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카라지알레의 희극은 사회를 그대로 무대에 옮겨와 사회 속에서 인간들이 갖는 부정적인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 준다. 그가 창조해 낸 작품 속 인물들은 부정적인 성격이 과장되게 묘사되어 현실성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아는 것이 없으면서 거짓으로 유식함을 뽐내기 위해서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외국어 단어를 말 중간중간에 섞는 사람, 실제로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적 지위를 차지하려 하면서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는 거창한 목적을 내세워 자신을 합리화하는 인간, 정치적 소신이나 국가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을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라고 착각하는 정치인들, 권력의 신하 노릇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일은 많고 예산에 따라서 월급이 적기 때문에, 공금을 슬쩍해도 정당하다고 여기는 공무원들, 누굴 자신들의 지도자로 내세워야 할지 고민하며 항상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일반 시민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카라지알레 희극의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 바로 ≪잃어버린 편지≫다. 이 희극은 정치를 통해 출세하려는 자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협박, 배반, 속임수, 무능력 등 인간들의 갖은 부도덕성과 비사회성을 웃음을 통해 강력하게 공격한다. 우리와는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루마니아의 한 세기 훨씬 이전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그린 우스꽝스런 사회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또한 ≪잃어버린 편지≫의 등장인물들이 보이고 있는 도덕적 결함도 우리 현대인들의 그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작가는 이런 부정적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를 고칠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가는 제시하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것들에 압도당한 세상, 자신의 욕망과 출세에만 관심이 있는 무능력자들에 의해 경영되는 사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비정한 현실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상류사회를 향한 열망, 출세욕, 성공욕구 등을 채우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광대처럼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가를 자문할 기회를 주고 있을 뿐이다.
200자평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가 1884년에 발표한 4막 희극으로 1884년 11월 13일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매년 빠지지 않고 공연되는 루마니아 최고의 희극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지 한 장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은이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I. L. Caragiale)는 1852년 1월 30일 프라호바(Prahova) 주의 하이마날레(Haimanale) 마을(현재 이 마을의 이름은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로 바뀌었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카 슈테판 카라지알리(Luca Stefan Caragiali)이며 어머니는 브라쇼브(Brasov) 상인의 딸인 에카테리나(Ecaterina)이다.
초등학교(1∼4학년)는 플로이에슈티(Ploiesti)에 있는 공국국립초등학교를 다녔다. 중등학교(5∼8학년)는 성 베드로와 바울(Sf. Petru si Pavel) 중학교를 다녔다. 1868년에서 1870년까지는 부쿠레슈티(Bucuresti)에 있는 연극학교에서 웅변과 마임을 공부했다. 이때 카라지알레를 가르친 사람은 당시 루마니아 연극계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이름 있는 희극 작가 코스타케 카라지알리(Costache Caragiali)로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의 삼촌이었다.
187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부쿠레슈티로 이사한 카라지알레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한다. 무대 뒤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불러주는 프롬프터, 법원의 서기, 출판 교정원, 신문기자 등의 일을 하다가 1878년부터 드디어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외국의 희곡을 번역하는 일과 연극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다가 자신의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1878년에는 루마니아의 시성인 미하이 에미네스쿠의 도움으로 주니미시티(Junimisiti: 젊은 문학인(Junimea)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가 발행하는 신문인 <시간(Timpul)>의 편집자로 일하게 되며, 같은 해 자신의 첫 희극 작품인 <소란스러운 밤(O noapte furtunoasa)>을 이온 크레안거, 에미네스쿠, 티투 마이오레스쿠 등이 활동하는 문학잡지인 <주니메아(Junimea)>를 통해 발표한다. 이후에 <반혁명에 직면한 레오니다 양반(Conu Leonida fata cu reactiunea, 1880)>, <잃어버린 편지(O scrisoare pier- duta, 1884)>, <축제에서 벌어진 일(D-ale carnavalului, 1885)>을 연이어 발표한다.
