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하면서까지 사랑했던 여자! 그러나 남의 아내이기에 끝내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여자! 젊은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미칠 듯 사랑하고 괴로워하다가 죽어 갔듯이, 20세기의 고독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에른스트 폴라크(Ernst Pollak)의 젊은 아내 밀레나 예센스카(Milena Jesenská, 1896∼1944)를 죽도록 사랑한다. 그러나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글로나마 자신의 사랑과 슬픔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이 둥그스름한 미모의 여인 밀레나는 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열적인 연서(戀書)들을 1924년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후까지 소중히 보관한다. 1939년 봄 독일이 프라하로 진격해 오기 직전에 그녀는 봉투에 넣지 않은 편지들을 묶음으로 만들어 이 서한집의 편집자 빌리 하아스(Willy Haas)에게 직접 넘겨준다. 하아스는 밀레나의 남편이 된 폴라크, 작가 프란츠 베르펠 등과 함께 밀레나가 프라하의 커피숍에서 자주 어울리곤 했던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고향을 탈출하는 피난길에 이 편지 묶음을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프라하에 남아 있던 가까운 친척에게 맡기며, 편지들은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잘 보관된다. 그 후 편자는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의 권유를 받아 밀레나의 생일, 국경일, 편지에 붙여진 번호, 기타 여러 가지 사건들을 참고해 편지들의 순서를 정리 편집한다. 카프카의 편지에는 요일은 자주 기록되지만, 애초부터 날짜는 쓰여 있지 않았다. 하아스가 편집한 초판본이 1952년 미국 뉴욕의 쇼켄 출판사(Schocken Books Inc.)에서 나오고, 1966년부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피셔 포켓북 출판사(Fischer Taschenbuch Verlag)에서 간행된다. 그리고 1983년에는 부페르탈대학의 프라하문학 연구소장 보른(Jürgen Born) 교수와 책임연구원 뮐러(Michael Müller) 박사가 편지를 썼을 것이라 추정한 날짜 등을 괄호 속에 표시하고, 초판에 빠졌던 편지들을 보완하며, 학술적으로 새로이 정리한 증보 신판이 출간된다. 한 많은 생애를 마친 카프카의 연서는 편지가 처음 발표된 이후 오늘날까지 서간체로 쓰인 “사랑의 장편”이란 평을 받으며, 세계 각국 젊은 독자들의 깊은 관심 속에 애독되고 있다.
200자평
20세기의 고독자 프란츠 카프카가 영원한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그 편지에는 소외된 천재 카프카의 고뇌와 열정, 이상과 절망이 그대로 묻어난다. 인간 카프카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지은이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부유한 유태계 상인 헤르만 카프카(Hermann Kafka)와 그의 처 율리에 뢰비(Julie Löwy) 사이에 첫 아들로 태어난다. 카프카는 초등학교를 마친 후 아버지의 공명심에 따라 독일 교육을 받기 위해 프라하 알트슈타트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가정과 학교 어디에서도 내면적 안정과 자신감을 찾지 못한 카프카는 8년간의 교육 과정에 거의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유지한다. 이때에 벌써 그는 입센과 자연주의 희곡, 스피노자와 니체를 읽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고,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진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에는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희망을 품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미술사와 독문학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결국엔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프라하의 독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게 되고, 로마 민법, 채권법, 부동산 강제 집행 등 전혀 취미에 맞지 않는 강의를 듣는다. 그러는 동안 그는 최소한의 필수 과목만 이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플로베르나 호프만슈탈, 헤벨과 슈티프터 등의 작품을 탐독하며, 체코나 독일 극단(劇團)의 연극 공연을 정기적으로 관람한다. 동시에 독일 대학생 독서 토론실에서 개최되는 강연이나 문학 작품 낭독회에 부지런히 참석하는데, 여기에서 일생의 친구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된다.
1905년 여름 카프카는 프라하를 벗어나려는 욕구의 해소책으로 조그만 호반의 마을 추크만텔에서 방학을 지내며 요양하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어느 한 여인을 사귀어 첫사랑을 체험한다. 프라하로 돌아와서는 대학 졸업 시험 때문에 괴로운 세월을 보내고, 1906년 6월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지겨운 법학 공부를 끝내게 된다. 그해 가을부터는 법률 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1년간 법원에서 실습한다. 그 후 프라하를 멀리 떠나려는 소망에서 여러 계획을 세워 보지만, 결국엔 이탈리아 자본으로 경영되는 일반 보험회사에 임시 직원으로 취직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쓸 수가 없기에 그는 좀 더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노동자상해보험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오후 2시에 근무 시간이 끝났으므로 카프카는 자기 시간을 가지고 문학적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며 여러 서클 활동에도 관여한다. 체코 사회주의 정치가들의 강연을 듣고 시위운동에도 참가하며, 사회주의 연구회인 믈라디시 클럽에도 나간다. 판타 클럽에서는 당시 프라하에 거주하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보고를 듣고, 플랑크의 양자이론,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기초 이론 등 첨단을 걷는 학설과도 접촉한다. 그 후 카프카는 브로트 형제와 함께 스위스, 이탈리아, 파리,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베를린 등으로 여행도 많이 다닌다.
