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페브르의 질문
프랑수아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의 저자로 잘 알려진 16세기의 작가다. 강한 개성으로 생존 시에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그는 ‘무신론자와 자유사상가의 선구자’, ‘20세기 자유사상가들의 우두머리’로 평가받곤 했다.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어떤가? 후대의 사람들은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의 시대인 16세기를 회의주의·자유사상·합리주의의 세기로 칭송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뤼시앵 페브르는 이에 반문을 던진다. “라블레는 과연 무신론자였는가? 그리고 그의 시대는 무신앙을 가능하게 해 주었는가?”
라블레를 비난하던 동시대인의 ‘무신론자’라는 말과 오늘날에 쓰이는 ‘무신론자’라는 말은 그 의미가 상이하다. 16세기에는 기독교가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일상과 분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16세기의 과학과 철학은 무신론을 전개하고 체계화할 만한 그 어떤 “심성적 도구”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의 눈으로 터무니없어 보이는 비학(秘學)에서 불완전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페브르는 16세기가 “믿기를 원하던 시대”였으며, 그 속의 라블레는 무신론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가 될 수도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심성, 구조, 역사
페브르는 라블레가 무신론자인지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해 삶, 철학, 언어, 과학, 음악, 감각, 마녀, 비학 등 16세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페브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심성(men- talités, 망탈리테)을 재구성한다. 심성이란 농민, 부르주아, 시민과 같은 집단, 혹은 페브르식으로 16세기인 전체의 집단 심성을 말한다.
페브르의 심성사는 구조주의적이다. 역사가에게 구조는 ‘한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바꾼 예외적인 개인에 대해 말하지만, 그러한 사람조차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바로 구조고 그 시대의 심성이다. 이 책이 16세기와 라블레의 관계를 통해 제기하고자 한 것은, 달리 말하면 역사가들의 중요한 문제인 개인의 창의력과 구조의 관계인 것이다.
페브르는 정작 그 시대에 없었던 개념과 언어로 과거에 대해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시도를 “시대착오”라며 통렬하게 비판한다. 지금의 관점을 소급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눈으로 역사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 담긴 페브르의 주장이다. 역사적 방법론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1962년 알뱅 미셸(Albin Michel) 출판사에서 출간된 ≪Le problème de l’incroyance au 16e siècle: La religion de Rabelais≫를 원전으로 삼아 전체의 15% 정도를 발췌, 번역했다.
200자평
뤼시앵 페브르는 라블레가 무신론자였는지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들여다보며 16세기 사람들의 집단적인 ‘심성’을 재구성한다. 그에 따르면 16세기는 무신론을 전개하고 체계화할 만한 그 어떤 심성적 도구도 제공하지 못했다. 이는 역사에서 말하는 ‘구조’와 개인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아날학파의 기수로서 페브르가 제시한 심성사와 구조주의 역사학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방법론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지은이
뤼시앵 페브르는 프랑스 동부의 낭시에서 태어나 프랑슈콩테 지방의 주도인 브장송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899년 파리의 고등사범(Ecole Normale Supérieure)에서 수학했으며, 1911년 <펠리페 2세와 프랑슈콩테 : 1567년의 위기. 기원과 결과. 정치·종교·사회적 연구>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여기에서 평생의 학문적 동지인 마르크 블로크(1886∼1944)를 만났으며, 함께 <경제사회사 아날(Annales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을 창간했다. 1933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프랑스 백과사전≫의 편집자가 되어 철학자 앙리 베르와 함께 꿈꾸었던 학문적 ‘종합’을 실천했다.
페브르의 주요 저서로는 ≪펠리페 2세와 프랑슈콩테≫(1911), ≪땅과 인간의 진보≫(1922), ≪하나의 운명, 마르틴 루터≫(1928), ≪16세기의 무신앙 문제≫(1942), ≪오리게네스와 데 페리에 혹은 ‘세상의 해조(諧調)’의 수수께끼≫(1942),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1944)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것들을 묶은 ≪미슐레와 르네상스≫, ≪명예와 조국≫, ≪유럽. 문명의 발생≫ 등이 출판되었다. 페브르는 자신의 잡지인 <아날>에 무려 2천여 편의 글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고 독려했는데, 그의 주요 논문들은 ≪역사를 위한 전투≫(1953), ≪16세기의 종교적 심장에서≫(1957), ≪완전한 역사를 위하여≫(1962), ≪르네상스 프랑스에서의 삶≫(1977) 등에 수록되어 있다.
