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진사도는 중국 문학사상 문운이 왕성했던 시기로 불리는 삼원(三元)시기의 하나인 원우(元祐) 시기, 즉 북송 후기에 활약했던 시인이다. 그는 젊어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증공(曾鞏)을 사사했고 소동파와는 문인 항렬로 교유했으며 시는 황정견(黃庭堅)의 시를 전문적으로 배워 황정견과 함께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제창자가 되었다. 이 책은 진사도의 시 80수를 창작 시기순으로 엮었다. 원전의 주를 함께 옮기고 해제와 역주를 더했다. 진사도는 오랫동안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늦게야 벼슬을 얻었으나 관직에 오래 있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뒤늦게 고향인 서주의 교수로 부임해 가던 중에 직이 바뀌었는데,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질에 걸려 죽는다. 이 책에는 특히 진사도가 고향 서주에서 벼슬 없이 한가로이 지낼 때의 시를 가장 많이 선록하고 있다.
마르고 굳센 강서시의 진수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증공을 사사하고, 황정견의 시를 수용해 그와 함께 강서시의 제창자가 된 진사도의 시에는 마르고 굳센 정기가 서려 있다. 강서시풍을 부흥시킨 진연(陳衍)은 진사도를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가도(賈島) 등의 전통을 이은 청창유초(淸蒼幽峭)한 일파로 높이 평가했다.
진정을 노래한 시
고향에서 벼슬 없이 지내던 시기 진사도는 먹고살 길이 막막해 처자식을 장인 편에 보내야 할 만큼 궁벽하게 살았다. 이 시기에 세 자식과 아내를 전송하며 쓴 시들은 절박하고 비참한 심정을 진솔하게 노래해 후대로부터 ‘정이 참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내를 전송하며(送內)>, <세 자식을 이별하며 (別三子)>와 같은 진사도의 대표시를 감상할 수 있다.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진사도의 결벽
진사도는 추운 겨울, 싫어하는 사람이 선물했다는 이유로 털옷을 마다한 채 교사례에 참석했다가 한질에 걸려 죽는다. 그 밖에도 진사도 특유의 결벽을 증명하는 일화가 많은데 시에도 이런 그의 성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와 운을 고려해 세심하게 시어를 선택하고 있는 진사도의 깐깐함이 해제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200자평
《후산시주》와 《후산시주보전》에 전하는 451수의 작품 중에서 진사도 시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작품 80수를 창작 시기순으로 실었다. ‘마르고 굳센[瘦勁]’ 강서시의 풍격을 느껴 볼 수 있다.
진사도는 오랫동안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늦게야 벼슬을 얻었으나 관직에 오래 있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뒤늦게 고향인 서주의 교수로 부임해 가던 중에 직이 바뀌었는데,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질에 걸려 죽는다. 책에는 특히 진사도가 고향 서주에서 벼슬 없이 한가로이 지낼 때의 시를 가장 많이 선록하고 있다.
지은이
진사도(陳師道, 1052∼1101)는 북송 인종 때 팽성(지금의 장쑤성 쉬저우시)에서 태어났다. 왕안석의 신법과 신학을 싫어해 과거 시험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재야인사로서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33세 때 장인이 관직을 받아 촉 지방으로 떠날 때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어 딸려 보냈으므로 이때 생이별을 읊은 진솔한 시를 많이 지었다. 이런 낭인 시절에 소식, 황정견 등과 알게 되었다.
원우 2년, 35세 때 소식 등의 추천으로 고향인 서주에서 학관의 교수가 된 것이 관직에 들어선 시초다. 원우 5년, 38세 때 영주(지금의 안후이성에 있었음)교수로 이임되었다. 이 무렵 소식이 영주태수가 되어 왔으므로 교유하며 읊은 시가 많다. 철종이 친정을 시작한 소성 원년부터는 신당이 세력을 얻어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44세 때 모친상을 당했고 조주의 처가에 가솔을 이끌고 가 의지하다 48세 때 체주교수직을 받았는데 11월에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다시 비서성정자에 제수되어 수도 개봉으로 갔다. 늦게나마 비서성정자가 된 것을 감사히 여기고 달게 봉직했으나 49세가 된 휘종 건중정국 원년 겨울 교사례(郊祀禮) 때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얻어 온 털옷을 입지 않고 나가 한질에 걸려 죽었다.
