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조경희(1918∼2005)는 첫 수필집인 ≪우화≫(1955)에서 ≪하얀 꽃들≫(2000)에 이르기까지 열 권가량의 작품집을 펴낸 수필 작가다. 60여년 문필 활동을 꾸준히 한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세계는 매우 폭넓고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1939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로 입사한 후 평생 언론인으로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조경희는, 예총회장, 제2정무 장관, 한국 수필가 협회 회장 등으로도 널리 이름을 알렸다.
언론인, 정치 관료에서 수필가에 이르는 조경희의 다양한 경력은 그의 창작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성적’ 이야기에 한정되지 않는 소재의 다양성은 물론, 수차례의 외유 경험으로부터 확보된 폭넓은 시야와, 사회·문화·정치·예술 등 여러 영역을 포섭하는 식견과 안목이 그의 작품 세계에 두루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조경희는 미주알고주알 가정 이야기를 쓴 과거의 여성 수기류나 자신의 생활 주변 이야기에 치우친 ‘여성적인’ 에세이를 경계하는 대신, “깊이 있는 삶의 체험”으로부터 삶의 철학이 담긴 고전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해 왔다. ‘붓 가는 대로’의 가벼움이 아닌, 한 편의 시나 소설에 육박하는 자기 세계의 창조야말로 수필의 위상 정립에 필수적임을 강조해 온 것이다. 신변잡기식의 이야기, 무형식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수필 쓰기의 ‘엄격함’은 조경희의 글 전편에서 감지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노천명·모윤숙·전숙희의 계보를 잇는 여류 수필가인 동시에, 한국 수필가 협회 창설(1971)로 수필의 본격적인 전문화 및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작가의 족적에는, 수필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 신념이 반영되어 있다 하겠다.
200자평
조경희는 인간이 지녀야 할 교양과 문화에 대한 섬세한 감식안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사회상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통해, 수필을 엄연한 문학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작가다. 때로 비루하고 하찮아 보이는 우리의 ‘위대한’ 일상과 인생 전반의 ‘골치 아픈’ 실천 영역을 함께 다루되, 생활에서 출발해 철학적 성찰로 이어지는 의미 체계는 조경희 수필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이야말로 우리가 조경희 수필을 읽는 이유, 수필가 조경희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은이
조경희(趙敬姬)는 1918년 경기 강화에서 태어났다.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해, 1938년 ≪한글≫에 <측간 단상>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같은 해 ≪조선일보≫ 학생란에 <영화론>이 당선되기도 했다. 1939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로 입사했다. 1940년 ≪매일신보≫ 문화부로 자리를 옮겼으며, 1946년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1947년 ≪중앙신문≫ 사회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1949년 손소희, 전숙희와 함께 계간지 ≪혜성≫을 창간했고, 1951년에는 ≪부산일보≫ 문화부장으로 있었다. 1952년 월간 ≪여성계≫ 주간을 맡는 한편, 월간 ≪희망≫의 문화부장으로 일했다. 1955년 첫 수필집 ≪우화≫가 출간되었다. 1956년 ≪평화신문≫의 문화부장이 되었다. 1957년 제28회 일본 도쿄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1959년에는 서독 프랑크푸르트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60년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으로 일했으며, 1962년 ≪새나라신문≫ 편집국장, 문화공보부 영화 심의의원, 한국일보사 ≪주간한국≫ 부장이 되었다. 1963년 수필집 ≪가깝고 먼 세계≫가 출간되었다. 1965년 한국 여기자 클럽 회장에 선임되었다. 