1890년에 드라마 <재난(Napasta, 1890)>을 집필한 후 희곡 집필은 중단하고 단편소설(nuvele), 콩트(schite), 이야기(povestiri) 등을 발표한다. 1891년 단편집 ≪순간들(Momente)≫을 발간하고 1908년에는 단편소설 모음인 ≪소설집(Nuvele)≫과 이야기 모음인 ≪이야기들(Povestiri)≫을 발표한다.
1905년에 집안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부담감이 없어지자, 카라지알레는 고국 루마니아를 떠나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문학 동료들과 서신을 통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거나, 루마니아의 신문들에 글을 계속 기고하는 등 고국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1912년 6월 8일 밤, 카라지알레는 이국 베를린에서 삶을 마감한다. 시신은 고국으로 모셔져 부쿠레슈티의 벨루 국립묘지(Cimitirul Bellu) 미하이 에미네스쿠의 묘지 옆에 안치된다.
옮긴이
이호창은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에 출강하고 있다. 1987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를 1회로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대학교(Universitatea din Bucuresti) 문학대학(Facultatea de Litere)에서 디미트리에 퍼쿠라리우(Dimitrie Pacurariu) 교수의 지도 아래 1996년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의 희극작중인물 분석(Comediile lui I. L. Caragialepersonaje)”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Doctor în filologie)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무역회사 등에 근무하면서 계약서, 법률, 실무 서류 등을 주로 번역하였다. 2002년과 2003년에는 부쿠레슈티 국립대학교 외국어학부(Facultatea de limbi straine)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하며, 루마니아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국학을 가르쳤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에서 희곡, 지역 연구, 문법, 작문, 번역 연습, 무역 루마니아어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동대학 동유럽발칸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제토다치아(Geto-Dacia)의 잘목시스(Zalmoxis) 신앙과 불멸에 대한 관념”, “루치안 블라가의 신화 시극 <자몰세이교의 신비>에 나타난 사상과 상징”, “즈부러토룰과 관련된 신화와 문학에 대한 분석”,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I. L. Caragiale)의 해학극 <잃어버린 편지>”, “인간과 대자연의 합일을 노래한 루마니아의 대표 민요 <미오리차>” 등이 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루마니아 신화에 내재된 민간신앙과 동방정교의 문화적 융합 양상”, “고대 다치아(Dacia)의 신화들과 자몰세(Zamolxe) 신앙이 루마니아 문학에 끼친 영향”, “루치안 블라가(Lucian Blaga)의 <문화 삼부작(Trilogia Culturii)>에 대한 해석과 비평” 등의 연구를 수행했거나 수행 중에 있다.
이기백 선생님의 ≪한국사 신론≫을 루마니아어로 완역했으나, 루마니아 내 출판사 섭외에 어려움이 있어 아직 정식으로 출간되지 않았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단편 환상소설들과 루마니아 신화 관련 논문들을 번역하기도 하였는데, 차후 지만지고전천줄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카차벤쿠: (굉장히 취해서 혀가 꼬여 있다. 그러나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형제 여러분! (모두들 그의 말을 경청하려고 그를 향해 시선을 집중한다.) 거의 삼십 년간을 지속해 온 한 세기의 투쟁 끝에… 보시는 바와 같이… 드디어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크림전쟁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싸웠고, 전진했습니다. 어제가 암흑이었다면 오늘은 밝은 빛입니다. 어제 우리는 편협한 생각을 했지만, 오늘은 자유롭고 넓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슬퍼했지만 오늘은 기뻐합니다. 자 이것은 모두 우리가 진보한 덕입니다. 자 보시오! 합법적인 제도의 우수성을…
프리스탄다: 깨끗이 합법적인! 음악 소리! 음악을 울리시오!
(아주 경쾌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천둥 같은 함성이 터진다. 그룹별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뒤섞인다. 군중들 한가운데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단다나케와 그 옆의 카차벤쿠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들 서로 양 볼에 입맞춤을 하고 덕담을 나눈다. 단다나케는 손을 머리 옆으로 올리고 종이 울리는 시늉을 한다. 조에와 티퍼테스쿠는 한쪽에 조용히 서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그 광경을 물끄러미 관망한다. 한순간에 막이 무대 위로 갑자기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