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카기르족은 시베리아 북극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전반기에 러시아인이 처음으로 야쿠트 지역에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의 착취로 여러 유카기르 부족들이 살던 곳을 떠나 이동하다가 타민족에 흡수되었다. 다른 민족들과의 계속된 전쟁으로도 큰 인명 손실을 입게 된다. 게다가 천연두 등 전염병이 만연하면서 인구는 크게 감소했고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렇게 유카기르족은 500명도 채 남지 않을 정도로 거의 절멸 상태에 이르게 되며, 유카기르족의 전통 문화와 언어도 소멸 직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유카기르족의 전통 관례는 많은 면에서 주변 민족과 유사했다. 족외혼 제도나 피의 복수 관습, 사냥물 분배에 관한 니마트(Нимат) 관습은 이웃한 퉁구스계 민족들이나 야쿠트족, 축치족의 관습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니마트라는 풍습은 북(北)퉁구스계 민족 중 유목민에게 널리 퍼져 있는, 사냥한 노획물을 나누고 또 답례하는 풍습이다. 유목민들은 기후나 그날그날의 운세 등에 따라서 사냥에서 동물을 잡아 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포획물을 가지고 귀환한 사냥꾼은 그 노획물을 자신이 속한 유목민 그룹과 꼭 나누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목민 그룹 내의 유대감과 단합을 공고히 하고 자신이 포획물을 잡지 못했을 때를 대비할 수 있었다.
유카기르족의 샤머니즘 역시 이웃한 퉁구스인이나 야쿠트인의 샤머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샤먼의 기본적인 역할은 질병 치료, 사냥 성공의 기원, 불임 치료, 일기 변화 등이었고, 씨족마다 샤먼이 있었으며 집집마다 북이 있었다는 점은 축치인 등 고아시아 민족과 유사했다.
이 책에는 주인공이 마법을 부려 괴물이나 식인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 마법을 부리는 괴물이나 반인반수를 평범한 주인공이 지략이나 용맹함으로 물리치는 이야기 등의 마법담, 욕심을 부리던 부자가 지신(地神)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등의 교훈담, 동물들 간의 지략 다툼을 다루거나 동물이 꾀로 사람들을 혼내 주거나, 동물들의 생김새나 성향 등이 형성된 연유에 대한 동물담 등 유카기르족의 설화 32편이 실려 있다.
200자평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곳,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 문화, 주변 민족과의 관계, 사회법칙, 생활, 정신세계, 전통 등이 녹아 있는 설화. 시베리아 소수민족의 설화를 번역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문화를 역사 속에 남긴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시베리아 설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의 설화에 조금은 식상해 있는 독자들에게 멀고 먼 시베리아 오지로 떠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한다.
옮긴이
김은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 대한 연구로 러시아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출강 중이며, 러시아 문화와 문학에 대한 글들을 발표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림으로 읽는 러시아≫(이담북스, 2014), ≪러시아 명화 속 문학을 말하다≫(이담북스, 2010), 공저로 ≪나는 현대 러시아 작가다≫(경희대 출판사, 2012), ≪내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음식≫(이숲, 2010)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현대 러시아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제1권, 제2권(아카넷, 2014), ≪북아시아 설화집 1(부랴트족)≫(이담북스, 2015), ≪겨울 떡갈나무≫(한겨레아이들, 2013), ≪금발의 장모≫(지만지, 2013), ≪나기빈 단편집≫(지만지, 2009) 등이 있다. 또한 주요 논문으로는 <<에고>에 나타난 서술형식과 솔제니친의 역사인식>, <≪소네츠카≫의 서사구조와 고전의 귀환> 등이 있다.
차례
외로운 청년
개의 수호신들
땅의 주인
북극여우와 곰
토끼의 꼬리가 없어진 이유
셈테네이 노인
토끼
여우 이야기
야생 북극암사슴
솥단지 비슷한 썰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라마도
옛사람들의 소녀
도르부
아낙네
도부레
구슬 턱수염 노인
욕심 사나운 노인
스라소니가 토끼를 잡아먹는 이유
하바타
마체칸
욕심 사나운 아낙네
‘늙은이’라는 별명의 할아버지 나무
미끼 사슴을 데리고 하는 사냥
키르체아나
토로하
숙부ᐨ아버지의 아이
방탕한 여자
불구자
테베게이
얼음 구멍 속의 아낙네
로시야, 로시야, 긴, 긴, 긴
부르는 주문
해설
옮긴이에 대해서
책속으로
아내는 울기만 했다. 한참을 울고는 물었다.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어디로든 맘대로 가!”
“얼어 죽겠어요!”
“에잇, 살고 싶으면 어서 떠나!”
그의 아내는 울면서 툰드라를 돌아다녔다. 어둠 속에서 툰드라를 헤맸다. 울면서 밤이고 낮이고 걸어 다녔다. 어떤 때는 눈을 파헤치고 거기에 누웠다.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아내의 기력이 완전히 다해 갔다. 걷고 또 걷는데 갑자기 그녀의 앞에 아주 훌륭한 천막이 서 있었다. 거기까지 걸어갔다. 주위에는 수많은 사슴 발자국들이 있었고 사람 발자국은 별로 없었다. 조심스럽게 천막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천막 안에는 온갖 물건이 놓여 있었다. 옷도 있었고 음식도 많았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먹었다. 그리고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8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