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20년 세종도서 학술 부문 선정
식민지 시기에 활동한 시인은 남북한 시 문학사와 시선집과 교과서에 각기 다르게 등재되어 있다. 남북한 시사와 시선집과 교과서에 모두 등재된 시인도 있고, 한쪽에만 등재된 시인도 있으며, 양쪽에서 배제된 시인도 있다. 양쪽 시선집에 모두 등재된 시인의 경우에도 등재된 작품이 다르고 작품이 해석되는 방식이 다르다. 이 경우에는 남북한 공통의 시인 정전을 바탕으로 작품 정전을 조율하고 작품의 해석 방식을 확대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분단으로 인한 냉전 이데올로기는 지리적 정치적 경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사유와 상상력과 감각에도 제한을 가함으로써 특정한 시인의 작품만을 기억하게 한다. 문학사와 시선집과 교과서에 특정 시인을 등재하는 과정에는 그 외의 시인을 배제하는 검열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고하게 작용하던 검열 기제가 유연해지면 시선집 등재 시인과 작품이 바뀌면서 정전의 변화가 나타난다.
따라서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이 각기 다르게 형성한 정전 목록을 확인하고 각각의 정전화 과정의 특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할 때 소통하며 함께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시 문학 텍스트가 남한과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한국어 문학 교육 자료로 활용되는 추세를 고려하건대, 남북한 독자만이 아닌 해외 독자를 아우른 새로운 정전 텍스트가 절실히 요구된다. 변화한 삶의 가치를 반영한 새로운 정전 목록을 구성하는 ‘정전 실천’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문학 텍스트는 한 국가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북한 자료를 보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다. 오히려 일본, 중국, 미국 등의 대학 도서관에서 더 편하게 접할 수 있다. 해외 학술 대회에서도 남북한 연구자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연구자는 남북한, 일본, 중국, 미국 등의 자료를 아우른 통합적인 시각에서 자유롭게 연구하는 반면, 남북한 연구자는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제한된 자료와 시각 속에서 연구한다. 연구자가 연구 대상에서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도록 남북한 자료를 원활하게 공유하며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200자평
분단으로 인한 냉전 이데올로기는 남과 북의 시 문학사에 서로 다른 정전을 확립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남북한의 정전 형성 과정에 각각 어떠한 가치가 검열의 논리로 작용했는지를 확인하고 어떻게 시인과 시 작품에 대한 기억의 편차가 생기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이를 통해 앞으로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갈 새로운 정전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지은이
강영미는 현대 시 연구자다. 덕성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거가 현재에 끼치는 영향, 현재가 과거를 불러내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남북한의 근현대 시와 시조, 노래를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김지하 담시의 판소리 수용 양상 연구>, <한국 현대 시의 전통과 시형에 관한 연구>, <이념으로서의 조선어, 기획으로서의 시조>, <‘이미’와 ‘아직’의 변증법−말소리의 감각과 통합적 사유를 중심으로>, <1970∼80년대 노래 운동의 예비적 고찰>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부유독습≫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1. 머리말
I. 서론
1. 연구 목적
2. 연구 현황
3. 연구 대상
II. 정전 검열 기억
III. 선정과 기억의 원리
1. 김소월, 보편적 삶의 원리 미학화
1) 서론
2) 남북한 시선집의 김소월 시 등재 양상
3) 남북한 시선집 수록 작품의 특징
4) 결론
2. 한용운, 반일 저항시의 계보화
1) 서론
2) 남북한 시선집의 한용운 시 등재 양상
3) 남북한 시선집 수록 작품의 특징
4) 한용운 시의 교과서 등재 양상
5) 결론
3. 시조 시인, 구어를 통한 사상의 유연화
1) 서론
2) 남북한 시선집의 시조 시인 등재 양상
3) 가치의 분화 및 고착화 과정
4) 결론
IV. 배제와 검열의 원리
1. 남한 시선집의 배제 원리, 계급성과 사상성
1) 남한 문단의 검열과 배제
2) 남북한 문학사의 카프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
3) 남북한 시선집의 카프 시인 등재 양상
4) 결론
2. 북한 시선집의 배제 원리, 감상성과 낭만성
1) 북한 문단의 검열과 배제
2) 남로당계 문인 배제, 응향계 임화
3) 북한의 모더니즘 시인 배제, 이상
4) 결론
3. 탈정전의 재정전화, 우리말의 감각
V. 민족이라는 동일성 형성의 이데올로기
VI. 국경을 횡단하는 시 텍스트의 정전성
VII. 결론
부록
참고 문헌
지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식민지 시기 시인들은 분단을 기점으로 남북한 시선집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등재된다. 그중 일부는 남한이나 북한 시선집 한쪽에만 등재되는데, 남한 시선집에서 배제된 시인은 북한 시선집에 등재되고 북한 시선집에서 배제된 시인은 남한 시선집에 등재되는 현상을 보인다. 월북한 카프계 시인의 계급적 관점과 사회주의적 지향성이 남한 시선집에서는 배제 원리로 북한 시선집에서는 선정 원리로, 문학의 자율성에 초점을 두고 개인의 내면을 탐색한 모더니즘 작품이 북한 시선집에서는 배제 원리로 남한 시선집에서는 선정 원리로 작용한다. 남북한 문단 모두, 시인의 체제 지향성, 이념적 이데올로기를 고려한 작가 정전에 초점을 두고 시선집을 구성해 왔기 때문이다.
변화는 1990년대부터 나타난다. 남한 시단은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부터 월북(재북, 납북) 시인과 카프 시인을 등재하기 시작하고, 북한 시단은 1992년에 발간한 시선집에서부터 친일계, 북로당계, 모더니즘계 시인들을 등재한다. 남한 시선집은 월북 시인이나 카프 시인을 복권하는 차원에서 시인 중심으로, 북한 시선집은 인민성과 향토성에 초점을 둔 작품 중심으로 시선집을 구성한다. 북한은 친일 행적을 하거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거나 남한의 체제를 적극 옹호한 시인들까지 시선집에 등재한다. 그 결과 시선집에 등재된 시인과 작품 수는 북한 시선집이 남한 시선집보다 더 많은 현상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