옮긴이
김응종은 1955년 대전 출생. 1978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후 1984년 프랑스 낭트 대학교에서 석사, 1987년 프랑스 프랑쉬콩테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이래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충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다.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아날학파≫(민음사, 1991), ≪오늘의 역사학≫(공저, 한겨레출판, 1998), ≪아날학파의 역사세계≫(아르케, 2001),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푸른역사, 2005), ≪페르낭 브로델≫(살림, 2006), ≪서양사개념어 사전≫(살림, 2008), ≪관용의 역사≫(푸른역사, 2014),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푸른역사, 2022) 등이 있다. 역서로는 ≪프랑스혁명사≫(일월서각, 1990), ≪16세기의 무신앙 문제≫(문학과지성사, 1996), ≪고대도시≫(아카넷, 2000), ≪랑그도크의 농민들≫(공역, 한길사, 2009), ≪유럽은 어떻게 관용사회가 되었나≫(푸른역사, 2015), ≪라로슈자클랭 후작부인의 회고록≫(한국문화사, 2018)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서론
제1장 삶을 장악한 종교
1. 개인적인 삶
2. 전문적인 삶
3. 공적인 삶
4. 선구자의 문제
제2장 무종교의 받침대 : 철학?
1. 심성적 도구
A. 없는 단어들
B. 구문과 원근
C. 라틴어의 항변
D. 하나의 예: 무한
2. 두 개의 사상
A.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신앙. 충돌?
B.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교류
제3장 무종교의 받침대 : 과학?
1. 르네상스의 옛 신화
2. 인쇄술과 그 결과: 소문
3. 도구와 과학적 언어의 결핍
4. 유동적인 시간과 고정된 시간
5. 가정과 실제: 세계의 체계
6. 코페르니쿠스의 관점
7. 세계의 체계, 확신? 두려움?
8. 16세기에서의 의심
9. 16세기에서의 진실
10. 수공업적인 심성
제4장 무종교의 받침대 : 비학(秘學)
1. 선구자들의 세기
2. 냄새·맛·소리
3. 음악
4. 시각의 지체
5. 불가능에 대한 감각
6.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7. 악마가 사는 우주
8. 비학과 종교
결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각각의 시대는 심성적으로(mentalement) 자기 시대의 우주를 만든다. 물려받았거나 획득한 사실들만을 가지고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기 시대만의 재능, 솜씨, 호기심 등을 가지고 그것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각각의 시대는 심성적으로 역사적 과거에 대한 표상을 만든다(3쪽).
각각의 주의 주장은 그것의 탄생과 구성을 설명해 주는 시간적, 공간적, 사회구조적, 정신문화적 상황을 고려할 때, 각기 부분적인 진리의 몫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대조와 대립의 근거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왜 각각의 주장과 입장들은 다른 상황에 직면하면 사라져 버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직 그러한 경우에만, 우리는 사건의 압력과 상황의 충격에 반응하는 인간 지성의 끈질긴 노력을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의 직무다(39쪽).
시계가 울릴 때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농민들은 식물, 짐승, 이런저런 새의 비상, 이런저런 새의 울음 등과 관련해서 시간을 알았다. “해가 뜰 무렵” 또는 “해가 질 무렵” 등의 표현은 노르망디 지방의 귀족인 질 드 구베르빌이 일기에서 가장 자주 사용한 표현이다. 이렇게 도처에 환상, 애매함, 부정확함이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나이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로서 생일이 서너 개이고 심지어 몇 년씩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80쪽).
우리는 온실 속의 사람들이고 그들은 바람 골짜기에 있는 나무들이다. 땅과 농촌에 가까운 사람들. 도시에 살면서도 시골, 가축, 나무, 그 냄새, 그 소리를 다시 찾는 사람들. 모든 감각을 통해 자연을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만지고 들이마시는 야외인. 우리가 ‘감정적’ 감각이라고 이름 붙인 ‘맛보기, 만지기’뿐만 아니라 ‘청각’ 등은 우리의 감각보다 더 잘 기능하고 더 발달해(혹은 덜 퇴화해), 그들의 사상을 더 혼탁하고 덜 순화된 분위기 속에 머물게 한다(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