그는 이처럼 사람에 대한 호오의 구별이 뚜렷했고 관직이 없어 궁핍한 생활을 할 때에도 권세가를 찾아 드나들지 않았던, 절개 굳은 고고한 선비였다. 그의 시 세계는 초기의 낭인 시절 진솔한 정을 담은 시와 원우 시기, 즉 서주교수, 영주교수를 할 때의 작품들, 조주의 처가에 머물 때의 작품들, 고향 서주에서 문하생들과 어울릴 때의 작품들, 체주교수직을 받아 길을 떠나며 지은 작품들 및 비서성정자로 있을 때의 작품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옮긴이
최금옥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영어영문학 부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대 악부시의 구법(句法) 연구〉로 문학 석사, 〈진사도 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에서 시간강사로 있었고, 동해전문대학 관광통역중국어과 전임강사를 지냈으며, 이후 다시 서울대, 한양대 등에서 시간 강의를 하고 있다. 역서 및 저서로 《양송 시 여행》, 《고금 한어의 어법 차이》(2008), 《리얼 상하이 쉬운 만다린》(2009), 《클래시컬 차이니즈 중국 소설》(2010) 등이 있고 어학과 문학 분야를 통틀어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차례
1.나그네 시절
서천제형으로 부임하는 장인 곽개 대부님을 전송하며 送外舅郭大夫槩西川提刑
아내를 전송하며 送內
세 자식을 이별하며 別三子
남풍선생 애도 시 2수 南豊先生挽詞二首
강단례를 전송하며 送江端禮
조무구와 장문잠이 지나다 들름 晁無咎張文潛見過
승상 사마광 애도 시 3수 丞相溫公挽詞三首
장문잠에게 답함 答張文潛
2.고향 서주(徐州)의 교수 시절
중양절에 진구에게 부침 九日寄秦覯
세 자식에게 보임 示三子
항주태수로 부임하는 소식 선생을 전송하며 送蘇公知杭州
이 절도추판관의 <중양절 남산에 올라> 시에서 차운해 씀 次韻李節推九日登南山
<봄 감회>시를 차운해 씀 次韻春懷
청구를 나서며 出淸口
3.영주(潁州)교수 시절
연국문충공가의 육일당 도서를 봄 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
소식 선생의 시 <서호에 물고기를 옮기다>에서 차운해 씀 3수 次韻蘇公西湖徙魚三首
동쪽 두렁길 東阡
즉흥적으로 읊음 卽事
중추절 밤 달 十五夜月
이 학사에게 부침 寄李學士
눈 雪
조재지 형제에게 부침 寄晁載之兄弟
홀로 앉아서 獨坐
회포를 풂 放懷
이부로 관직이 바뀌어 가는 백형을 전송함 送伯兄赴吏部改官
뒤의 호수에 저녁에 앉아 後湖晩坐
봄의 흥치 春興
주장을 인산주에게 드림 2수 以拄杖供仁山主二首
월화엄을 이별하며 別月華嚴
혜주부사 소식 선생을 만나러 가는 오 선생을 전송하며 送吳先生謁惠州蘇副使
영주를 떠나며 離潁
4. 조주(曹州)의 장인 댁에 살며
조무역의 시 <눈 내린 뒤>에서 차운해 씀 2수 次韻無斁雪後二首
<봄 감회> 시에서 차운해 씀 次韻春懷
심명각에 숙박하며 2수 宿深明閣二首
겨울밤 조무역을 그리워함 寒夜有懷晁無斁
제야 除夜
5. 다시 고향 서주로 돌아와
마을에 돌아와 還里
늙은 잣나무 3수 老柏三首
<여름날의 강촌> 차운시 次韻夏日江村