1912년에는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훗날의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를 사귀게 되고, 5년간에 걸친 교제를 하면서 500통이 넘는 편지와 엽서를 교환한다. 그동안 그녀와 두 번이나 약혼했다가 파혼하는데, 이유는 문학보다 더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일생 동안 그는 생활과 문학을 대립적으로 생각하고, 양자택일의 경우에는 언제나 문학을 위해 현실적 삶을 포기하는 태도를 취한다. 1917년 8월에 각혈을 하고 폐결핵 선고를 받으며, 8개월이란 긴 휴가를 얻어 누이동생 오틀라가 살고 있는 보헤미아의 취라우로 떠나간다. 결핵이란 병은 직업상의 책임, 결혼의 의무, 양친에 대한 책임 등에서 그를 일시적이나마 자유롭게 해방해 준다. 그 후 다시 일을 하려다 실패하고, 일찍 은퇴한 카프카는 여러 요양소에 체류한다. 1919년에는 율리에 보리체크(Julie Wohryzeck)라는 어린 체코 처녀를 사귀어 세 번째 약혼을 하지만, 곧 다시 파혼한다. 카프카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하기를 원하는 24세의 기혼녀 밀레나 예센스카를 알게 되고, 1920년부터 여행지 이탈리아 메란에서 그들은 사랑의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다. 밀레나는 대학에서 의학과 음악, 그리고 언론학을 공부한 명문가 출신의 여인으로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카프카를 열렬히 사랑한다.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왕래하며 밀회를 거듭하고 수많은 서신을 교환한다. 그러나 소박하고 친절한 여인 도라 디아만트(Dora Diamant)의 출현과 더불어 그들의 사랑도 끝난다. 1923년 7월 40세가 된 카프카는 베를린 피서지에 갔다가 위생보조원으로 일하는 20대의 젊은 폴란드 여인 도라에게 매혹된다. 두 연인은 즉시 동거 생활을 시작하며, 물질적 육체적 궁핍 속에서도 몇 개월간이나마 매우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도라 디아만트와의 행복스런 생활도, 고요히 계속되던 창작 생활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 때문에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카프카는 죽음 직전의 육체를 이끌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와 삶 자체에 대한 결정적인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 결핵은 후두부까지 퍼져 치료는 완전히 불가능했다. 도라의 끊임없는 간호를 받으면서 그는 마지막 작품 <여가수 요제피네>를 집필하고, 죽음의 날에도 단편집 ≪단식 광대≫의 교정 작업을 한다. 41회 생일을 한 달 앞둔 1924년 6월 3일 카프카는 자기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 이외의 “유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언제나 떠나기를 갈망하면서도 번번이 되돌아오곤 하던 고향 도시 프라하의 유태인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옮긴이
이인웅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정부초청 장학생(DAAD)으로 뮌헨대학교와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독일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72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실장, 교무처장,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수행하고, 문교부 국어심의회 외래어표기 분과위원, 교육부 국비유학 자문위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분과위원(장), 각종 고등고시위원, 한독협회지 초대 편집인,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ADeKo(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독일), ≪작가론 헤르만 헤세≫(편저), ≪현대 독일 문학 비평≫, ≪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헤세의 ≪크눌프≫,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황야의 이리≫, ≪인도 여행≫, ≪꿈이 내 문을 두드릴 때≫, ≪싯다르타≫, ≪동방순례≫, 뒤렌마트의 방송극집 ≪고장≫,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헤르만과 도로테아≫ 등 40여 권이 있으며, 논문으로 <Hermann Hesse und die taoistische Philosophie>(스위스), <I Ging, das Buch der Wandlungen, im Glasperlenspiel von H. Hesse>(독일),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 연구>, <헤르만 헤세와 불교>, <헬레나 비극>, <그라베의 대립적 세계관>, <파우스트와 역사 세계> 등 40여 편이 있다. 그 외에도 문학과 삶에 관해 각종 신문 잡지 등에 230여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으며, 국내외에서 수많은 초청 강연을 했다.
