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성의 어둠 아래 민주주의가 보인다
해체의 시대, 함께를 말하는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이성은 인간을 해방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간을 억압하고 속박하기도 한다. 20세기를 얼룩지게 한 전쟁과 폭력은 이성의 어두운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에 좌절한 많은 사상가들이 이성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위르겐 하버마스는 막스 베버, 테오도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 동료 학자들의 이성에 대한 비판 기조에서 벗어나 이성의 긍정적 측면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하버마스는 이른바 ‘합리화의 패러독스’로 불리는 베버 이론의 난점을 근대 이성의 ‘합리성’ 개념을 통해 극복하고, 이성의 해방적 기능에 주목했다.
이성에 주목한 하버마스의 사유는 민주주의 국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교적 상식으로 여겨질 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물질적 전회’를 외치는 오늘날의 사유들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독특한 지점에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 공론장 개념의 주인으로 오랜 기간 우리에게 알려져 온 하버마스지만, 우리에게 하버마스 사상이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짚어준 해설서는 없었다. 이 책은 하버마스의 국내 수용사를 짚으며 하버마스 이론의 탄생 배경, 그리고 그 현대적 의의를 다시 되새긴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가 시급한 지금, 하버마스는 우리에게 어떤 답을 건네 줄 수 있을까.
200자평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던 20세기 중후반,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계몽주의적 이성의 역설에 주목하고 그것을 해체하려고 하던 때, 위르겐 하버마스는 모더니즘의 정신을 되살려 그로부터 우리 삶이 지향해야 할 기준을 구축하고자 한 흔치 않은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버마스는 베버에서부터 시작된 근대성의 패러독스라는 논제,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한 인간 이성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논의를 발전적으로 비판한다. 이 책은 하버마스의 대표 저작이라 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의 주요 논점들을 필자의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은 민주주의를 실질적인 차원에서 정착시켜야 할 단계에 와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이론이다.
지은이
한기철
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대 헬라스·로마 교육사상, 르네상스 인문주의, 비판이론, 공화주의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 『포스트휴머니즘과 교육학』(공저, 2021), 『교육과 정치』(공저, 2021), 『교육의 본질을 찾아서』(공저, 2020), 『지식의 성격과 교육』(공저, 2019), 『교육철학 및 교육사』(공저, 2016), 『하버마스와 교육』(2008) 등이 있고, 역서로 『이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에 대하여」, 「안티도시스」, 「니코클레스에게」』(2016), 『다문화시대 대화와 소통의 교육철학』(공역, 2010) 등이 있다. 논문으로 “‘노모스ᐨ퓌시스 대립명제’에 나타난 소피스트들의 비판적 사유”(2021), “기술ᐨ미래 담론의 성격과 교육철학적 사유의 방향”(2020), “공화주의 교육론을 위하여”(2019) 등이 있다.
차례
이성적 사유의 기원과 합리성의 역설
01 도구적 이성 비판
02 베버에서 합리성과 합리적 행위
03 합리화의 패러독스
04 베버 합리화 논제에 대한 하버마스의 비판적 논의
05 언어적 전회를 통한 합리성 개념의 재구축
06 이층위적 사회 개념과 생활세계의 합리화
07 의사소통을 통해 쌍방 간의 이해를 지향하는 행위
08 교육적 상황에의 적용 사례를 통한 의사소통적 행위의 이해
09 도덕적 관점 개념과 담론윤리학
10 의사소통적 행위 맥락에서 재구성된 보편주의 도덕이론
책속으로
이제 우리는 이성으로부터 그 어떤 목표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근거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되었다. 형식화된 이성은 이성의 중성화(中性化)를 초래하고, 중성화된 이성은 결국 이성의 도구화를 초래한다. 이제 이성은 ‘무엇’보다는 ‘어떻게’를 문제 삼게 되고 그것을 통해 도구적 수행 기능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최적화된다.
_ “01 도구적 이성 비판” 중에서
그러나 만약 이러한 전망이 계몽적 합리성에 대한 불완전한 이론적 이해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서 초래되었다고 한 합리성의 패러독스라는 논제가 결코 불가피한 논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여전히 이성을 인간 해방의 이론적 토대로 삼을 수 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_ “03 합리화의 패러독스” 중에서
하버마스는 근대성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설명해 낼 수 있는 사회 이론을 제시하고자 했는데, 그 출발점은 “의식의 철학으로부터 언어의 철학으로의, 그리고 주관적 이성과 합리성 개념으로부터 의사소통적 이성과 합리성 개념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요컨대 하버마스는 인간의 언어 사용 능력 또는 언어 사용 경험을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기반이자 대상으로 삼는 ‘언어적 전회’라 지칭되는 20세기 철학의 특징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_ “05 언어적 전회를 통한 합리성 개념의 재구축” 중에서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이 이론적 담론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진정한 합의가 위조된 합의나 ‘거짓 합의’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 준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합리적 합의는 오로지 ‘보다 좋은 주장의 효력’에 의해서 성취된 합의를 의미한다. 자신의 주장이 타당한 주장이라는 점을 합리적으로 논증하기 위해서는 현재 담론의 주제와 무관한 그 어떤 형태의 외적 제약이나 압력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_ “08 교육적 상황에의 적용 사례를 통한 의사소통적 행위의 이해” 중에서
하버마스의 보편성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보편성의 토대가 ‘고립된 개인’의 도덕의식으로부터 여러 개인이 모여서 대화를 수행하는 ‘의사소통적 공동체’로 전이되었다는 점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칸트의 자율의지는 의사소통하는 개인들 간의 도덕적 관계로부터 특이한 형태로 추상화된 개념이다.
_ “10 의사소통적 행위 맥락에서 재구성된 보편주의 도덕이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