눈 닿는 대로 觸目
단계연을 보내심에 감사드림 謝端硯
쾌재정에 올라 登快哉亭
황 군, 위 군 두 사람을 초대하며 招黃魏二生
봄밤 春夜
황 군의 <봄 다한 뒤 남산을 노닐다>에 화답함 和黃生春盡遊南山
진류 시장의 은자 陳留市隱者
패현으로 옮겨 가는 위연을 전송하며 送魏衍移沛
담주 장운수에게 부침 2수 寄潭州張芸叟二首
황예 애도 시 4수 黃預挽詞四首
설날의 눈 2수 元日雪二首
서쪽 교외 2수 西郊二首
정 호부, 승 보집, 문실에게 화답함 2수 和鄭戶部寶集文室二首
양주 정 대부에게 부침 寄襄州程大夫
밤의 시구 3수 夜句三首
향시에 떨어지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조카 효충을 전송하며 送孝忠落解南歸
헌대의 조 도사가 쌀을 베푸심에 감사드림 謝憲臺趙史惠米
절구 4수 絶句四首
황충에게 부침 寄黃充
먼 곳을 그리며 懷遠
조 사군이 땔나무를 보내오심에 감사하며 謝趙使君送烏薪
이른 봄 早春
함평의 독서당 咸平讀書堂
봄 감회를 이웃에 보임 春懷示隣里
구십일이 단계연을 보내옴에 감사하며 謝寇十一惠端硯
조 군이 작약을 보내옴에 감사하며 3수 謝趙生惠芍藥三絶句
6. 체주(棣州)교수로 부임해 가며
원부 3년 7월 다시 체주학관에 제수되는 성은을 입고 기뻐서 시를 씀 元符三年七月蒙恩復除棣學喜而成詩
옛 고향을 이별하며 別鄕舊
위연, 구국보, 전종선 및 두 조카와 운을 나누어 좌자를 얻음 與魏衍寇國寶田從先二姪分韻得坐字
추운 밤 寒夜
다섯 제자가 전송 나와 호릉에 이르다 五子相送至湖陵
산 입구 山口
청구에서 숙박하며 宿合淸口
저녁에 앉아 晩坐
7. 도중에 비서성정자로 바뀌어 감
관직에 제수되고 除官
사공정의 <비서각의 문여가가 그린 고목을 봄>에 화답함 和謝公定觀秘閣文與可枯木
요절이 주방이 그린 이백의 초상화를 읊은 것에 화답해 和饒節詠周昉畵李白眞
참요와 명발이 이웃집의 꽃을 찾은 것에 화답해 2수 和參寥明發覓鄰家花二首
흠성헌숙황후 애도 시 2수 欽聖憲肅皇后挽詞二首
왕입지에게 답함 答王立之
서주태수로 부임하는 조요민을 전송하며 送晁堯民守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내 가난해 송곳 하나 없고
바라다보이는 건 모두 네 벽뿐
영주에는 바람과 이슬 풍족하다는데
어찌하여 주린 기색 덜어지지 못했나?
옛적에 듣자니 왕규의 모친은
머리털 잘라서 손님을 섬겼다는데
그대의 부인은 분명 그렇지 않은 듯하니
세 번씩 빗질하고 수건을 받들게 하네.
-<장문잠에게 답함> 중
2
인생 칠십이 이미 반은 훨씬 지났는데
남은 인생 얼마나 될 수 있을까?
황혼 그림자가 다가옴을 분명히 알겠으니
더욱 후생이 많은 것이 느껴진다.
세상을 피하려 해도 이름이 누가 되고
남은 해는 잠 귀신만 들렸네.
서방으로 돌아가 편히 지내고 싶으나
노인은 편안히 앉아 있지 못하네.
-<제야> 중
3
섣달인데도 눈이 내리지 않더니
새해 맞아 급히도 봄이 되었다.
얼음 녹으며 옛 푸름 되돌고
물고기 기뻐하며 긴 비늘 뛰논다.
버들은 해마다 피어나고
수심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늙은 마음 나 절로 특이하니
일부러 남을 어기려는 게 아니라네.
-<이른 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