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히멜베크(Himmelweg)’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뜻하는 독일어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이동한 길을 말한다. 그 길은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이요, 극단적인 두려움이나 공포를 경험해야 하는 길이었다. 왜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유대인들이 그 길을 걸어가 죽어야만 했을까? 어떻게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유대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그것도 가장 문명화한 지역의 심장부에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 비극을 소재로 후안 마요르가는 특유의 심도 깊은 연극적 상상력을 풀어낸다. 참상을 전하거나, 희생자나 가해자의 입장을 전하기보다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을 연극적으로 상상하며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잔인한 인간의 부조리한 면을 들추고 있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기억하지 않는 과거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성찰했다. 이 작품은 세계사적 비극을 유대인과 독일인만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이미 끝난 일로서 간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프리모 레비의 성찰에 대한 깊은 지지다. 우리에게 마요르가는 묻는다. 무관심과 비겁함으로 끔찍한 현실에 가면을 씌우는 일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이다. 마요르가는 서문에서 우리에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감행했던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통해 ‘문명과 야만 사이의 동맹’에 대해 성찰하고 ‘연극의 부정확한 힘’을 느껴 보라고 말한다.
지은이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는 1965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현재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에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5년간 마드리드와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현재는 마드리드 왕립 드라마 예술 학교 교수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선한 칠인>(1989),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Cartas de amor a Stalin)>(1999), <뚱뚱이와 홀쭉이(El Gordo y el Flaco)>(2000), <천국으로 가는 길(Himmelweg, Camino del cielo)>(2003), <하멜린Hamelin)>(2005, 국립연극상, 막스상 수상),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última fila)>(2006, 막스상 수상),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2008, 막스상 수상) 등이 있다. 이외에도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고전 작품들을 각색하기도 한다. 참고로, 막스(Max)상은 1998년부터 스페인 작가, 출판인협회 회원들이 같은 분야의 동료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한 해 동안 무대에 오른 공연물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을 투표로 결정해 수여하는 매우 권위 있는 상이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아랍어, 그리스어 등 21개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각 나라 무대에 소개되고 있다.
옮긴이
김재선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스페인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한국외대, 이화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후안 마요르가의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2009), ≪영원한 평화(La paz perpetua)≫(2011), ≪하멜린(Hamelin)≫(2012), ≪천국으로 가는 길(Himmelweg)≫(2013)을 번역했다.
차례
한국 독자에게
I. 뉘른베르크 시계공
II. 연기
III. 평화의 침묵은 이럴 겁니다
IV. 유럽의 심장
V. 마치기 위한 노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날 밤 유대인 가족 초상화 앞에서 제가 썼던 단어 하나하나는 반복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정상적인 도시를 보았다.” 비정상적인 것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보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었다면 진실을 썼겠지요. 단어 하나, 표정 하나. 저는 썼습니다. “누구나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이 취한 조치에 대해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이 보고서가 이 일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오늘 저는 이곳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썼던 내용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시 쓴다 해도 단어 하나하나를, 그 내용을 그대로 썼을 겁니다. 그리고 또 서명했을 겁니다. 저는 제가 본 것을 썼고,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저는 의약품 세 상자를 보냈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수용소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령관과 고트프리트 시장이 감사를 표하며 서명한 편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