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자오정(鍾肇政)의 ≪침몰하는 섬(沈淪)≫은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의 제1부다. 1964년 집필을 시작해 1968년 ≪타이완일보 부간(臺灣日報 副刊)≫에서 연재를 마쳤으며, 그해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제2부 ≪창명행(滄溟行)≫과 제3부 ≪차톈산의 노래(揷天山之歌)≫가 1976년과 1975년에 각각 출판되었으며, ≪타이완인 삼부곡≫이라는 완전한 형태로 출판된 것은 1980년이다. 이 연작소설은 일본 식민통치 50년간의 타이완을 그렸으며, 역사서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사료이자 문학적 성과가 뛰어난 대하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침몰하는 섬≫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이 일본에 타이완을 할양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는 3대째 타이완에 정착해 토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루 씨 가문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 내겠다는 일념으로 자진하여 의용군에 참여한 뒤,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저항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의의는 단연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당시 타이완인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의 정신을 높이 기리며, 그 속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을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루 씨 가문이 타이완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세세히 소개한다. 톈구이 공이 타이완으로 건너와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한 것부터, 어떻게 주쭤랴오(九座寮)에 터를 잡고 대대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 자손들은 또 어떻게 가문을 번창시켜 나갔는지에 관한 서술은 소설의 전반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 초반에 겪어야 했던 보편적인 과정이나 농사·무역·풍습 등과 관련한 시대상들이 세밀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침몰하는 섬≫은 처음에 ≪타이완인(臺灣人)≫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가, 이 낱말과 관련한 여러 가지 민감한 문제 탓에 후에 제목을 바꾸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우리가 상상하는 타이완과 타이완인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기시킨다. 타이완은 익히 알다시피 다양한 족군들로 구성된 국가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이거나 한족의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상상하는 타이완인의 개념은 더욱 유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설 곳곳에서 타이완은 여전히 청나라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으며, 하카인으로 대표되는 청나라 이주자들은 타이완을 개척한 선구자로 묘사된다.
또한 타이완의 원주민을 일본인보다 더욱 잔인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점도 당시 대륙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의 타이완에 대한 의식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한족들이 원주민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광복 이후 본성인과 외성인 간에 빚어진 충돌이나 타이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직면해야 했던 다양한 족군의 공존이라는 과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이 책을 통해 타이완의 복잡한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타이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0자평
타이완 작가 중자오정의 장편소설.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이 뽑은 ’20세기 중문소설 100선’에 마흔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1895년 타이완 할양 무렵, 일본군 진주에 저항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소설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이 일본에 타이완을 할양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는 3대째 타이완에 정착해 토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루 씨 가문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 내겠다는 일념으로 자진하여 의용군에 참여한 뒤,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저항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은이
중자오정은 1925년 타이완의 타오위안현(桃園縣) 룽탄향(龍潭鄕)의 주쭤랴오(九座寮)에서 태어났다. 일제 통치하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장화(彰化)청년사범학교에 진학했는데, 원래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이때 다량의 세계 명작들을 읽으며 창작의 꿈을 키웠다. 1945년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광복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중자오정은 광복 이후 일본어 창작이 금지되면서 중문 주음부호와 중국어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중문 창작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1948년 타이완대학 중문과에 입학했으나 교과 과정 등에 불만을 품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뒤 다시 교사로 복직했다. 1951년 <혼후(婚後)>가 잡지에 실리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62년 ≪연합보(聯合報)≫에 교사로서 경험을 담은 첫 번째 장편소설 ≪루빙화≫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탁류 삼부곡(濁流三部曲)≫과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 등을 집필하며 장편소설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았다. 중자오정은 1950년대 반공문학이 주류를 이뤘던 타이완 문단에서 항일과 계몽이라는 신문학운동 정신을 계승해 창작 활동을 벌였다. 당시 타이완 출신 작가들은 반공사상과 중원사상을 강조하던 관(官) 주도의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새로운 언어인 중문으로 창작을 하는 것 또한 익숙지 않아 이중의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에 중자오정은 1957년 4월 ≪문우통신(文友通訊)≫을 창간했다. 이 잡지에는 1950년대 중반 타이완 문단의 대표적인 향토문학 작가들이 상당수 참가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타이완의 식민 경험과 역사 기억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당시 중자오정과 함께 ≪문우통신≫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리허(鍾理和), 천훠취안(陳火泉) 등이 있다. ≪문우통신≫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소속 작가들이 공모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문단의 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들은 당시 암흑과도 같은 시대 상황에서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해 나갔으며, 이후 타이완 문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스스로의 발전 궤적을 완성해 나가는 밑거름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옮긴이
문희정은 타이완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타이완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활동하며 타이완과 홍콩 문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이벽화(李碧華)의 ≪패왕별희(覇王別姬)≫: 인물 형상과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로 부산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활동으로는 서평 <근대문명과 식민, 타이완 근대문학의 재구성 — ≪타이완의 근대문학≫>(≪아시아≫ 통권 30호, 2013), 번역 논문 <위화(余華),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는가> 외 2편>(≪중국현대문학≫ 제60호, 2012) 등이 있으며, 역서로 ≪시바오 이야기≫, ≪회오리 바람≫이 있다.
차례
침몰하는 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의용군이 돌아온다….”
“루 씨 가문의 용사들이 오고 있다….”
참담할 정도로 초토화한 링탄피 시가지에서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앞다퉈 소식을 전했다. 그것은 사람들을 고양할 만한 소식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다분히 고조되었다. 마치 그 용사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집이 부서지고 땅을 빼앗긴 자신들의 크나큰 수치심을 씻어 주기라도 할 것 같았다. 사실 그들도 보복을 하겠노라 큰소리를 쳐 보았으나 더 이상은 일본군을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가진 고향 땅을 다시 일으켜 줄 만한 사람도 더는 없었다. 게다가 이 루 씨 가문의 자제들은 사실 패잔병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오랑캐들은 이미 타이베이와 얼자주, 산자오융, 다커칸, 스이펀을 거쳐 링탄피, 뉴란허, 셴차이웡, 신푸, 팡랴오, 홍마오톈에서 신주까지 이어지는 몇백 화리의 노선을 모두 장악했다. 다만 사람들은 안핑읍과 퉁뤄취안, 뉴란허 등지의 전투에 대한 풍문을 통해 가장 장렬하고 용맹스러우며 가장 많은 일본 오랑캐를 죽인 사람들이 바로 그곳 출신의 루 씨 가문 용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