예술 비평을 게재해 보라고 제안한다. 17세기 중반, 프랑스 회화·조각 아카데미는 매년 또는 격년으로 왕궁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전하면서 비게 된 루브르 궁전의 응접실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디드로는 친구의 간청으로 여태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화가들의 말을 번역하는 일종의 실험을 하게 된다.
그림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문학통신≫은 국외의 독자들, 즉 작센 고타의 공작부인이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등 유럽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보는 문예지였다. 다시 말해, 미술 작품에 대한 디드로의 묘사와 비평은 파리의 루브르 궁전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회를 직접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디드로는 글로써 독자에게 미술 작품을 보여 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작품 전체 모습을 독자의 눈앞에 펼치기 위해 일화, 여담, 희곡, 콩트, 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림을 묘사한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성실한 관찰자
디드로는 그뢰즈의 그림에서 부르주아적 비장미를 발견하고, 샤르댕에게서는 사실성뿐만 아니라 조잡한 대상들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탐구하게 된다. 풍경화가들의 작품들에서는 폐허와 무덤들의 우아함, 하늘, 나무들, 바다와 맑은 물의 낭만주의가 빛을 발한다. 베르네는 대기, 빛, 안개 낀 하늘, 달빛, 아침, 저녁의 어스름한 빛을 보여 준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위베르 로베르는 디드로로 하여금 폐허에서조차 시적 서정을 느끼고, 문학 이론을 확립하게 한다.
디드로의 비평은 편협한 감식안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비평은 풍부한 경험과 심오한 연구를 바탕으로 삼았고, 감수성과 천재성에다 예언력까지 갖추었다. 이처럼 디드로는 비평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거쳐서 예술로 접근해 갔다. 근·현대 비평의 대표 인물들인 샤토브리앙과 보들레르, 졸라, 공쿠르 형제, 아폴리네르, 바레스, 프루스트 이전에 이미 디드로는 예술 비평의 형태를 잡았던 것이다. 공쿠르 형제는 디드로를 두고 한 세기의 예술을 가로질러 그의 영혼이 나타난다고 했다.
200자평
계몽주의 사상가로 잘 알려진 디드로는 ≪문학통신≫이라는 문예지를 통해서 미술 비평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당시 루브르 궁전의 살롱에서는 매년 미술 전시회가 열렸는데, 디드로는 여기 출품된 작품들에 대해 글을 썼고, 이것이 전시회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작품과 화가, 미술계의 일화들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 디드로는 화려한 문체로 도판 없이도 그림을 생생히 전달한다.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어 미술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도 에세이처럼 쉽게 읽힌다.
지은이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1713년에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수도인 랑그르에서 태어나 1784년에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철학자로 ≪백과전서≫을 편찬 및 출판했고 ≪회의적인 사람의 산보≫, ≪맹인에 관한 서한≫, ≪벙어리와 귀머거리에 관한 편지≫, ≪자연해석론≫ 등의 철학적 저서를 집필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연극으로 향한다. 희곡인 ≪사생아≫, ≪도르발과의 대담≫, ≪가장≫, 연극 이론서인 ≪극시론≫ 등을 집필했는데, 이는 디드로가 희곡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 이론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그는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게 된다.
소시민 가정을 극의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 대한 디드로의 관심은 확대되어 소설 장르로 이어진다. 그가 그림의 제안으로 처음 시도한 예술 비평 ≪살롱≫을 집필하게 되는 1759년 무렵, 소설 ≪수녀≫의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볼 때, ≪살롱≫은 소설에 대한 그의 관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즉, 두 장르가 함께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운명론자 자크≫, ≪라모의 조카≫ 등을 통해 19세기 소설의 시대를 예견하고 그 문을 연 선구자다.
1775년에는 예카테리나 2세가 의뢰한 ≪러시아를 위한 대학 계획≫을 작성했으며, 여제는 디드로에게서 11월 29일 ≪러시아 연구론≫을, 다음해 1월 20일 ≪대학 계획서≫를 전달받는다. 디드로는 자신의 도서와 수사본을 러시아 왕립 도서관에 팔았다.
디드로는 말년에 파리 근처 세브르 등에서 많은 시간을 집필하며 보냈다. 1781년에는 고향 랑그르의 시청에 우동(Jean Antoine Houdon)이 조각한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그해 스코틀랜드 고고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그는 파리의 리슐리외 거리에 있는 브종 저택으로 이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디드로의 미망인에게 1000루블을 하사하기도 했다. 1785년, 디드로의 유일한 자식인 마담 드방될은 예카테리나 2세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소장했던 수사본을 모두 헌납하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에 따라 11월 5일 디드로의 도서와 수사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전달된다.
옮긴이
백찬욱은 영남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프랑스 파리3대학교 소르본 누벨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유럽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노인의 문화적 정체성≫(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공역),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한영 대조)≫ 등이 있다.
차례
1. 부셰
2. 샤르댕
3. 라투르
4. 그뢰즈
5. 베르네
6. 카사노바
7. 루테르부르
8. 로베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제가 화폭에 시선을 고정하도록, 대리석 상(像) 주위로 향하도록 한 것은 당신의 노력입니다. 저는 제게로 와서 스며드는 인상에 시간을 내주었을 뿐입니다. 제 영혼이 그 인상에 반응하도록 마음을 열었으며, 그 반응이 제 영혼 안으로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을 뿐입니다. (…) 저는 데생의 미묘함, 자연 그대로의 진실을 이해했습니다. 빛과 음영의 마술을 알게 되었습니다. 색을 알았습니다. 피부의 감각을 터득했습니다. 혼자서 제가 보고 들은 것을 명상했습니다. 또 제 입에는 그토록 친밀하지만, 정신 속에서는 너무나 희미했던 ‘통일, 다양성, 대조, 대칭, 질서, 조화, 특징, 표현’이라는 이 예술 용어들이 이제 분명하게 뿌리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