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선 이백은 당대 시단 나아가 중국 역대 시단을 통틀어 시성(詩聖)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백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태백시집≫을 제외하고는 그의 시에 대한 완역이 없어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 기초해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백 전집≫을 역주하고 해설해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민간의 노래, 악부(樂府)
악부시라는 명칭은 원래 한대(漢代) 악부시에서 유래한다. 즉, ‘악부(樂府)’라는 관청에서 수집한 민간 가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악부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시가의 내용 면에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는 현실성이 강하다. 둘째, 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어가 평이하고 그 음절은 간결하다. 셋째, 그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우며 격률에서도 엄격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한대 이후로 많은 시인이 이를 모방해 창작했는데 이를 모두 악부시라 한다. 또한 한대 이후의 악부시 중 시 제목에 ‘가(歌)’, ‘행(行)’, ‘음(吟)’ 등이 포함된 것들을 가행체 시(歌行體詩)라 하는데, 이도 역시 악부시에 속한다. 다만 이를 조금 더 자세히 구분하면 악부시는 서사성이 강하고, 3인칭 시점이 많은 반면, 가행체 시는 서정성이 강하고 1인칭 시점 위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백의 악부시
이백의 현재 전해지는 작품 가운데 악부시의 비중은 상당하다. 이백의 전체 작품 약 1000여 수 중 현전하는 악부시는 전체의 약 16%에 해당하는 160수다. 또한 송대에 편찬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약 450여 수의 초당(初唐), 성당(盛唐) 악부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161수가 이백의 악부시다. 전체 초성당 악부시 가운데 이백의 악부시가 약 36%를 점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이백은 초성당을 대표하는 악부시 시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많은 수량의 악부시를 창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다양한 악부 민가를 접하게 되었고, 또 이러한 악부 민가로부터 적지 않은 시적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백의 악부시는 그 창작 수량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취에서도 역대로 매우 탁월한 평가를 받았다. 명대의 호진형(胡震亨)은 “이백은 악부시에서 가장 심오하다. 옛 악부 시제(詩題)를 모방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떤 것은 그 본래 뜻을 사용했고 또 어떤 것은 새로 바꾸어 새 뜻을 지어냈다. 그 뜻을 합쳤으되 다른 듯하고, 그 뜻이 다르되 합친 듯하니, 옛것을 모방하는 교묘함을 지극히 다했다”라고 호평했고 현대의 푸루이(傅如一)는 “이백의 전체 시작(詩作)의 정수는 거의 다 이 악부시에 모여 있으니, 그의 총명함과 재주 역시 가장 통쾌하게 발휘되어 있다”고 했으며, 페이페이(裴裴)는 “창작 개성으로 볼 때, 이백은 감정을 크게 토로할 때 자유분방하게 구사했는데, … 자유분방한 감정은 어떠한 속박에서도 벗어날 것을 요구하니, 이러한 까닭에 이백은 악부시에서 뛰어남을 보였다”라고 호평한 바 있다. 이백의 악부시는 시대의 아픔과 백성의 고통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이백 특유의 자유롭고 낭만적인 개성이 현저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백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가운데 과장과 상징 수법 등이 변화무쌍하게 사용되어 뛰어난 예술적 경지를 이루고 있다.
≪이백 시전집 7 악부 1≫에는 이백의 악부시 27제(題) 31수가 수록되어 있다. 원전의 편차를 그대로 따랐기에 창작 시기와는 상관없이 수록되었으며, 그 내용도 다양하다. 이백 악부시의 대표작인 <촉도의 험난함(蜀道難)>, <장진주(將進酒)>, <가는 길 험난하구나(行路難)> 등을 만날 수 있다.
200자평
이백시문학회에서 이백 시전집을 완역한다. 오랫동안 이백을 연구해 온 14명의 전문 학자가 국내외 모든 이백 관련서를 참고하고 수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가장 완벽한 정본에 도전한다. 제7권은 <악부> 160수 중 31수를 옮겼다. <촉도의 험난함(蜀道難)>, <장진주(將進酒)>, <가는 길 험난하구나(行路難)> 등 이백의 대표적인 악부시들을 만날 수 있다. 정확한 번역과 방대한 주석, 다양한 교감과 상세한 해설은 이백 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모두에게 이백 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지은이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隴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鄉)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冰)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옮긴이
이백시문연구회
이백의 시문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이백의 시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번역하는 모임이다. 2013년 2월 결성되었으며 매주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이백의 시문을 강독하고 토론하고 있다. 2017년 중국 안후이성 마안산시를 방문해 중국이백연구회와 학술 교류를 시작했다. 그간의 저서로는 ≪이백시전집 1 고풍≫, ≪이백시전집 2 등람≫, ≪이백시전집 3 행역≫, ≪이백시전집 4 회고≫, ≪이백시전집 5 한적≫, ≪이백시전집 6 회사≫와 ≪중국 고전 시가 알기≫가 있다.