차례
카프카의 편지: 밀레나에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밀레나, 우리는 한 가지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우리는 너무나 수줍어하고 불안에 싸여 있지요. 매 편지가 거의 다르며 거의 모든 편지가 전번 편지에 대해, 또 그 답장에 대해 더욱 놀라고 있습니다. 당신이 선천적으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지요. 나도 선천적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이미 그것은 천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절망 속에서와 기껏해야 분노 속에서,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포 속에서만 그것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두 개의 문이 마주 달린 하나의 방을 쓰고 있는데, 각자가 문고리를 잡고 한 사람이 속눈썹만 깜박거려도 벌써 다른 사람은 자기 문 뒤로 숨어 버리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 첫 사람이 단 한마디라도 말을 할라치면 둘째 사람은 벌써 자기 뒤에 문을 꼭 잠가 버려서 모습조차 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방은 떠나 버릴 수가 없는 것이기에 다시 문을 열 것입니다. 첫째 사람이 둘째 사람과 아주 똑같지 않다면 좋으련만. 그가 침착하고, 외견상으로나마 둘째 사람을 전혀 쳐다보지도 않으며 그 방이 각자 다른 방인 것처럼 서서히 방을 정돈한다면 좋으련만. 그러는 대신에 각자는 자기 문 뒤에서 똑같은 짓을 행하고 있지요. 그래서 때로는 두 사람이 모두 문 뒤에 숨어 버려, 그 아름다운 방을 텅 빈 채로 내버려 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괴롭히는 오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밀레나, 당신은 내 편지에 대해 불평하지만 사방으로 돌려 보아도 아무것도 떨어져 나올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잘못 생각지 않는다면 편지란 바로 내가 당신과 그렇게 가까이 있고, 당신의 피를 제어하듯 끓는 피를 제어하며 깊은 숲 속 고요 속에 휴식을 취하면서 나무들을 통해 위에 있는 하늘을 볼 수 있을 정도 이상은 사실 아무런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그런 것이지요. 이것이 전부이며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똑같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데, 물론 거기엔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은 말이란 단 한마디도 없다”는 뜻이 깃들어 있지요. 오래 걸리지 않아서 기껏해야 한순간이 지나면 곧 잠 못 이루는 밤의 트럼펫을 다시 불어 대는 것입니다.
2
난 어제 그대에게 편지를 매일 쓰지 말라고 충고했지요. 오늘도 내 생각은 그러하며 그건 우리 두 사람에게 매우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오늘 한 번 더 강조해 충고하겠습니다.-그러나 밀레나, 제발 내 충고를 따르지 말고 매일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아주 짧아도 좋습니다. 오늘 편지보다 더 짧아도 좋습니다. 단 두 줄이라도, 단 한 줄이라도, 단 한마디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한마디조차 없이는 난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인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오늘 아침 편지에 썼던 것 이외에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난 그대에 대해서조차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보다도 나는 그대 앞에서 그대 앞에서 마음대로 말할 수가 있지요. 그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그대처럼 알면서 또 원하면서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그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과 구별해야 합니다).
그대 편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그것은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 편지들에는 전체적으로, 거의 한 줄 한 줄에 내 인생에서 생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그대가 내 “불안”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때때로 내 “불안”에 매수된 변호인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깊은 내면에서는 나 자신도 불안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요. 난 사실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불안이 나의 최선일 겁니다. 그리고 불안이 내 최선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이 그대가 사랑하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어떤 사랑할 만한 요소를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지요.
가슴속에 불안을 품고서 어떻게 내가 토요일을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그대, 이해가 더딘 여인이여, 그러니까 바다가 그 밑바닥에 깔린 작은 조약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난 그대를 사랑하며, 그와 꼭 마찬가지로 내 사랑은 그대 위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그대 곁에서 다시 조약돌이 될 겁니다) 나는 온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대의 왼쪽 어깨가 속해 있지요. 아니, 오른쪽 어깨가 먼저였어요. 마음에 들면 난 거기에 키스를 하지요(그리고 그대는 사랑스럽게도 그쪽 블라우스를 밀어내지요). 그리고 왼쪽 어깨도 있어요. 숲 속에서 내 위에 있던 그대 얼굴, 숲 속에서 내 아래에 있던 그대 얼굴, 그리고 거의 벌거숭이가 된 그대 앞가슴에서의 휴식도 거기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대가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 때문에 불안해지기는커녕, 그것은 나의 유일한 행복이며 유일한 자랑거리입니다. 그것을 숲 속에만 한정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4
사람들이 편지를 통해 서로 교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멀리 있는 사람은 생각할 수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붙잡을 수가 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유령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령들은 탐욕스레 그러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편지에 쓰인 키스는 가야 할 곳에 도착하지 못하고, 도중에서 유령들이 홀짝 마셔 버리고 만답니다. 이렇게 풍족한 음식으로 유령들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요. 인류는 그걸 느끼고 그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유령 존재를 가능한 한 제거해 버리고, 자연스런 교류와 영혼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인류는 기차, 자동차, 비행기를 발명해 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추락하는 중에 발명된 것임에 틀림없어요. 상대편은 그만큼 더 침착하고 강력하답니다. 인류는 우편 이후로 전보와 전화와 무선 전신을 발명해 냈지요. 유령들은 굶어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린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