1966년 수필집 ≪얼굴≫이 출간되었으며,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중앙위원이 되고, 미국 뉴욕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67년 한국 방송 윤리 위원회 윤리 위원, 한국 여류 문학인회 초대 간사장이 되었다. 1969년 프랑스 망통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71년 수필집 ≪음치의 자장가≫가 출간되었으며, 한국 수필가 협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같은 해 아일랜드 더블린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72년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부회장이 되었으며, 1974년에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되었다. 1978년 수필집 ≪면역의 원리≫가 출간되고, 한국일보 ≪소년한국≫ 부국장을 맡았다. 1979년 한국 여성 문학인회 회장, 한국 문인 협회 부이사장으로 일했으며, 같은 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80년 ≪한국일보≫를 정년 퇴임하고,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 권한 대행을 했다. 1981년 평화 통일 자문 위원회 자문 위원이 되었고, 5·16 민족상 이사 및 심사 위원, 한국 여성 문학인회 고문으로 일했다. 1982년 올림픽 조직 위원회 문화 홍보 분과 위원이 되었으며, 한국 수필 문학상을 제정했다. 1983년 한·중 우호 협회 고문으로 일했으며, 1984년에는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회장에 당선되고, 올림픽 조직 위원회 조직 위원,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문화 분과 위원장, 한국문인협회 고문으로 일했다. 1986년 수필집 ≪골목은 아침에 나보다 늦게 깬다≫가 출간되고, 문예 진흥 후원 협의회 부회장이 되었다. 1987년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회장으로 재선되었다. 1988년 수필집 ≪웃음이 어울리는 시대≫가 출간되었고, 제2정무장관을 지냈다. 1989년 예술의 전당 이사장이 되었다. 1991년 서울 예술단 이사장이 되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94년 수필집 ≪낙엽의 침묵≫이 출간되었고, 체코 프라하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같은 해 한국 예술 단체 총연합회 명예 회장이 되었다. 1995년 한국 여성 개발원 이사장, 1996년 성공회대학교 이사가 되었다. 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동창 문인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99년 수필집 ≪치자꽃≫이 출간되었다. 2000년 수필집 ≪하얀 꽃들≫이 출간되고, 모스크바 국제 펜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2003년 ‘강화를 빛낸 사람’에 선정되었고, 2004년 ≪조경희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2005년 8월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008년 수필선집 ≪작은 성당≫이 출간되었다.
엮은이
박진영(朴珍英)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3년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해 1997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김승옥 소설의 주체 구성 연구>(2000)로 석사 학위를, <한국 현대소설의 비극성에 관한 수사학적 연구>(2010)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차례
봄물
얼굴
寓話
旅行
속힌 이야기
하얀 꽃들
양산
소내기
치자꽃
還都의 魅力
목물
冊
秋夕
握手
迎秋有感
선물
古書와 古畫
재떨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구두
‘아트리에’에서
判官과 그들의 夫人
古典風景
音痴의 자장가
免疫의 原理
裸像
윷놀이
十 圓짜리 초 한 가락
椅子考
處所
差押
굴뚝 청소부
옛날 여자, 오늘 여자
낙엽의 침묵
강화 이야기
그림을 찾아서
소크라테스의 독배(毒杯)
여행길에서 모아 온 티스푼
유럽의 강
놀라운 폐허 마추픽추
하버드대학의 천재들
지안(集安) 산책
분갈이
돈황(敦煌)을 가다
사물놀이
길을 생각한다
연하장
잊을 수 없는 아픔을 묵상한다
나의 첫사랑
어머니와 흰 무명 저고리
현대 남성의 사랑
진달래
손수건의 미덕
내가 부러워하는 것
수세미
골목
작은 성당(聖堂)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해진 나의 구두들은 나의 생애의 기록이기도 하다. 말 못할 비밀의 기록이 숨겨 있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때 신어 햇드린 구두는 나의 그 시대의 일을 샅샅이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나의 다른 해진 구두들은, 지난날의 나의 행장을 자기만이 안다고 부르짖을 것 같다.
오늘도 나의 구두는 다른 모든 사람의 구두처럼 나를 끌고 이곳저곳으로 다닌다. 다방으로 끌고 가서 친구를 만나게도 해 주고 극장에 끌고 가서 영화 구경도 시켜 주고, 일꺼리를 위해서 돌아다니게 하는가 하면 달음박질을 시켜 주기도 한다. 옛부터 발길이 내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내 마음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드라도 발길이 내키지 않으면 고만이다. 나의 마음은 하늘의 별을 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내 발길이 내키지 않으면 실현성이 없는 이야기다.
<구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