이동향(李東鄕)
이백시문연구회 고문. 현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 교수를 역임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대사전편찬실 실장을 지냈다. ≪이하시선≫, ≪송사삼백수≫ 등을 번역했으며 ≪중국문학사≫를 저술했다. 당시와 송사에 관한 논문 다수와 ≪가헌신기질사연구≫ 등이 있다.
김경천(金慶天)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논어≫의 성립 과정과 원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고염무의 경학관> 등이 있으며, 공역으로 ≪다산의 경학 세계≫ 등이 있다.
김의정(金宜貞)
성결대 파이데이아 학부 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를 전공했고 주요 논문으로 <흥(興), 오래된 비유>, <영상 미학을 통해 본 중국 고전시의 재해석>, <명대 여성 시에 나타난 전통과의 대화 방식> 등이 있다. 저역서로는 ≪한시 리필≫, ≪두보 시선≫,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장물지≫, ≪쾌락의 정원(李漁, 閑情偶寄)≫ 등이 있다.
김정희(金貞熙)
한양여대 교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이수했다. 사(詞) 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고전 시와 중국 문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 저역서로 ≪베이징 이야기≫, ≪현대 중국 생활차≫, ≪한 손에 잡히는 중국≫, ≪뉴스와 중국어≫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 <주방언의 청진사 연구>, <韓國‘中國詞文學硏究’評述> 등이 있다.
노은정(盧垠靜)
성신여대 중국어문문화학과 외래교수. 성신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를 연구하고 중국 고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용재수필≫, ≪중국 문학 이론 비평사≫,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등의 번역서와 <송시에 나타난 양귀비의 형상 변화 연구>, <중국 유일의 여황제 무측천의 시가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박민정(朴玟貞)
세종사이버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중국 고전 시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저장대학에서 대외한어교학(對外漢語敎學)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와 대외한어교학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어 정태어미와 이에 대응하는 중국어 정태동사(韓語情態詞尾與漢語相應情態動詞)≫, 편역서로는 ≪서곤체 시선≫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칠언율시의 형식적 특징으로 본 서곤파와 안수>, <송초 삼체시의 형식적 특징 비교 연구> 등이 있다.
여정연(呂亭淵)
을지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숙명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논문으로 <위진남북조문론의 물감설 연구>가 있다.
이기면(李基勉)
배재대 명예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원굉도 문학 사상≫, 대표 역서로 ≪이욱 사선≫(공역), ≪거인의 시대 : 명 말 중국 예수회 이야기≫(공역)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명 말 청 초 이단 문학론의 실학적 이해>, <명 말 청 초 방외 문학론의 근대 지향성 연구> 등이 있다.
이승신(李承信)
한국공학대 지식융합학부 외래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푸단대 방문학자,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visiting scholar,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역서로 ≪首屆宋代文學≫(공저), ≪취옹문선역(醉翁文選譯)≫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중국고전산문연구의 시각과 방법론 모색>, <구양수 ≪귀전록(歸田錄)≫의 체재와 서술 방식 연구> 등이 있다.
이현주(李賢珠)
한중인문학 교류연구소 전임연구원. 전북대 중문과를 졸업한 후 중국 쑤저우대학(蘇州大學)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중국 고전 시사를 전공하고 논문으로는 <백거이(白居易)의 중은(中隱) 사상 연구>, <납란성덕(納蘭性德) 사 연구>가 있다.
조득창(趙得昌)
협성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희곡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공저),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 역서로는 ≪피에로≫, ≪결혼/염라대왕 자오/오규교≫, ≪안개 낀 충칭≫이 있다.
조성천(趙成千)
을지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비평 및 시론 중 왕부지의 학술 사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왕부지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연구≫, ≪강재시화≫, ≪인간사화≫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 미학적 의의>, <왕부지 소식 시문 비판론 초탐> 등이 있다.
채수민(蔡守民)
고려대 세종캠퍼스 외래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난징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고전 희곡을 전공했다.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방문학자, 고려대 세종캠퍼스 인문대학 교양교직 조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중국 전통극의 공연과 문화≫(공저), 편역서로 ≪봉신연의≫가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청 중엽 희곡 활동의 변화 양상>, <경극 연기 도구 챠오(蹺)에 관한 소고> 등이 있다.
최우석(崔宇錫)
국립안동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중국 고전 시가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魏晉四言詩硏究≫(中國巴蜀書社), ≪漢韓學習詞典≫(北京大學出版社) 등이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고대 사언시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등이 있다.
차례
제1수 영원히 이별하네(遠別離)
제2수 임이여, 황하를 건너지 마세요(公無渡河)
제3수 촉도의 험난함(蜀道難)
제4수 양보음(梁甫吟)
제5수 까마귀가 밤에 우네(烏夜啼)
제6수 까마귀는 깃들이고(烏棲曲)
제7수 성 남쪽의 전투(戰城南)
제8수 장진주(將進酒)
제9수 가고 또 가며 사냥하네(行行且遊獵篇)
제10수 날아가 버린 용. 두 수 중 첫째 수(飛龍引二首 其一)
제11수 날아가 버린 용. 두 수 중 둘째 수(飛龍引二首 其二)
제12수 천마의 노래(天馬歌)
제13수 가는 길 험난하구나. 세 수 중 첫째 수(行路難 三首 其一 )
제14수 가는 길 험난하구나. 세 수 중 둘째 수(行路難 三首 其二)
제15수 가는 길 험난하구나. 세 수 중 셋째 수(行路難 三首 其三)
제16수 한없는 그리움(長相思)
제17수 상류전(上留田)
제18수 춘일행(春日行)
제19수 술 한 잔 앞에 놓고. 두 수 중 첫째 수(前有樽酒行二首 其一)
제20수 술 한 잔 앞에 놓고. 두 수 중 둘째 수(前有樽酒行二首 其二)
제21수 한밤중 앉아 읊조리다(夜坐吟)
제22수 들판의 방울새 노래(野田黃雀行)
제23수 공후의 노래(箜篌謠)
제24수 아침에 장끼가 날아오르다(雉朝飛)
제25수 구름에 오르는 즐거움(上雲樂)
제26수 이칙격에 맞춰 불무를 추며 부르는 백구의 노래(夷則格上白鳩拂舞辭)
제27수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노래하며(日出入行)
제28수 오랑캐 없어지면(胡無人)
제29수 북풍의 노래(北風行)
제30수 협객의 노래(俠客行)
제31수 관산의 달(關山月)
부록
<촉도난(蜀道難)>에 대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장진주(將進酒)
그대 보지 못하는가
황하의 물줄기가 천상에서 내려와
한번 내달려 바다에 이르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그대 보지 못하는가
고대광실 대갓집에서 거울 속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검은 실 같던 머리가 저녁이면 흰 눈이 되는 것을!
사람이 살면서 좋은 때를 만나면 마음껏 즐겨야 하니
금술잔이 빈 채로 달과 마주하지 말지라.
하늘이 나에게 재주를 주었으니 반드시 쓸모가 있고
천금은 다 써 버려도 다시 또 생긴다네.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잠시나마 즐길지니
한번 술을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 하리.
잠 부자여
단구생이여
술잔을 드리니 멈추지 말게나.
그대들에게 노래 한 자락 하려니
그대들 귀 기울여 들어 주게나.
종을 울려 옥 같은 음식 먹는 것 부럽지 않으니
원하는 건 오래도록 취해 깨어나지 않음이라.
예부터 성현들은 모두 죽고 없으니
오로지 술꾼들만 이름을 남겼어라.
진왕 조식은 예전에 평락관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한 말에 만금이나 하는 술을 마음껏 마시며 즐겼다더라.
주인이여, 어이하여 돈이 없다 말하는가
곧장 술을 사 와 그대와 대작하리라.
다섯 타래 갈기 묶은 오화마
천금이 나가는 가죽옷,
아이더러 가지고 나가 좋은 술로 바꿔 오게 하게나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풀어 보리라.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岑夫子, 丹丘生,
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傾耳聽.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用醒.
古來聖賢皆寂寞, 唯有飮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